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 the Line 2북극의 평행선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주의사항~
※아이작카사 메인의 카사른
※PTSD적인 요소라든가, 전체적으로 마음이 괴로울 수 있는 내용이 다수 존재합니다.
※과거 시점으로 카논카사적 요소가 있습니다.
※카논이 사가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는 언급이 있지만 형제애인지 CP적으로인지는 열린 해석에 맡기는 설정.
※원작과 전혀 관련 없는 2차 창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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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세이돈 신전이 무너지고 있을 때, 나는 이 인생도 끝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이겼다면 영광스러운 죽음이라던가 뭐라고라도 말할 수 있겠지만 이런 규모의 붕괴라면 아무래도 참패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다른 녀석들 역시 바닷속에 매장될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죽기 전에 순수한 형태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던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겠지.
피닉스가 마음속에 간직한 소녀.
그런 미소를 볼 수 있다면 지옥 같은 섬에서도 살아갈 의미를 얻는 것일까.
그것을 잃는다면 어떤 슬픔에 빠지는지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러한 사랑도, 눈물도 모두, 정말로 귀중한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처음부터 그런 것이 주어진 적이 없었다
내가 얻어온 것은 그런 마음의 한 조각뿐, 그마저도 나의 것이 아니니 그 귀중함은 허상이고 간단하게 사라질 뿐이다.
다시 생각해도 부질없군.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혼자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전에 죽으려 했던 것과 다름없는 방법으로 물속에서 다시 죽어가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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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해투사들이 되살아난 지도 7년이 되었다. 그간 다사다난했지만 세계는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평화로운 시기가 유지되고 있을 때는 그들도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카사가 이오와 바이언 두 사람과 술을 마시러 간 것은 그리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다.
"...왜 갑자기 같이 마시자고 하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나..." 카사는 쥐고 있던 잔을 들어 다시 한모금 마셨다.
"지금쯤이면 말할 수 있겠지." 바이언은 카사를 재촉했다.
"무슨 사이냐고 해도...동료, 정도가 아닐까."
"둘이 같이 있는 걸 몇 번이나 봤는데 데이트 아냐" 이오는 납득할 수 없다는 듯이 손가락질했다.
"그 정도는 사귀지 않아도 할 수 있잖아. 같이 밥 먹거나 영화 보는 정도는." 그 외에도 같이 간 곳은 더 있었지만, 카사는 굳이 첨언하지 않았다. 임무 수행을 하면서나 사적으로 아이작과 동행한 적은 꽤 있었지만 어쨌건 간에 누구도 그 이상을 시도하거나 고백 같은 것은 한 적이 없었다. 아마 두 사람이 아이작에게 물었더라도 대답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둘이 무슨 사이냐든가 그렇게 물어보았더라도 말이다.
"나이 때문에 숨기고 있었을 줄 알았는데." 바이언은 날카로운 눈매를 숨기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미 아이작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비밀 연애설을 떠올렸지만 평소 아이작의 행동부터가 눈에 띄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그런 제안을 한 사람은 카사였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얘기라면 카사의 능력으로 들여다보면 알 수 있을 텐데. 그 타겟도 본인이라는 게 문제로군..." 이오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사귄다고 하더라도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할 문제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이작은 동료면서도 동생 같은 녀석이기 때문에 신경 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나를 의심하고 있는 거냐." 카사는 이렇게 된 김에 두 사람의 마음속이라도 들여다봐줄까 생각했지만 금방 관두었다. 대신 지금까지의 일을 떠올릴 뿐이었다. 사귀는 사이는 아니다...하지만 카사는 아이작과의 미묘한 기류를 즐기고 있긴 했다. 사귀지 않기 때문에 그런 기분이라면 마음껏 느낄 수 있다. 어디까지나 아이작이 질려서 그만두기 전까지의 이야기지만. 그렇지만 카사가 생각해도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아직도 그때의 일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것일까. 카사에게는 그것이 삶을 마감하는 방법 중 가장 괜찮은 방법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지만, 아이작에게는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을 듯한 사건이었다. 지금이라도 그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붙잡고 같이 죽어주지 않겠냐고 간절하게 부탁한다면 한 명 정도는 있을 것 같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불공평한 느낌도 좀 드는 것이다.
