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Search
    Sign in to register your favorite tags
    Sign Up, Sign In

    protagoleft

    ☆quiet follow Yell with Emoji 💖 👍 🎉 😍
    POIPOI 22

    protagoleft

    ☆quiet follow

    주인공이랑 아케치가 동거하면서 뭔가 먹는 연작(예정) 입니다

    컵라면동거 첫날.

    휑하게 비어 있던 집에 가구가 하나하나 채워졌다. 날씨는 아직 봄이 되려면 멀었다는 듯이 쌀쌀했고,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 놓은 탓에 집 안팎을 오다니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빨갛게 얼어 있었다. 아케치는 무엇이 들었는지 모를, 보기보다 제법 묵직한 박스 하나를 거실 구석에 내려놓았다.
    “아, 그거 이쪽.”
    이삿짐 센터 직원과 함께 침대를 방에 배치하던 아마미야가 뒤늦게 상자를 발견하고는 질질 끌어 주방으로 옮겼다. 안에서 무언가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했더니, 아무래도 주방용품인 모양이었다. 어디 들어갈 물건인지 박스 위에 적어 놨으면 두 번 일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아케치는 떨떠름하게 아마미야를 쳐다보다가 쯧, 작게 혀를 차고는 남은 짐을 들이러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과 한 고양이)이 한 집에서 살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케치의 생존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케치 본인조차도 자신이 어째서 아직 살아있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자신이 죽은 날짜부터 약 1년 가량이 지난 상태였다는 것밖에는.
    즉, 아케치 고로는 1년 간 혼수상태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1년 동안 입원비를 내 준 사람이 있었다. 더 정확히는, 사람들이.
    병원 직원 중에 정신을 잃은 채 병원에 실려온 '탐정 왕자'를 알아본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아케치가 소문대로 정말 무연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입원비를 대신 내줄 결심을 했고, 혼자서 모든 비용을 대기는 어렵다는 판단으로 신뢰할 수 있는 몇몇에게만 정보를 공유하여 필요한 금액을 충당했다.
    정말 미련한 사람이 다 있다고 아케치는 생각했다. 아무리 팬이라도 그렇지, 고작해야 TV 속 꾸며낸 모습이나 본 것이 전부인 상대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보답받을 가능성 따위는 어디에도 없을 텐데.
    타인에게 빚지고 싶지 않았으므로, 아케치는 돈을 갚겠다고 했다. 그는 살짝 웃고는,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저요, 죽고 싶었거든요.”
    동생이 뜻하지 않게 사망한 후로 내내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그는 말했다. 혼자 살아남은 자신이 미워서, 조금이라도 즐거워지면 곧바로 죄책감이 생겨났다고. 그러던 중에 혼수상태로 실려 온 아케치를 발견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무슨 운명 같다고 생각했어요. 아케치 군을 처음 알게 된 것도 동생 때문이었거든요. 그 애, 완전히 팬이라서, 입만 열면 아케치 군 얘기밖에 안 해서 가끔은 좀 지겨울 정도였는데. 누워 있는 아케치 군을 보니까, 그 애가 생각나서요.”
    어떻게든 살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동생이라면 그것을 원할 테니까. 그러려면 자신이 살아 있어야 하니까, 어쩌면 그 애가 자기 죽지 말라고 아케치를 이 병원으로 데려다 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며 그는 울먹거리며 웃었다.
    “그러니까 오히려 제가 도움받은 거예요. 감사합니다. 살아나 주셔서.”
    아케치는 그 이야기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극구 거절하였으므로 어찌할 도리 없이 돈을 갚는 대신 부지런히 재활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사람이 1년이나 누워 지내다 보면 온 몸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된다. 근육은 다 빠져 한 걸음을 걷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고, 일반식은 소화조차 할 수 없어 미음만 먹는 생활이 며칠간 이어졌다. 미음에서 죽, 죽에서 일반식으로 식사가 바뀌는 동안 아케치를 살려 놓은 그 사람은 아주 이따금, 일을 해야 할 때만 아케치를 찾아왔다. 보답을 바란 것이 아니니,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지난한 재활 끝에 퇴원할 수 있게 되었을 때도 그는 찾아오지 않았다. 아케치가 퇴원 수속을 밟는 동안, 그간 안면을 튼 다른 직원이 퇴원을 축하한다며 말을 걸었다. 짧은 대화 끝에, 직원은 ‘그’의 동생이 어쩌다 죽었는지를 입에 담았다.
    “그 왜, 재작년 봄에 전철 탈선 사고 있었잖아요. 그때 둘이 같이 타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아, 이 어찌나 역겨운 이야기인지.

