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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아케가 동거하면서 뭔가 먹는 연작 3편입니다

    3. 콘수프아케치는 병원에서 정신을 차렸다.
    몇 달간 익숙해진 입원 병동은 아니었다. 주위엔 흰 가운을 입은 의사며 간호사가 몹시 피로한 표정으로 바쁘게 걸음을 옮겼고, 조금 멀리서는 누군가 앓는 소리며 울음을 터트리는 소리 따위가 지속적으로 귀청을 울렸다. 손등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 있고,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졌다. 몸을 일으키려 들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졌다. 정신이 없는 동안 얼마나 땀이 흘렀는지 옷이 피부에 불쾌하게 달라붙었다. 아케치는 마른침을 삼켰다. 식도에서 따끔따끔하게 통증이 일었다. 고개를 약간 돌리자 검은 정수리가 보였다. 푹 웅크린 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작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몸살감기라도 걸렸나 보지. 어쩐지 아침부터 목이 아프고 팔다리가 내내 아린 데다가 아무리 몸을 덥혀도 손발이 차갑더라니. 변기를 부여잡고 먹은 것을 죄 게워 낸 이후가 기억 나지 않는 것을 보아 그쯤 해서 쓰러진 모양이었다. 그 후로는, 뭐. 응급실에서 일어난 것을 보아 어떻게든 했겠지.
    바보 같다. 몸 상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추태란 추태는 죄다 보여 버리다니. 아니, 정말로 바보 같은 것은 그게 아니라……. 두통이 점점 심해져 아케치는 이를 악물었다. 잇새로 미처 억누르지 못한 신음이 새었다. 끙끙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는지 아마미야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안경이 얼굴에 비뚤게 걸려 있었다.
    “정신이 들어 좀 괜찮아”
    사정없이 떨리는 목소리가 신경에 거슬렸다. 다시금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너, 머리 이상한 거 아냐”
    짧은 문장을 완성하기까지도 몇 번씩이나 기침을 내뱉어야만 했다. 고작해야 공기가 진동할 뿐인데도 목구멍이 사정없이 찢기는 듯했다. 이런 말은 내뱉을 가치가 없다고, 필사적으로 막는 것만 같다. 그러나 아케치는 거푸 기침하면서도 말을 이었다. 전부 토해내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널 죽이려고 했던 거. 잊었어”
    아마미야는 답이 없었다. 아케치는 콜록거리면서 상체를 어떻게든 일으켰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며 손끝이 덜덜 떨렸다. 숨을 쉬기도 어려워 가슴팍이 크게 들썩거렸다.
    “말했잖아. 네가 뭘 원하든. 그건 내가 아냐. 나에게 그딴 걸 바라지 마.”
    그와 자신은 친구가 아니다. 라이벌도, 아니다. 하물며 같은 공간에서 머물며 소꿉놀이 따위를 할 리가 없다. 그러고 싶은 마음은.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이제 더 토할 것도 없을 텐데 위장이 또다시 요동치며 위액이 역류했다. 어딘가 상처라도 났는지 비릿한 피 맛이 덩달아 느껴졌다. 이명이 날카롭게 귓속을 파고들어 두통이 더욱 심해졌다. 실핏줄이라도 터졌는지 시야 구석이 붉게 물들었다. 아무리 똑바로 서려고 해도 몸이 자꾸만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갈 곳 잃은 분노만이 쌓여, 마치 눈앞에 흔들리는 붉은 깃발을 보고 무작정 달려드는 소가 된 것만 같았다. 아케치는 침대에 고꾸라졌다. 아마미야가 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으나, 무슨 뜻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마치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것만 같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이 여전히 들끓건만, 몸만큼은 의사와 상관없이 땅 밑으로 푹 꺼져 들어가 움직일 수 없었다.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자면, 근 몇 년간 아케치의 삶이란 붉은 깃발을 향해 달려드는 황소나 다름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한심하기 이를 데가 없다. 투우는 대개 승패가 정해져 있다. 투우사는 언제나 이기고, 황소는 패한 끝에 목숨을 잃도록 예정되어 있다. 창끝에 온몸이 찢긴 채 앞뒤 분간조차 못하고 달려들어 죽음을 자초하고 있었던 주제에, 자신이야말로 투우사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셈이다. 결코, 구경거리에 불과한 황소가 아니라고.
    나약하고 멍청한 자식.