"..." 카사는 잔에 남은 술을 마저 입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이만 가볼게. 내일 약속이 있어서."
"...그정도면 좀 인정하지 그래" 이오는 질렸다는 듯이 등 뒤에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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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은 번화가에서 좀 떨어져 있는, 인적이 드문 거리에 서 있었다. 이번에는 카사가 보자고 말했던 영화를 볼 예정이었다. 한창 상영 중인 것이라면 장르를 크게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었지만 카사는 대체로 영화 그 자체보다는 사람들의 반응에 조금 더 관심이 있어 보였다. 가령 호러 영화를 보면 놀라는 대목이라든가, 코미디라면 웃음이 나오는 장면, 혹은 슬픈 장면이 흐를 때, 함께 뒷자리에 앉아 있는 그의 시선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아이작 역시 영화보다는 카사의 반응을 궁금해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가끔 내용 자체에 집중하고 싶어지면 사람이 거의 없는 작은 영화관을 찾아가는 것이다.
조금 일찍 도착하긴 했지만 근처에 행인만 몇 명 보일 뿐이어서 아이작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카사가 걸어올 법한 길을 짚어가며 배회하면 저 멀리 불량한 남자들에게 시비가 걸린 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카사 역시 성실한 인상이라고는 말할 수 없고, 왜소한 모습 때문인지 유난히 잘 말려드는 느낌이다. 한 명은 그 어깨를 밀치려고 하지만 생각보다 밀리지 않고 버티는 것에 당황했다. 다른 한 명은 조금 거리를 두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또 한 사람은 카사의 빨간 손톱을 발견하고는 비웃었다. 호모냐든가, 그것들은 아무하고나 하고 다닌다는 투로 경박한 발언이 시작됐기 때문에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카사."
"아, 제시간엔 도착할 생각이었는데."
카사는 이 일이 대수롭지 않은 해프닝인 듯 대답했지만, 불량배들의 분위기가 바뀐 것을 보고는 아이작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목소리에서부터 심기가 불편한 것이 느껴졌지만 그 표정도 꽤 일그러져 있었다. 아이작이 적대적인 분위기를 숨기지 않고 있었고 그것은 그들에게도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수적인 면에서 비슷해졌기 때문에 상대방이 경계하는 것도 있었지만 카사의 눈앞에 있는 그는 큰 키에, 더 이상은 소년이라고 부를 수 없는 건장한 사내였다. 긴 머리에 반반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온전하지 않은 큰 흉터가 깊게 남아 있는 한쪽 눈을 드러내고 다니는 점에선 상당히 위험인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평소에는 그를 해계의 막내라고 생각하고 있어 예전의 어린 모습을 비춰보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의 시선은 좀 더 객관적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건달들은 허세 부리듯 거친 말만 하다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버렸다. 카사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하며 아이작의 팔을 끌어당겼다. 아이작은 굳은 표정을 고치고는 카사의 옆에서 걸으며 영화가 끝나고 뭔가 먹는 게 좋을지 고민했다. 그간 어쩌다 보니 이성과도 교류가 있어 데이트 비슷한 것을 한적도 어느 정도 있지만 여자가 아닌 남자, 그리고 그게 카사라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사는 그런 아이작이 오히려 의아했다. 그에게는 예전에 의도치 않게 카사가 잡병들을 상대하던 것을 보인 적이 있었고 상당히 많은 걸 알게 만들었다. 자신을 상대로 딱히 공을 들일 필요는 없을 텐데도 착실하게 연인이 되는 교제 단계를 순서대로 밟아가려는 듯한 기색이어서 한편으로는 정말 이 녀석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이 찾아간 영화관은 수십 년 전에 세워진 건물로, 아이작만이 아니라 카사의 나이도 훌쩍 뛰어넘는 곳이었다. 추억을 느끼기 좋다는 점을 내세워 고전 영화의 상영 비율이 높았고 카사가 어렸을 적에 한 번 우연히 보게 되었다는 영화도 그중 하나였다. 제목조차 잊고 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떠올랐다는 이야기에 아이작도 한 번은 보고 싶어졌던 것이다. 내용은 꽤나 평이했지만 마지막에 흐르는 배경 음악의 쓸쓸한 분위기가 인상 깊었다. 카사는 영화관을 나오면서, 역시 지금 기준으로 보면 명작은 아니라고 평했지만, 아이작은 그가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카사는 옛날, 어떤 시기에 이것을 보게 되었을까. 