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토모로/스토커(..)IF그 사람이 살 것 같은 물건을 골라 카메라를 설치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 사람이 잡지인터뷰에서 골동품을 좋아한다며 언급했던 시계와 비슷한 느낌을 고르면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라면 분명 이 골동품점에서 물건을 살거라고 예상했다.인터넷 쇼핑은 일절 하지 않고 전부 손수 가게를 다니며 발품을 팔아 물건을 사는 조금 번거로운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 그러니 분명히 자신의 생활구역 가게에는 싫든 좋든 한번씩은 들릴 확률이 높다. 무엇보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골동품점은 이 마을에서 이 가게 한 곳 뿐이다.
골동품점이라고 해야할지 고물상점이라고 표현해야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덕분에 그 사람이 살것 같은 물건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작업은 무사히 마쳤고, 예정대로 그 사람은 며칠 뒤 가게에 방문해 초췌한 몰골로 물건을 구경했다.
며칠이나 제대로 먹지 않은걸까. 제대로 생활은 하고 있는걸까. 이리저리 덥수룩해지고 눈가가 패인 얼굴을 유리창 너머로 힐긋 바라보며 나는 초조하게 이를 악물었다. 이런 상태니 걱정이 안될리가 없잖아. 나는 평범하게 당신이 잘 살아있는지, 어째서 탐정을 하지 않는것인지 궁금해서 여기에 왔을 뿐인데.
지금은 이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몰라 두려워 카메라를 설치하는 상황까지 오게됐다.
번거롭고 귀찮은 작업이었지만 적어도 카메라를 설치한다면 이 사람의 상태를 확인하기 쉬울것이다.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상태로 의사만 방문하고 있으니, 이런 방법을 선택하는 수밖에.
나는 그 사람이 물건을 사고 있는 골동품점 옆의 오래된 카페에서 앉아 숨을 죽였다.
집 안에서는 새까맣게 죽은 눈으로 조용히 숨만쉬던 그 사람이 유일하게 조금 눈을 빛내는 이 순간을 보고 싶었다. 그 사람은 가게의 안에서 몇번 숨을 조용히 고르고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나마 생기를 띄게 된 올리브색 눈이 왼쪽 선반부터 오른쪽 선반까지 천천히 흝더니 마음에 드는걸 발견한 듯 잠시 멈췄다.
시선이 멈춘 뒤에는 마치 주인의 눈치를 보듯이 매우 조심스러운 손길로 관심있는 물건을 집어든다. 나도 아니고 그 사람같은 손님이 물건을 본다고 뭐라고 하는것도 아닐텐데, 그는 매우 신중했다. 집어든 유리도자기 인형을 한참 손끝으로 흝다가 입이 천천히 두어번 움직여 모양을 만들었다. 아마도 귀엽다고 중얼거리는거겠지. 그렇게 한참을 소중히 쓰다듬다가 다음 물건으로 향한다.
…살아있지 않은 그것들을 만지는 행동들이 무척 즐거워보였다.
내가 카메라를 설치한 물건을 사가는지 궁금한것도 있었지만 그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그 사람의 행동에 집중했다.
신기한걸 발견하고는 조금 웃는 얼굴. 조금 얼굴을 찌푸리면서 파손도를 확인하는 얼굴. 무엇을 생각하는 것인지 잠시 딴생각에 빠진 얼굴 등. 유일하게 살아숨쉬는 그 사람을 볼 수 있는 이 시간이 좋았다.
나는 턱을 괴고 원래 목적을 잊은채 그 사람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나의 동경. 나의 별 것 아닌 삶을 전부 차지하고 삼킨 사람. 아무것도 없던 내가 유일하게 만나고 싶어하던 사람.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살아줬으면 좋겠어.
… 다시 탐정으로 돌아와줬으면 좋겠어.
그런 생각에 빠져있을때, 그 사람이 문득 마지막 선반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잔잔한 눈으로 아주 천천히,무언가를 시선으로 흝었다.