    그러나 더 나쁜 점은, 아케치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부분이다.
    이제 눈앞에는 그 어떠한 깃발도 없다. 싸울 필요도 없다. 그런데 너덜너덜해진 황소는 왜 아직도 제가 난동을 부려 놓은 경기장에 남아 있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

    아케치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상할 정도로 몸도 마음도 가라앉아 있었다. 그토록 울분에 차 있던 것이 마치 꿈속에서 벌어진 일 같았다. 아니, 어쩌면 지금 이곳이야말로 꿈인 걸까. 아케치는 눈가를 문지르려다가, 손이 어쩐지 무겁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아마미야가 아케치의 손을 붙든 채 잠들어 있었다.
    “…….”
    뭐지, 이 자식. 징그럽게. 아케치는 떨떠름하게 손을 빼냈다. 그러고도 손끝에는 여전히 아마미야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아마미야가 부스스하게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일어났어 몸은 좀 어때”
    잠에 취했는지 발음이 죄 뭉개지고 목소리는 목감기라도 걸린 듯 걸걸했다. 눈이 퉁퉁 부어 있다. 아니, 얼굴 전체가 부어 있다. 머리는 떡이 졌고, 입술은 갈라지고 희게 껍질이 일어나 있었다. 거기에 입 주변이며 턱에 수염까지 거뭇거뭇 자라기 시작해 그야말로 못 봐줄 꼴이었다. 그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미추를 제하더라도 자신이 볼 광경은 아니라는 생각에 한숨이 저절로 새었다.
    “멍청한 건지, 정신이 나간 건지…….”
    “둘 다 아니야.”
    그 말만큼은 단호한 탓에 아케치는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마미야가 퉁퉁 부은 눈으로 아케치를 똑바로 바라보며 속삭였다.
    “할 말이 있어.”
    “……나는 없어.”
    “아케치는 없어도 돼. 나는 있으니까.”
    어이가 없었다. 한번은 가라앉았던 화가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해 못 하겠어 너랑 대화 따위 할 마음 없다고 말한 거야.”
    “알아. 없어도 돼. 그냥 들어줘.”
    짤막한 어절이 들려올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케치는 언성을 높였다.
    “그러니까 싫다고……”
    “부탁할게.”
    아마미야가 손을 뻗어 아케치의 소맷자락을 붙들었다. 아케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대체 왜 네가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왜 내가 정신이 없을 때는 뻔뻔스레 손까지 잡아 놓고 지금은 고작 옷 끝좀 잡았다고 손을 그렇게 떨어. 왜 나한테 빚진 듯이 굴어.
    이겼던 건 너면서.
    정당한 건 너면서, 왜.
    “……그냥, 한 번만 들어주면 안 될까”
    왜 나 따위가 중요하다는 것처럼 구는 거야.
    말을 듣기를 바란다면 그냥 아케치의 의사 따위 짓밟아 버리면 된다. 아케치는 무력하니까. 필사적으로 발버둥 쳐 봤자 벌레가 꿈틀거리는 것과 다름없다. 근육이 다 빠진 몸으로는 그에게 저항할 수조차 없고, 아케치를 도와줄 사람 따위는 한 번도 존재했던 적이 없다. 한 번만 창을 찔러 넣으면 그대로 숨통을 끊어 버릴 수 있다.
    그렇게 해 준다면 아케치도 마음 편히 분노할 수 있을 텐데.
    “한 번이면 되니까.”
    그러면 이런 바보같은 짓거리는 당장이라도 그만둘 수 있을 텐데.
    눈앞에는 붉은 깃발도, 창대도 없다. 투우사도 없다. 유일하게 승자라고 할 수 있을 존재는 아케치가 고개를 끄덕였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바보처럼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가서 얘기하자.”
    같이 돌아가자, 라고. 기도처럼 되뇌면서.

    “얼마 나왔어”
    얼굴이 시커먼 채로 영수증을 쳐다보면서도 아마미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케치는 손을 뻗어 영수증을 낚아챘다. 이런저런 항목을 합산한 끝자락에는 다섯 자리 숫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구급차도 불렀었나. 이러면 당연히 비쌀 수밖에. 돈을 낭비하는군. 고열이라고 해 봐야 죽을병도 아니다. 애초에 호들갑떨며 응급실까지 올 만한 일도 아니었을 터다. 아케치는 짧게 혀를 차고는 영수증을 주머니에 접어 넣었다.