아이작은 그가 예전에 본 다른 영화들도 같이 보게 될 일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음에는 만나는 장소를 더 인파가 많은 곳으로 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불량배들에게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던 것은 생각하기 싫은 예전 일을 떠올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날, 두 사람이 바라보는 밤바다는 여러 가지로 잊을 수 없을 경치였다. 그것이 그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각자 현실과 자신들의 생활로 돌아가야만 했다. 카사는 아이작이 먼저 떠날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아 기력이 생기는 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먼저, 돌아간다."
카사는 목이 잠겨 짧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대로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조금 무리해서 몸을 움직인 탓에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휘청거리며 걸어 나가는 것뿐이었다. 젠장. 이렇게 빈틈을 보여선 안 되는데. 카사는 아이작이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자신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 주기를 빌었다. 걷는 소리에서부터 몸 상태를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은 제쳐두고서라도 말이다. 그러나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넘어지려 했을 때, 자신을 부축하는 팔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 카사는 아이작을 쳐다보지 않은 채로 자세를 고쳐 일어섰다.
"돌아갈까."
아이작이 그대로 부축했지만 카사는 그가 가까이 붙어있다는 사실이 곤란했다. 지금 자신의 몸에 피와 오물이 섞인 불쾌한 냄새가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작도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혐오스러운 감정이 지워지지 않았다.
해계의 신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카사는 자신을 잡고 있는 아이작의 손을 떼려는 듯 팔을 움직였다.
"......이거 좋은 그림은 아니잖아."
아이작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지만 그보다는 걷는 것을 보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렇다면...술에 취한 걸로 해."
"그거라면 괜찮겠지. 마주치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는데."
"나는, 아까 전에..." 아이작은 조금 더 걷다가 다시 입을 열었지만, 더 이상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쓰지 마라."
'아까 전에 너를 봤을 때 곧장 막아섰어야 했어.'라고 뒤늦게 말해봐야 소용이 있을까. 아이작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이때를 생각하면 후회가 남는 것이다. 카사는, 당시에는 비틀거리긴 했어도 그나마 멀쩡한 듯 버텼지만 다음날부터는 꽤 오랫동안 앓았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잡병들에게 시달린 탓으로, 찰과상이나 멍이 생기고 몸살이 났다. 깨진 손톱을 짧게 다듬을 수밖에 없었고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자기 처소에 틀어박혀서 요양하거나 모습을 비치더라도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이야 관심이 없거나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아이작은 그를 계속 보아왔기 때문에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카사가 아이작과 눈이 마주쳤을 때 웃는 시늉을 한 것도 결국 괜찮은 모습을 가장했을 뿐이었다.
-하나도 괜찮지 않았어. 어째서 그럴 거라 생각하고 있었지
아이작은 자신이 했던 판단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에 자책하면서도 스스로에게 분노하고, 다시는 그에게 속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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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참 빠르긴 하구나."
