아케치 하렘 팰리스“아 진짜 개 추워 한파 미친 거 아냐”
“진심 얼어 죽을듯 그러고 보니 에이코 집 이 근처라지 않았어 우리 그냥 거기로 가면 안 돼”
“어 우리 집”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새된 목소리에 렌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소란의 발원지에는 코트며 목도리 따위를 야무지게 싸매 입은 소녀 여럿이 펭귄 무리처럼 한데 뭉친 채 재잘거리고 있었다. 코트 밑으로 보이는 치맛단의 무늬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이 근방에 있는 여자 중학교에 다니는 모양이었다.
“너희 에이코네 집 아직 안 가봤어 진짜 대박인데”
“아, 진짜아 말하지 마아”
“뭔데 뭔데”
“말하지 말라니까아”
‘에이코’로 추정되는 소녀가 팔을 내저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나 추위로 발갛게 물든 얼굴에 미소가 완연한 것으로 보아 정말로 싫은 눈치는 아닌 듯했다. 아마 그냥 조금 부끄러운 정도가 아닐까. 렌은 대수롭지 않게 걸음을 옮겼다.
“에이코네 방, 진짜 장난 아니라니까 온통 탐정왕자로 도배해 놨어”
“헐~ 아케치 고로 진심 대~박”
“어, 진심 완전 탐정왕자 하렘임 나 보고 깜짝 놀랐잖아”
“아, 뭐래 그정도까진 아니야아”
“아니긴 뭐가 아냐 나카무라 에이코 진짜 하렘왕임 완전”
“아니라니까아아”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귀청이 따갑도록 크게 퍼졌다. 그 탓에 렌은 주머니에서 울리는 기계음을 듣지 못했다.
‘내비게이션을 개시합니다.’
그러니까, 이게 다 뭐람.
렌은 눈을 의심했다. 어느새 이세계에 들어온 것은 그렇다 치고, 평범한 가정집이었을 주택이 어쩌다 이런…… 이상한 공간이 되어 있는 것인지. 게다가…….
“어서 오세요냥.”
눈앞에는 아케치 고로……로 추정되는 존재가 나풀나풀한 미니 스커트 메이드복을 입은 채 고양이 귀와 꼬리를 달고 나긋나긋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인지 아케치……인가”
렌은 무심코 중얼거렸다. 진짜 아케치라면 저딴 복장을 하고 렌에게 생글생글 웃으며 냥냥거릴 가능성은 0을 넘어 ‘무無’라고 봐도 무방하니 아무래도 누군가의 팰리스 속에서나 존재하는 인지상의 존재임은 분명해 보였다. 다만, 이 팰리스의 주인이 렌을 적으로 인지하지는 않는지, 렌은 괴도복이 아닌 평상복 차림을 유지하고 있었다.
“녜에, 아케치 고로예요냥.”
‘녜에’ 지금 ‘녜에’라고 한 건가 텔레비전 화면 속 탐정 왕자라고 해도 그렇게 혀를 절반쯤 씹어먹어 버린 듯한 왜곡된 유아기적 발음으로 말꼬리를 잡아 늘인 적은 한 번도 없을 텐데. 정말로 이렇게까지 인지가 말도 안 될 정도로 왜곡된 팰리스가 존재한다고 혹시 아케치 고로라는 이름을 가진, 아케치 고로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또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 아마도 그런 게 분명하다. 세상에는 도플갱어가 3명은 존재한다고 하니까. 어쨌든 이 인지 존재가 자신이 아는 아케치는 아닐 것이다. 렌의 가여운 두뇌는 터무니없는 인지부조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파업 상태에 이르렀다. 그 탓에 렌은 인지 아케치가 가까이 다가와 팔짱을 끼고 어깨에 머리를 폭 기대는 상황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아케치는 렌보다 키가 작았다. 약 10cm가량.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들어가요냥. 다들 기다려요냥.”
꼭 그렇게 말끝마다 냥냥거려야겠어 모르가나도 엄청 당황하지 않는 한 어미에 냥을 붙이지는 않는다고 렌의 횡격막이 말도 안 되는 어미를 견디지 못하고 거부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불수의적으로 경련하는 횡격막 탓에 렌은 인지 아케치를 뿌리치지 못하고 딸꾹거리며 팰리스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지옥도가 펼쳐지는 중이었다.
검은 세일러복을 입고 한 쪽 눈에는 안대를 한 아케치 고로가 왠지 모르게 불타는 일본도를 쥔 채 허공을 응시하는 너머로 바니걸 복장의 아케치 고로가 퇴폐적인 표정으로 얼굴을 붉히며 당근을 할짝거리고 있고, 그 옆에는 헐벗은 몸에 피로 물든 붕대와 쇠사슬을 칭칭 감고 흰 날개 한쪽이 꺾인 아케치 고로가 안광 없는 시선으로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화려한 무늬의 붉은 기모노를 반쯤 벗은 듯이 입고 장발을 흐트러트린 채 곰방대를 문 아케치 고로, 연분홍색 미니 스커트 간호사복과 간호 모자를 쓴 채 목에는 청진기를 걸고 한 손에는 주사기를 든 아케치 고로, 복잡한 무늬의 고딕 스타일 수트를 입고 이상할 정도로 눈을 새빨갛게 빛내며 입가에 한 줄기 붉은 피를 흘리고 있는 아케치 고로, 간신히 평범하게 교복을 입고 있나 싶었더니 머리에 개 귀가 달리고 개 목줄을 맨 채 ‘멍멍’ 짖는 아케치 고로……. 그 사이에서 한 명의 아케치가 걸어나와 렌의 앞에 섰다. 프릴이 크게 잡힌 흰 앞치마를 입은……. 그러니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앞치마밖에 입지 않은 아케치 고로였다.
“어서 오세요, 여보♥”
어째서인지 말끝에 새빨간 하트가 붙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렌은 멎은 줄 알았던 딸꾹질이 다시 시작되는 것을 느꼈다. 등골이 서늘해지며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아니, 백번 양보한다 쳐도 왜 내가 여보야 난 이 팰리스의 주인도 아닌데 그러나 렌이 그런 불만을 제기하기도 전에 해당 아케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식사부터 하시겠어요 목욕 먼저 하시겠어요 아니면…….”
대체 자신은 어떤 죄를 지었기에 알몸 에이프런 차림의 아케치가 양뺨을 가련하게 붉히며 온몸을 배배 꼬는 광경을 보는 벌을 받게 된 것일까……. 렌은 아케치의 말이 전부 끝나기 전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곳에 더 있다가는 평생 몰라도 될 심연을 너무 많이 알게 될 것만 같았다 필사적으로 몸부림치자 팔짱을 끼고 있던 메이드 아케치가 ‘꺅’ 작위적인 신음을 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덕분에 치마가 휙 들춰 올라가며 그 속에 숨어 있던 충격적인 디자인의 레이스 속옷이 렌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너무 난폭한 짓은 싫어요냥……♥”
“…….”
싫다면서 대체 왜 응석부리듯이 올려다보면서 콧소리를 내는 건데 렌은 그렇게 묻는 대신 몸을 돌려 필사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마루키의 말이 지금처럼 사무친 적이 없었다.
렌은 차가운 겨울바람이 땀에 젖은 얼굴을 마구 때려 귀가 꽁꽁 얼어붙고 나서야 자신이 현실이 돌아와서도 계속 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뒤늦게서야 자신이 어쩌다가 팰리스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중학생은 정말 무섭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