    “이따 줄게.”
    빚지는 일은 이제 질색이다. 그에게도 선뜻 낼 만한 가격은 아닐 테니 이 편이 깔끔할 터였다. 그러나 아마미야는 어쩐지 흔쾌한 기색이 없었다.
    “……솔직히.”
    그렇게 운을 떼나 싶더니 또 입을 다물어 버린다. 아케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채근했다.
    “왜 말을 하다가 마는데”
    아마미야는 그 말을 듣고서도 입술을 꾹 다물고 있다가, 연이은 재촉에야 간신히 무언가 토해내듯 중얼거렸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게 얼굴이 시뻘겠다.
    “……솔직히 부담되는 건 맞는데, 그래도 싫어.”
    “뭐가”
    “그냥, 싫어.”
    또, 또 그냥이다. 아케치는 순간적으로 속이 꼬였다. 그냥은 대답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넘어갈 수는 없는 것이다. 왜 죄다 이렇게나 이해가 안 가는 짓들만 하는 거지 그게 대체 무슨 이득이 된다고.
    “이상한 고집 부리지 마.”
    당연하게 뻔뻔스러운 항변이 돌아오리라 예상했건만, 아마미야는 도리어 어깨를 움츠릴 뿐이었다. 그러게, 고집이지. 그렇게 답한 것도 같았다. 맥이 탁 풀렸다.

    둘 다 외투를 안 가지고 나왔던 탓에 돌아가는 길에는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야밤에 택시를 잡아타는 일도 아케치에게는 익숙했지만, 아마미야는 그렇지도 않은 모양인지 미터기에 표시된 숫자가 야간 할증에 힘입어 순식간에 네자릿수를 돌파하자 입이 떡 벌어져 버렸다. 멍청한 표정이다. 저래서야 그가 세계마저 구한 적 있다고, 그렇게 특별한 존재라고 대체 누가 믿을까. 별것도 아닌 일로 아케치에게 애걸하고, 이상한 고집이나 부려대는데. 아케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바라본 도심은 해 없이도 스스로 빛났다. 네온사인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눈앞을 어지럽게 스쳐 아케치는 눈살을 찌푸렸다. 황소라면 저 빛에도 무작정 덤벼들었겠지. 아니, 가정할 필요도 없다. 인간들을 마음대로 뒤흔들어 일상을 깨부수면서, 아케치는 자신이 이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고 있다고.
    그러나 실은 한 번도 이긴 적 없고, 계획은 애초에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모든 짓거리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아케치는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차가운 유리가 이마의 열을 빼앗아 갔다. 유리에 반사되어 아마미야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언뜻 시선이 맞은 착각이 들었다. 그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듣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당장이라도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가 버리고 싶다. 아케치는 상상을 실행으로 옮기는 대신 눈을 감았다. 어차피 그곳에는 돌아가야 한다. 이 추운 밤에 핸드폰도 지갑도 없이 돌아다니는 것은 그냥 미친 짓에 불과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려 애썼지만, 여전히 머리가 지끈거렸다. 유리창은 금방 미적지근해졌다.

    아마미야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새까만 형체가 발밑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아케치는 그제야 모르가나의 존재를 기억해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그러게 이 몸이 별일 아닐 거라고 그랬잖아”
    모르가나는 꼬리를 높게 세운 채 아마미야의 다리 주위를 한 바퀴 맴돌고는 아케치를 쳐다보았다. 아케치에게 고양이의 표정을 알아보는 재주는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몸 상태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꼿꼿하게 서 있던 꼬리가 영문 모르게 이리저리 흔들렸다.
    “썩 괜찮아 보이지는 않는데…… 입원할 정도는 아니라는 거지”
    “그래.”
    아케치는 짧게 대답했다. 아마미야가 쭈그려 앉아 가볍게 모르가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빠르게 손길을 피한 모르가나가 몸을 한차례 털었다.
    “고양이 취급 하지 말라고”
    “고양이면서.”
    “고양이 아니라니까 ……아무튼 슬슬 자자. 너희도 피곤하지”
    실없는 만담 끝에 모르가나가 크게 하품했다. 아마미야가 고개를 저었다.
    “미안, 모르가나. 단둘이 얘기 좀 하게.”
    “아…… 뭐, 그래. ……그럼 이 몸은 먼저 잔다.”