아이작이 익숙한 분위기로 칵테일을 고르고, 마시는 일련의 동작을 보고 있던 이오가 감탄했다. 아이작은 새삼스럽다는 듯 이오를 쳐다봤지만 처음 마시러 왔을 때를 생각하면 그 놀라움도 이해가 간다. 아이작이 막 성인이 되고, 이오와 바이언이 평소 마시러 가던 가게에 그를 데려갔을 때는 어두운 조명에도 익숙하게 자리를 찾아가는 두 사람을 따라가면서 잘 보이지 않는 시야에 조금 긴장하고, 벽에 기대어 있는 남녀의 향수 냄새라든가 직원의 설거지 소리, 여러 소음과 같은 감각을 낯설어했기 때문이었다. 술의 종류조차 구분하지 못하던 그는 이제 어느 정도는 자기 취향을 찾아가고 있었다.
"부하들도 다 나이 들고 있고-" 이오는 훈련 시 부하들의 동작이 둔한 것을 불평했다.
"애초에 우리처럼 어릴 때 온 신입이 손에 꼽았으니까." 바이언은 올리브가 꽂혀있는 칵테일 픽을 손가락으로 잡고 살짝 돌렸다. "해투사가 될 사연이 있는 어린애가 늘어나는 것보단 좋겠지."
"그렇겠지."
두 사람은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지상을 정화하는 일에 가담하기로 했던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그들에게는 필요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다시 깨어나고 맞이한 세상은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어 보였지만, 그들의 시야가 넓어지면서 그 사이에서도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카논도 그때는 어렸던 거야."
"꽤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는군." 바이언이 의외라는 듯 말했다.
"애늙은이는 너겠지."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걸리는 게 하나 있는데." 바이언은 아이작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때의 카논은 카사하고 뭘 꾸미고 있었는지 말이야. 너는 옛날에 그걸 알아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뭔가 알고 있어"
"그건." 아이작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없어."
"요즘 사이좋잖아. 물어보면 알려줄지도 모르지." 이오는 호기심을 감추지 않았다.
"글쎄. 물어본다고 해도 순순히 알려줄까. 어쩌면...그걸 알아내려고 작업하던 거였냐고 하면서 빠져나올 텐데."
아이작은 그렇게 말하고는 마음속으로 그 말을 부정했다. 죽기 전에 카사하고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면 그런 목적으로 접근할 일은 없으니까. 바이언하고 이오는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 말을 조금 되새겼다.
"허니트랩인가..."
"그건 카사가 하는 일 아녔어 그러니까, 변신해서."
"너희들, 알고 있었나 카사가 어떻게 했는지." 아이작은 이오의 말에 되물었다.
"뭐...소문이야 많았지만 우리도 제대로 아는 이야기는 없었어. '시드래곤'이 어땠는지 생각하면 알잖아."
"그때는 우리도 어렸으니까."
"신도 속였으니까 그건 어쩔 수 없지."
"전에 카논한테, 카사한테 무슨 지시를 했냐고 물었을 때 본인에게 물어보라고 했었는데," 아이작은 복잡한 심경이었다. "알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작이 털어놓은 고민에 바이언은 '마치 여자 친구의 전 애인의 존재를 신경 쓰는 남자...'같은 인상을 받았지만 성실하게 답해주기로 했다.
"정 마음에 걸리면 물어보는 것도 좋고, 아니면 아예 묻어 버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우린 이미 한 번 죽었다 살아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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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는 남극해 기둥을 찾아온 카논과 마주치고는 당황했지만, 할 말이 있다는 그의 말에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그다지 내키진 않았지만 계속 밖에 있다면 다른 사람들 눈에 띌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성투사들과 싸우기 전까지도 자주 만나던 것은 아니었지만 되살아난 후에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정도만 드물게 마주쳤을 뿐이라 오랜만에 단둘이 있게 된 이 상황이 어색했다.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는 카사와 간단한 사복 차림의 카논은 서로 거리감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맡길 일이라도"
카사는 조금 어지러운 방을 정리하면서 물었다. 카사와 만나는 것을 피하다시피 하던 카논이 다시 찾아온 이유는 한 가지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보통 그런 이야기는 그가 이차원을 통해 곧장 카사를 찾아오거나, 카사가 은신한 상태로 그를 찾아가서 하게 되는 것이지만 어쨌든 이번에는 그 요청을 거절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엔 그런 이야기가 아니야. 더는 맡길 생각도 없고."
