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 2아케치는 그 후 사흘을 내리 앓았다.
약을 먹어도 식지 않는 열에 밤새 뒤척거리다 해가 뜨고 나서야 간신히 잠드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동안 내내 아마미야가 죽 따위를 침대까지 가져와 먹이고, 땀 흐른 몸을 젖은 수건으로 닦아 주고 옷을 갈아입히고는 했다. 아케치는 때로 저항했고, 때로는 그저 무력하게 아마미야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아니, 어쩌면 전부 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열에, 잠에, 혹은 약에 취해 몽롱해진 가운데 이상한 악몽을 꾸고 만 것이다.
아니라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지 않은가.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손에는 권총을 쥐고 있다.
총구에 달아 놓은 소음기 구멍으로 잿빛 탄연이 피어오른다. 매캐한 냄새가 비강을 긁으며 들어와 폐부를 더럽힌다. 눈앞에는 쓰러진 그가 보인다.
아마미야 렌은 죽었다.
철제 책상의 상판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채, 피를 흘리며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한때 그것을 바랐을 터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믿었을 터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 환희나 도취도 없이, 타고 남은 잿가루만이 내면에 회반죽처럼 치덕치덕 달라붙는다.
불그죽죽한 핏자국이 창백한 낯짝 위를 가면처럼 덮고 있다. 피가 엉겨 가닥가닥 뭉친 검은 머리칼을 총 끝으로 가르자, 단단한 이마 한가운데를 꿰뚫은 구멍이 성흔처럼 드러난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되다는 허울 좋은 말은 제 쓸모를 다하지 못한다.
아케치는 고개를 숙여, 사체와 시선을 맞춘다. 제가 만들어 낸 구멍 안을 들여다본다. 그러나 아마미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짓이겨진 뇌와 흐르는 뇌수 역시도 보이지 않는다. 아케치가 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공허가, 아케치를 들여다본다.
‘이게 네가 바라는 일이었니’
아케치는 대답하지 않는다.
공허는 새하얀 가운을 입고 있다.
심야, 어쩌면 새벽에 더욱 가까울 시간일까. 아케치는 느리게 눈을 끔뻑거렸다. 언제부터 자고 있었던 것일까. 기억나지 않는다. 오늘은 며칠일까. 그것조차 모르겠다. 이래서야 마치 입원실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 같다. 모든 감각이 또렷한데도 아무것도 잴 수 없다. 세계와 단절된 듯이.
‘저요, 죽고 싶었거든요.’
그 병원 직원에게는 진실을 털어놓아야만 하는데. 그가 아케치에게 주어야 할 것은 감사가 아니라 정당한 복수라고. 아케치 고로는 그 누구도 살린 적이 없노라고.
아케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차가운 공기가 가슴을 채웠다. 열이 전부 내렸는지, 몸을 일으켜도 불쾌한 통증이나 현기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싸늘하게 식은 손끝만이 잘게 떨렸다.
아마미야 렌을 죽여야 한다.
충동은 공기만큼이나 서늘하게 가슴속을 식혔다. 그때 실패했던 일을 지금 다시 하는 것뿐이다. 그는 지금 불과 몇 걸음밖에는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거리에서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잠들어 있을 터다. 근처에 모르가나가 함께 있겠지만, 그래봤자 고양이 한 마리에 불과하다. 문제는 없다. 주방에서 칼을 찾아 찔러 넣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살을 가르고, 내장을 끄집어내어 엉망진창으로 흐트러뜨리고, 마치 단순한 살해 이상의 이유가 있다는 듯이 토막 내어서 유린하고 나면 끝난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죄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것이 아케치가 바라는 일이어야 했다.
아케치는 거실로 나왔다. 창밖에서 가로등 불빛이 들이쳐 어둠을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주방에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고, 그저 한기가 감돌았다.
식기 건조대에는 백엔 숍에서나 팔 것처럼 유치한 무늬가 인쇄된 머그컵이 뒤집힌 채 놓여 있고, 그 옆에는 크고 작은 접시들이 일렬로 세워져 있었다. 손에 잡힌 서랍을 무작정 열자 아무렇게나 쑤셔 박힌 만국기 이쑤시개 봉지가 불쑥 튀어나왔다.
“…….”
관자놀이 부근이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고요했던 심장이 아플 정도로 쿵쾅거리며 헛구역질이 치밀었다. 아케치는 서랍을 닫았다. 이쑤시개 봉지가 입구에 걸려 제대로 닫히지 않고 덜걱거렸다. 정리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냐. 이를 악물어도 두통은 가시지 않았다. 이쑤시개 봉지를 잘 갈무리하여 깊숙이 밀어 넣은 후에야 서랍은 말끔하게 닫혔다. 한숨이 저절로 새었다. 어차피 죽여 엉망으로 만들 생각이면서 고작 서랍 따위에나 신경 쓰다니. 제대로 닫히든 말든 상관도 없을 텐데.
그러나 주방을 더 뒤질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아케치는 거실 너머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저 문을 열면 아마미야가 바보 같은 얼굴로 잠들어 있을 것이다. 아케치가 그를 다시 죽일 결심을 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로.
‘어쩌면 아무것도 모를지도 몰라.’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무것도 몰라서는 안 된다. 그런 말에 만족해서도 안 된다. 아케치에게는 그런 바람이 주어질 수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밤은 지독히도 길었다.
그저 조금, 배가 고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