    왠지 모르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한 모르가나가 아마미야의 방으로 곧장 들어가 버렸다. 그 뒷모습에 대고 아마미야가 인사했다.
    “잘 자.”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미야가 뒤통수를 긁더니 짧게 한숨을 쉬고 신발을 벗었다. 아케치도 뒤따르듯 집으로 들어왔다.
    거실은 엉망진창이었다. 의자 한 개는 멋대로 나뒹굴고, 먹다 남은 음식들 역시도 식탁 위에서 차갑게 말라비틀어진 채였다. 아마미야의 밥에 꽂힌 깃발만이 여전히 의기양양하게 위용을 자랑하고 있어 문득 헛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으아, 짧게 탄식을 흘린 아마미야가 의자를 일으키며 물었다.
    “몸은 좀 어때 내일 얘기해도 되는데.”
    “됐어, 지금 해.”
    아케치는 고개를 저었다. 작은 흔들림에도 시야 전체가 일렁거리며 두통이 재발했지만, 참지 못할 고통도 아니었다. 모르가나마저 치워 버린 마당에 내일로 미뤄서 무엇 하겠는가. 그저 빨리 끝내 버리고 싶었다. 아마미야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일단 앉아 있어. 금방 치울 테니까.”
    돕기도 꼴이 우스웠으므로 아케치는 말없이 소파에 앉았다. 음식이 순식간에 버려지고, 싱크대에 그릇들이 쌓였다. 아케치는 무심코 에그 샐러드를 떠올렸다. 도무지 먹을 마음이 들지 않아 맛만 보고 말았던 그 음식도, 저런 식으로 버려졌을까.
    쓸모가 없으면 버려지는 것이 당연하다지만.
    분명 난방이 돌고 있을 텐데도 오한이 들었다. 아무래도 몸 상태가 여전히 안 좋은 모양이었다. 아케치는 팔짱을 끼고, 아주 약간만 몸을 웅크렸다.
    잠깐 눈을 감은 사이에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멈추어 있었다. 어느새 근처까지 다가온 아마미야가 숟가락을 꽂은 컵 한 개를 불쑥 내밀었다.
    “뭐야”
    “콘수프. 뜨거워.”
    왜 자꾸만 뭔가 먹이려 드는 것일까. 아케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아마미야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추레하고, 몹시도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쓸 필요도 없을 안경이 콧등에서 흘러내려 코끝에 비스듬하게 걸려 있었다. 실랑이조차 귀찮아져 아케치는 말없이 컵을 받아 들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컵은 데일 듯이 뜨거웠다. 옅은 노란색 액체에서 김이 느리게 피어올랐다. 거의 물처럼 묽은 수프에서는 아주 미약한 짠맛과 은은한 단맛이 났다. 아케치가 수프를 먹는 모습을 보고서야 아마미야가 의자를 끌어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 등을 구부리고 양손으로 컵을 감싸 쥔 자세가 볼썽사나웠다.
    “그래서, 할 말이라는 게 뭔데”
    아케치는 일부러 더욱 날카롭게 물었다. 끊어내야 한다. 무엇이 되었건 간에, 여기서 전부 끝내야만 한다. 그러한, 한없이 의무감에 가깝게 느껴지는 충동이 피어올랐다. 아마미야가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아케치에게 시선을 맞췄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가가 확연하게 젖어 있었다.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아케치가 아는 아마미야는 저런 표정 따위 짓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얄미울 정도로 당당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람을 꿰뚫듯이 쳐다보고, 언제나 자유로워서. 아케치와는 달리 그 어떤 것에도 얽매여 있지 않아서.
    저런 표정은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는데.
    아케치는 문득 닫힌 문을 떠올렸다. 문을 불쑥 열고 들어오는 침입자는, 자신이다. 자신이야말로 이 집의 불청객이다. 아무렇지 않게 들어와서 모든 것을 엉망진창으로 휘젓고 있다.
    피가 혈관을 흐르는 불쾌한 소리가 귓속을 가득 메웠다. 이명이 일며, 위장이 다시금 요동쳤다. 아케치는 컵을 세게 쥐고는 입가에 가져갔다. 입안 점막이 뜨거움에 고통을 호소했다. 액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감각마저 느껴졌다. 아케치는 숨을 토해냈다. 아마미야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아까 하던 얘기 말인데.”
    “어떤 거.”
    “네가…… 살아있을 거란 확신이 없었던 건, 맞아.”