"...긴 이야기가 된다면 커피라도 내올까."
"그건 아무래도 좋아. ...아니. 오랜만이니까 부탁하지."
카사가 커피를 내리고 카논과 자신의 몫까지 두 잔을 가져왔다. 그것을 마시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다. 카논은 이것이 마지막으로 그에게 대접받는 한 잔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물결이 흔들리는 잔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을 후회하고, 그에 대한 책임감으로 살고 있지만, 너희들에게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
카사는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과거'. 그것은 단순히 7년 전의 일을 말하는 것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너에게 사죄해야만 해."
카논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네가 죽으려 했을 때, 너를 발견한 것을 마치 행운처럼 여겼던 것을."
카사는 자신이 이 해계에 왔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륨나디스의 부름이었지만 그때 물에 몸을 던진 것은 분명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죽지 못했다. 카논이 그를 처음 봤을 때는 자신의 형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처음에 그가 구하려고 한 것은 카사 본인이 아니라 그의 쌍둥이 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곧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카사를 보고는 실망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캐물었다. 그때 사실을 알게 된 그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었다.
"너의 괴로움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능력을 이용한 것을."
그는 악몽을 꾸는 카사의 모습을 보아왔다. 그리고 깨어나서 눈물 흘리는 것을 쓰다듬으면서 달랬다. 그때마다 카사는 그가 언젠가 해주었던 말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네가 어떤 삶을 살아왔던지 간에 잊어버려. 넌 바다에 몸을 던졌을 때 한 번 죽었으니까. 그 능력을 제어하는 건 내가 어떻게든 도움을 주겠다.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면 분명 무서운 능력이 되겠지. 어떤 강한 자의 심장이라도 네 손에 올라갈 테니까. 그걸로 죄를 지은 녀석들을 처단하는 거다.
"너한테 그런 지시를 하는 게 아니었어. 어린 너한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직접 문장의 형태로 듣고 있으면 지금까지 쌓아온 가치관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후회하지 마. 부정하지 마. 카사의 마음이 저려온다. 카논의 후회는 어쩌면 자신에게 접근한 사실 자체를 후회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면 더 이상 제정신을 붙잡을 수가 없다.
"평생 용서하지 않아도 좋다."
"나는," 카사는 이제야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좋았다고. 어차피 너도, 나도. 서로 필요한 걸 주고받았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면서."
"......"
"그렇게 사과까지 해야 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잖아"
카사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능력을 다룰 수 있게 되고 나서, 그는 카논과 있을 때 그 능력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카논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그의 형이 애증이라는 형태로 남아 있었으니까. 그건 다시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는..." 카논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카사의 곁에 있던 다른 사람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를 더 소중하게 생각해 줄 수 있는 존재를. 그 모습을 떠올리면 둘 다 이제는 어린애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마지막 인사처럼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이제는 그런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카논이 돌아가고 혼자 방에 남은 카사는 그 말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몸을 웅크렸다. 단단한 갑옷을 입고 있어도 마음의 괴로움은 막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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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남아있을 게 아니었나...'