순간, 심장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긴장으로 숨이 꽉 조이는 탓에 목이 아팠다. 손 안에 식은땀이 고이는 것 조차 잊을정도로 힘을 준 채 나는 아주 짧고도 고통스럽게 긴 시간동안 그 광경을 응시했다.
그 사람이 발걸음을 멈춘곳은 내가 카메라를 설치해둔 물건이 있는 그 선반이었다.
정정하겠다. 그 사람이 살 것 같은 물건을 골라 카메라를 설치하는건 어렵지 않았지만, 실제로 사 갈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조금 자신이 없었다. 항상 취향이 같을수는 없을거고, 나는 그 사람이 아니니 추측해본다 한들 그 사람의 마음에 드는 물건을 정확하게 고를 능력도 없다. 무엇보다 우리는 말 한마디 섞어본 적 없는 타인이다.
내가 고른 물건은 선반구석에 먼지가 잔뜩 쌓인채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오래된 라디오였다.
나무로 이루어진 몸체의 모서리는 손을 타 둥글어졌고 크기는 작은 주제에 안쪽의 부품이 무거워 휴대용으로도 쓰지 못하는 하자품이다. 누가 이런걸 사갈까 싶은 아주 오래되고 낡은 라디오.
그 라디오를 약 5분간 천천히 바라보던 그 사람은 이윽고 아주 짧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햇빛을 받지 못해 하얗게 된 손이 조금 높은 선반위의 라디오 몸체를 쥐었다. 마치,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를 소중히 들어올리는 듯한 몸짓이었다.
왜일까.순간 내가 들어올려진것도 아닌데 어째서인지 눈가가 조금 아팠다.
알 수 없는 충동이 일었다. 도망가고 싶기도, 갑자기 끌어안고 하염없이 그 사람에게 고해하고 싶기도 한 그런 충동이었다.
그 사람은 손가락으로 먼지를 세 번 쓸어내리고는 라디오를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나는 내 계획이 성공했다는 성취감과 그 사람을 잘 이해하고 있음에 대한 기쁨과, 비굴한 인정욕과, 그 사람에게 죄를 저질렀다는 죄책감으로 한참동안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그 사람이 가게를 나가는 그 순간 내내, 나는 테이블에 고개를 박은 채 웅크려 떨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진실은, 그 사람의 집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이 성공했다는 것. 계획은 성공했다.
“살아줬으면 좋겠어.”
혼잣말을 중얼거린 나는 제대로 카메라가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의 앱을 열었다. 그 사람이 가는 길을 비추는 카메라는 마치 나도 집으로 함께 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착각일 뿐이다. 선택받은건 내가 아니라 그 라디오고, 그것이 그 사람의 취향이었을 뿐이다.
좋겠네, 너는. 낡아빠진 라디오 주제에 그 사람에게 선택받아서.
나는 그 사람이 가는 길을 한참이고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카메라의 앱을 다시 조용히 껐다. 이제 다음에 킬때는 그 사람의 동향을 확인할 수 있을것이다.
당신은 집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는 당신의 삶에 개입해도 괜찮은걸까.
스스로가 스토커라는 자각은 당연히 있다. 내가 하는 짓은 범죄고 그 사람이 안다면 경멸받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행위를 멈출 생각이 없다. 멈추게 된다면 그건 이 사람이 탐정으로 다시 복귀하게 되었을 때일것이다.
이 사람이 탐정으로 다시 돌아온다면 나는 다시 당신이 해결한 사건을 뉴스나 신문에서 보던 그 나날로 돌아갈거고,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아무 의미없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단 하나. 당신이 해결하는 사건들을 보기 위해서.
그걸 위해서라면 스토커든 뭐든, 무엇이든 할 것이다.
그러니 빛나줘. 다시 돌아와줘, 나의 탐정.
모로 파로라는 이름을 가진 나의 탐정을 떠올리며 나는 수면부족인 눈을 조금 감았다. 눈을 감아도 망막 안에 빛이 비치는 느낌이었다.
눈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