    아케치는 정처 없이 걸었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바빠, 재작년 갑자기 방송에 나타나지 않게 된 이후 행방불명되었다던 탐정 왕자가 창백한 얼굴로 제 옆을 비틀비틀 스치건 말건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했다. 겨울 칼바람이 차갑게 얼굴을 에고, 아직 근육이 온전하지 못한 다리는 잘못 디디면 그대로 풀썩 주저앉을 듯 위태로이 경련했으나 아케치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그저 걸었다. 이대로 사라져 버리고 싶다. 아니,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어야 했다. 모든 것이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아케치 고로의 비존재야말로 무엇보다도 필요했을 텐데.
    아케치는, 할 수만 있다면 몸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었다.
    그때, 누군가 아케치의 팔을 낚아채 잡아당겼다.
    “조심해요”
    균형을 잃고 뒤로 쓰러지려는 아케치의 등을 누군가 단단히 받쳤다. 코앞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쌩하니 내달려 사라졌다. 깜짝 놀란 탓에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쿵쾅거리는 박동이 지나치게 생생해 속이 울렁거렸다. 신물이 역류하며 욕지기가 치밀어 아케치는 몸을 비틀어 빼내고는 주저앉아 헛구역질했다.
    “우웩…….”
    “취했어요”
    아케치를 붙잡았던 남자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으며 등을 두드렸다.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삶이라는 역겨운 장난질에 그만 만취해 버린 것이다. 헛구역질이 지속되자 눈물샘마저 자극되기 시작해, 아케치는 눈물과 함께 토기를 꾹 삼켰다.
    “이제, 괜찮습…….”
    아케치는 고개를 들었고,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운명을 의심했다.
    “……아케치”
    아무리 보아도 어울리지 않는 둥근 안경테 너머로, 깜짝 놀란 듯 크게 뜬 눈이 아케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케치 고로는 그렇게 아마미야 렌과 재회했다.

    그 후 며칠 동안 발생한 모든 자질구레한 난리법석을 제하고 말하면, 아케치가 아마미야와 동거하게 된 까닭은 몹시 단순해진다. 그간 시도가 제공하던 거주지에 머물던 아케치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후로 거주할 공간이 사라진 상태였고, 도쿄 내 대학에 입학해 다시 상경한 아마미야가 고르고 골라 주변 지리나 건물의 상태 등을 따져 가장 괜찮다고 생각한 매물은 방 2개짜리, 혼자 부담하기에는 조금 비싼 맨션인 탓에 월세를 절반 분담해 줄 동거인을 구하고 있었다. 서로의 필요가 본의 아니게 일치해 버린 탓에 두 사람은 함께 살기로 합의하게 되었다.
    “물어보니까 미리 가서 살아도 된대.”
    “전 입주자는 어쩌고”
    “말 안 했나 거기, 사고 물건이라. 뭐가 자꾸 나와서 들어가는 사람마다 못 살겠다고 방 뺐다는데.”
    “…….”
    왠지 위치나 평수에 비해 값이 너무 싸더라니. 그러나 귀신이 정말 있었다면 아케치 고로는 이미 한참 전에 온갖 귀신에게 시달려 죽어 버리고야 말았을 터다.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귀신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러므로 아케치는 신경 쓰지 않고 아마미야가 이사 오는 날까지 ‘나오는 집’에 홀로 머물렀다. 당연하게도, 그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짐이 많지 않은 덕분에 이사를 끝마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닥 청소까지 끝낸 이삿짐 센터 직원들이 현금을 받아 떠나가자, 집에는 아마미야와 아케치만이 남았다.(모르가나는 르블랑에 가 있다는 모양이다.) 창문을 닫고 난방을 돌려도 한기가 가시지 않아 집안은 약간 쌀쌀했다. 정리되지 않은 채 널부러진 박스 여럿을 둘러 보던 아마미야가 물었다.
    “배고픈데, 뭐 좀 먹을래”
    “먹을 거 없어.”
    아케치의 대꾸에 아마미야가 의아해하며 빌트인 냉장고를 열었다. 그 안에 반쯤 마신 500ml 생수 한 병밖에는 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아케치는 심드렁하게 그 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냉동실 문까지 열어 보고 나서야 겨우 현실을 받아들였는지, 아마미야가 다소 경악한 눈치로 물었다.
    “그동안 뭐 먹고 살았길래.”
    “밖에서 대충.”
    거짓말이었다. 아케치는 그동안 거의 끼니를 챙기지 않았다. 아무것도 입안에 넣고 싶지 않은 탓이었다. 음식의 맛이 느껴지는 것만으로도 욕지기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말까지 그에게 할 필요는 없었다. 어쩌다 보니 같이 살게 되었다고는 해도 이런 말을 할 사이는 아니니까. 아마미야가 뒤통수를 긁적거리다가 말했다.
    “편의점에서 뭐라도 사오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없어.”
    “그럼 대충 사 올게.”
    필요 없다는 얘기였는데. 그러나 그렇게 정정하기도 전에 아마미야는 벌써 문밖을 나선 이후였다. 굳이 나가서 말릴 마음은 들지 않아 아케치는 그냥 거실에 주저앉았다. 어쩌자고 동거 따위를 승낙했는지. 벌써부터 피로감이 몰려왔다.