    아마미야는 몹시도 주저하며 말을 골랐다. 마치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이. 그의 손끝이 별 이유도 없이 연신 컵 표면을 문질렀다.
    “그랬겠지.”
    아케치는 긍정했다. 아마미야가 확신했건 말건 그 의견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애초 아케치 본인조차도 자신이 살아있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으니, 죽었으리라는 판단이 차라리 합당했다. 그러나 아마미야는 그렇게 여기고 싶지 않기라도 한지, 메말라 희게 껍질이 일어난 입술이 잘게 떨렸다.
    “다시 만나고 싶었던 것도 맞아. 그 뒤로 내내…… 내가 뭘 더 할 수 있었을지, 다른 방법은 없었을지 고민했으니까. 역시 내 욕망이었겠지.”
    “그래서, 뭐. 참회라도 하겠다고 필요 없어, 그딴 거.”
    무슨 말을 하려 그리도 애먹나 했더니. 아케치는 짧게 혀를 찼다. 애초에 그가 자신에게 참회한다는 발상 자체가 말도 안 된다. 말하자면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사과하는 일과 진배없다. 아마미야는 아케치에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았다. 아케치는 아마미야에게 조금도 상처받지 않았다. 그저, 화가 났을 뿐이다.
    그랬을 뿐이다. 정말로.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난 그때 만난 아케치가 정말로…… 너라고, 생각했어.”
    달랐으니까, 라고 아마미야는 고했다. 그전까지 아마미야 렌이 겪었던 그 어떤 아케치의 행동과도 달랐노라고.
    “오히려 지금이랑…… 더 비슷했어.”
    아마미야는 그 이상으로 판단 근거를 설명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야 깊게 들어가면 완전히 그의 주관적인 인상일 테니 당연하다. 아케치도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아마미야가 자신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듣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만 하려는 말의 논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상상력은 무한하다는 흔해 빠진 경구와는 달리, 상상은 경험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간에 경험하여 아는 일만이 상상의 소재가 된다. 아마미야는 마루키가 만들어낸 아케치가 ‘그가 경험한 아케치’만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청렴하고 정의로운, 모범생인 아케치 고로도, 그날 엔진실에서 폭주하고 발광하던 아케치 고로도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렇다 한들 그건 가짜다.
    아마미야가 보는 것은 결국 여기에 있는 아케치 고로가 아니다. 아케치는 모르는, 혼자만의 추억을 멋대로 겹쳐 보고 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그 겨울에 어떤 일이 있었건, 아마미야가 무엇을 겪었건 결국 아케치하고는 하등 상관도 없는 일이다.
    “할 말은 그게 다야”
    아마미야는 입술을 잠시 달싹거리다가 결국 고개를 숙여 버렸다. 검은 머리칼과 굵은 안경테에 가려져 더는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정적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아케치는 그제야 자신이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라면 당연히, 할 말이 더 남아 있을 것이라고. 내면에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 설령 아케치가 납득하지 못할지언정 언제나 꼿꼿하게 의지를 내보이리라고.
    아마미야 렌은 꺾이면 안 된다. 고작 아케치가 내뱉은 한두 마디 말에 상처 입어서는 안 된다. 이따위로 유약하게 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럴 거였다면 차라리, 그때 총에 맞아 죽었어야지.
    “……그냥, 네가 살아있었으면 했던 것뿐이야.”
    그러나 아마미야는 언제나 아케치의 바람대로는 움직여주지 않는다. 아케치는 움켜쥔 컵을 내던져버리고 싶어졌다. 컵이 깨지고, 수프가 바닥을 온통 더럽히는 광경을 상상하기는 몹시 용이했다. 그리고 그 후에 아마미야는, 잔해를 주워들고 바닥을 닦겠지. 아케치는 다 식은 수프를 단번에 들이켰다. 차가워진 수프에서는 짠맛이 유독 도드라졌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면서”
    “…….”
    고개를 든 아마미야가 눈썹을 일그러트리고, 입술 역시도 일그러트렸다. 꼭 마치 웃는 것처럼, 혹은 화를 내는 것처럼, 아니면 슬퍼하는 것처럼. 아케치로서는 도무지 감정을 분간해낼 수가 없다.
    대답은 아주 가냘팠다.
    “다는, 몰라.”
    어쩌면 아무것도 모를지도 몰라.
    예상과는 전혀 다른 답이었다. 다만 아케치는 어째서인지, 자신이 그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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