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 (逃避)※최신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캐해는 엉망진창, 개연성은 사경을 헤메고 있습니다
완전 베드 엔드입니다 주의⚠️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페이루 둘이서 바빌에서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이 생각이 안나서...다 죽습니다. 진짜로 다 죽습니다...
제가 눈을 CP럽게 뜨고 있긴 한데 이번글은 논컵에 가깝습니다
이번화를 보고 흥분해서 쓴 초단편 if주저리입니다
제발 이 모든것이 괜찮은 분들만 봐주세요m(_ 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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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는, 가끔 이루마를 데리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갖고 있는걸 모두 버리고 아무도 우리를 모르는 곳으로 가는 상상 말이다.
하지만 그는 바빌이 그것을 원하지 않음을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빌의 보스이자 그 자리를 받아들이길 선택한 이루마는, 그것을 원하지 않을것이다.
오페라는 누구의 의견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도련님의 선택을 존중했다. 비록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바빌은 제 어린 보스에게 의존하는 면이 있었다.
조직원들의 눈에는 이루마라는 희망 없이는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저렇게 연소하고 약한 것에게 의존하고 싶을까 오페라는 가끔씩 이루마가 네팔의 쿠마리를 닮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어린데, 그를 신으로 숭배하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어린 마음에 우월감을 느낀것 같기도 하다. 자신은 다르다고 믿었다. 그들은 이루마에게서 삶의 의미, 나아가야 할 방향을 쫗았지만, 오페라는 그저 이루마를 지키면 그만이었다. 자신의 존재 이유는 명확했고, 타인처럼 이루마에게 구차하게 매달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구속복에 묶인 채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있을 때였다.
희미한 진동이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그의 야생적인 감각은 즉각 반응했다. 몸을 뒤트는 독의 고통보다 더 날카로운 불길한 기척이 온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오페라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카르에고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키리오의 테러가 시작됐다. 도련님은 이미 클라라, 아리스와 함께 대응에 나섰다."
오페라는 그 말을 듣자마자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입은 막혀있었지만 의사표명은 확연했다. 백발의 의사는 한숨을 쉬며 오페라의 목덜미에 주사기를 꽂았다.
"도련님의 명령이다. 네가 먼저 회복해야 한다."
약물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시야는 흐릿해졌다. 오페라의 마지막 기억은 폭발음과 함께 사라져가는 이루마의 기척이었다. 제발 그 철없는 신입호위들이 이번에야말로 제 밥값을 해내야 할텐데. 오페라는 희미해져가는 기억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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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충격과 함께 오페라는 비자발적으로 의식을 되찾았다. 온몸이 덜덜 떨리고,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방금까지 멀쩡했던 병실의 천장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폭발의 여파가 중환자실까지 미친것이다.
그를 짓누르는 잿더미와 무너진 파편들 사이에는 처음 보는 표정의 카르에고와 시치로가 있었다...숨을 쉬지 않는 채로. 두 사람은 자신의 몸을 던져 오페라를 폭발로부터 보호했던 것이다.
그 순간, 오페라는 이루마가 의지하던 모든 이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빌의 최후의 방어선이 완전히 붕괴된 것이다. 더 이상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이루마를 지키는 것 외에,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젠장, 젠장"
도시의 비명은 멈추지 않았다. 연이어 터지는 폭발음이 귓가를 찢고, 자욱한 연기가 세상을 뒤덮었다. 무너진 건물 잔해들이 쾅, 쾅, 굉음을 내며 지면에 처박혔다. 그 자욱한 연기 속에서 오페라는 간신히 이루마를 찾았다. 온몸에 상처를 입고 엉망이 된 채 폐허 위에 서 있는 이루마의 모습은, 오페라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처참했다.
핏자국, 잿더미가 된 잔해들, 그리고 이루마가 간신히 손에 쥐고 있는 낡은 리본은 클라라가 항상 달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 옆에는 폭발로 산산이 흩어진 날카로운 파편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아리스가 자신을 방패 삼아 이루마를 지키려 했던 흔적이었다. 그들의 생명력은 이미 끊어진 지 오래였다. 그제야 오페라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클라라와 아리스는 사라졌고, 이루마는 홀로 남았다는 것을.
"오페라... 선생님은... 시치로씨는... 카르에고 선생님은 어디에 있어"
오페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루마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공허해졌다. 그가 쥐고 있던 클라라의 리본이 힘없이 바닥으로 나폴거리며 떨어졌다. 이성을 붙잡고 있던 마지막 끈이 뚝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클라라... 아리스... 선생님들까지... 전부... 전부 사라졌어..."
이루마는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의 몸은 주저앉지 않았다. 그는 텅 빈 눈으로 무너진 도시를 응시하다가, 비틀거리며 잔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피투성이 손으로 무너진 건물 파편을 밀어내려 하고, 맨손으로 잿더미를 뒤지며 혹시 모를 생존자를 찾으려 애썼다. 그 모습은 처절하고, 또 처참했다. 모든 것이 끝났는데도, 이루마는 홀로 망가진 세상을 지키려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오페라는 신물났다.
"가자."
오페라의 목소리에 이루마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무너진 잔해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직... 남은 폭탄이 있을 거야... 모두를 구해야 해..."