    컵라면 두어 개. 주먹밥 여러 개. 스포츠음료와 콜라. ‘먹고 싶은 거 골라.’ 전혀 먹고 싶지 않았다. 조금도. 그러나 그런 말을 꺼내는 것도 성가셔 아케치는 소금 맛 컵라면과 스포츠음료를 골랐다. 아마미야는 배가 고프다는 말이 진실임을 증명하듯, 라면이 익는 동안 주먹밥을 세 개나 해치웠다. 3분에 세 개, 그러면 한 개를 다 먹는 데 껍질을 까는 시간을 포함해서 고작 1분 남짓 걸렸다는 소리인데. 아케치는 질린 듯 아마미야를 쳐다보았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는 고작해야 스포츠음료를 한 모금 홀짝거린 게 전부였다. 그것만으로도 벌써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그런 티는 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잖아도 재회부터 엉망진창이었다. 앞도 제대로 보지 않고 걷다가 오토바이에 치일 뻔하지 않나, 그대로 주저앉아 헛구역질까지 했던 탓에 아마미야는 아케치가 그때 완전히 취해 있었다고 아직까지도 오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존이 치가 떨리도록 불쾌해 견딜 수 없노라고 고백하느니 차라리 주정뱅이라는 오해를 사는 편이 더 나았다. 약한 모습 따위는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의 앞에서라면 더더욱.
    아케치는 컵라면 뚜껑을 열고, 아무렇지 않은 척 나무젓가락으로 면을 집었다. 짭짤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자 주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배가 고프다.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다. 아케치는 입을 열었고, 푹 익은 면이 곤죽이 되도록 오래도록 씹었다. 삼키자 뱃속이 뜨거워졌다. 아케치는 기계적으로 면을 씹어 삼키기를 반복했다. 조용한 거실에 이따금 후룩거리는 소리만이 울렸다. 문득, 컵라면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정말로, 맛은 없었다.

    “정리하기 귀찮아…….”
    국물까지 죄다 비운 컵라면 용기에 주먹밥 비닐을 대충 쑤셔 박은 아마미야가 벌렁 드러누운 채로 투덜거렸다. 아케치는 식곤증으로 반쯤 졸며 중얼거렸다.
    “당장 치워.”
    어쩐 일인지, 욕지기는 올라오지 않았다. 몸이 따뜻했다.
    Tap to full screen .Repost is prohibited
    🍜🍜🍜🍜🍜☺☺☺🙏🙏🙏🙏🙏💯💯💯👍👍👍👍👍
    Let's send reactions!
    Replies from the crea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