카사는 잡병들이 서로 대련하는 것을 건성으로 쳐다보면서 한숨 쉬었다. 그의 눈에 대부분의 병사는 비슷비슷한 수준이어서 승패가 어떻게 될지 큰 관심사는 아니었지만 일이니까 하는 수 없었다. 그렇다곤 해도 가끔씩 눈빛부터 다른 녀석이 있으면 지켜보게 된다. 동료인 해장군들이나 가끔 성역에서 찾아오는 성투사들처럼 순진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도심에선 찾기 힘들다. 속세의 인간들의 욕망은 시시하거나 추악한 것들뿐이어서 깊이 들여다볼 마음은 들지 않았다. 카사 본인이 말하긴 그렇지만 이제 그런 건 진저리 날 정도니까. 카사가 주시하고 있는 신입은 어느새 4명쯤에게서 승리를 따낸 뒤였고 마지막으로 싸우던 거구의 해투사도 마저 쓰러뜨렸다. 그 거한이 넘어지면서 부상이 악화되었기 때문에 다른 잡병들과 함께 그를 부축하려고 하자 카사는 신입을 멈춰 세웠다.
"너는 남아서 실력을 보여줘야겠어."
"아, 륨나디스 님이라면 저도 배워갈 게 많을 겁니다"
카사는 병사에게 먼저 공격할 것을 지시하고 그의 주먹을 피하거나 막아 세웠다. 아직 이 정도지만 카사의 공격에 반응 속도가 늦더라도 어느 정도는 눈으로 따라오는 듯했다. 수행을 거듭하면 어떻게 될지 기대가 되는 수준이었다.
"너, 여기 올 때 배웅하던 사람이 있었지"
"제 소꿉친구입니다만. 그걸 어떻게..."
한창 싸우는 도중인데도 선하게 보이는구나. 카사는 그가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을 잠깐 보여주기로 했다. 여동생 같은 사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마음속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수수한 얼굴의 여자아이였지만 언젠가 그의 마음에 불을 지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 얼굴을 보자 병사로서의 자세는 무너지고 어쩔 줄 모르는 한 청년의 표정이 되어 있었다. 카사는 그가 잠깐만 바라보게 두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방심하지 말라고 가볍게 주의를 주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의 첫마디를 듣기 전까지는.
"기다리게 만들어서 미안해."
애석한 표정을 지은 남자는 강해져야 한다던가, 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떠나도 괜찮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카사는 이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그런 어쩌면...
"윽"
카사는 외마디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섰다. 자신의 앞에 있는 병사가 공격하려는 자세를 보고는 동요했기 때문이었다. 카사는 변신을 풀지 않았지만 마음이 흐트러졌을 찰나의 순간 카사의 실루엣이 드러났던 것이다. 대부분의 잡병이라면 알아채지 못했지만 눈썰미가 좋았기 때문에 간파할 수 있었다. 다시 그를 공격하기 위해 달려오는 남자를 보고 카사는 평정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렇게 말했으면서, 이해할 수 없어.'
카사는 공격에 대응하는 것보다 먼저 변신을 풀어 버리는 것을 선택했다. 그 모습을 유지한 상태로 맞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지만 감았던 눈을 뜨면 신입 병사의 앞을 막고 있는 아이작의 모습이 보였다.
"너 언제부터..."
그가 언제 나타났는지는 카사도 짐작하지 못 하고 있었다. 변신한 순간 알아챘던 것일까. 잡병쪽은 환각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이 상황을 잠시 이해하지 못했다.
"이, 이건 설마 환상이라고 생각했던 건 륨나디스 님이..."
"오늘 일이 새어나가면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
그의 예감이 능력의 본질에 다가갔을 때 아이작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상대방은 알겠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완전히 꼴사납게 되었어. 카사는 자조했다. 이번에는 의도조차 하지 않았기에 더 한심했다. 아이작이 오지 않았더라도 그가 이 상황에서 진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한참 어린 사람들 사이에서 보호받는 대상으로 보이고 있었다. 카사는 자리를 피하면서 자신을 따라오는 아이작을 어떻게 쳐다봐야 할지 알지 못했다. 어쩌면 이번이 결정짓기 좋은 때인지도 모른다. 괴롭지만, 나쁜 일은 원래 몰아서 찾아온다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또다시 찾아올 거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아이작. 오늘 남은 일은 더 없나."
카사가 어떤 의도를 품고 있었는지 아이작이 알게 된 것은 두 사람이 모텔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2.5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