"이대로 죽을 생각이냐 이 멍청아"
오페라는 으르렁거리며 이루마의 어깨를 휙 잡아당겼다. 그의 손아귀에 잡힌 이루마의 몸은 맥없이 흔들렸다. 오페라는 원망스러웠다.
왜 나를 병실에 두고 갔어 왜 나를 데려가지 않았어 나는 너를 지키기 위해서 있는데, 너는 나를 버렸어
"자, 잠시만 오페라..."
이루마는 오페라의 손을 뿌리치는 대신, 그의 어깨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찢어진 어깨에서는 핏물이 번지고 있었다.
"어깨에서 피가 나..."
"그딴 것보다..."
오페라의 목소리는 거칠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사소한 상처가 아니었다.
"치료해줄게..."
"어이, 내 말 들어."
"일단 지혈만 하자. 안 하는 것보다 나을 거야."
이루마는 주머니에서 낡은 손수건을 꺼내 오페라의 어깨를 감쌌다. 엉성하지만 단단한 매듭이었다.
"지금 당장 가야 해."
오페라는 단어 하나하나를 뱉어내듯 토해냈다. 메마른 입술 사이로 절박함 샜다.
"이제 바빌은 없어. 버리고 도망가야 해요."
"그럴 수 없어."
이루마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내 모든 것은 바빌에서 왔어. 9년을 바빌의 차기 보스로 자랐어. 내가 바빌을 버리면, 내 모든 어리광을 들어주고, 내어주고, 쥐어준 모두의 희생은 어떻게 되는데"
그의 눈동자에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따뜻한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처럼, 이루마는 바빌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모든 것을 누려왔다. 수많은 이들의 보호와 희생 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다. 그 희생의 무게가 지금, 이 순간 이루마를 짓눌렀다.
"이렇게 된 건, 다 내 억지 때문이야... 나 때문이었다고... 오페라도 이번에 나 때문에 죽을뻔한거잖아"
오페라는 격렬하게 반박했다.
"애초에 저는 도련님의 호위이고 전투원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요"
"어쩔 수 없지 않거든"
이루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오페라가 나 대신 독을 먹고 구토할 때마다 나를 피할 때마다, 나는 왜 그런지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이루마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려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오페라가 나 때문에 스스로를 희생하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처럼 지내게 만드는 건 너무하잖아..."
뜨거운 눈물이 이루마의 두 눈에 고였다. 떨리는 입술을 꾹 깨물자,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바닥에 흩뿌려진 유리 조각들이 그의 눈물을 머금고 반짝였다.
오페라는 자신의 주박이 벗겨지는 것을 느꼈다.
이루마를 누구보다 의존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나는 네가 모든 것을 알고도 기꺼이 그 길을 선택한 아이라 생각했다.
내 존재 의의는 너를 지키는 것이면 족했다.
네가 나를 아끼는 것을 알았다.
내가 너 대신 독을 먹고 구토해야 할때마다 부채감을 느끼는 것도 알았다. 너 대신 상처가 늘어나는 나를 볼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알았다. 목을 긁다 피가 흘를때마다 너를 피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지 상처 위로 소년시절부터 찬 개목걸이를 죌 때마다 네가 자책으로 조여드는 것 같아서였다.
나는 모든걸 회피한 것이다.
네게 의존한 것이다.
모든 것은 네게 맡겨두고 이 모든 감정을 돌아보지 않아도 되도록, 영원히 나를 쫗는 감정들이 포기하기만 바라며 달려온 것이다.
오페라는 그제서야 수년간 말하고 싶었던 말.
영원히 입안을 맴돌았던 그 말을 토해낼 수 있었다.
"도망가자."
둘은 달렸다.
폐허가 된 거리를 가로질러 달리고 또 달렸다.
시계태엽이 거꾸로 돌아가고 오페라와 이루마는 아주 어린 그날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날이었다. 바빌의 조무래기와 시비가 털려 때려눕히고 잡혀갔던날. 다섯살배기 이루마를 처음 만난 날.
쇠맛이 혀끝을 맴돌았다.
아주 어릴 적 이후로 이렇게 폐가 두방망이질 치듯 달린 건 처음이었다.
자신의 손에 잡힌 온기를 느끼며, 오페라는 달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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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초단편으로 돌아왔습니다
뭐랄까 그 동안은 글을 쓰면서 그래도 몇번 다시 읽어보고...하는 식으로 글을 썼었는데요 이번에는 본지의 미친 도파민과 새벽감성에 먹깅님의 트윗 하나에 결정적으로 불이 확 타올라서 어쩌다보니 후다닥 써버린것 같습니다아...(핸드폰이라 이만큼 쓰는데도 한세월 걸리긴 함)
제가 영감을 받은 먹깅님 트윗
https://x.com/guinipigpapa/status/1955043934947930442t=_ZFSQ0Sxgm82zmlVpHvWWw&s=19
뭐랄까 초반에 공을 들였더니 뒤에서 힘 쪽 빠져버렸네요 (긁적)
>>둘은 달렸다. 마치 처음 서로를 만난 그날, 바빌의 조직원들을 피해 도망가던 멋모르던 다섯 살배기와 청소년처럼<<
사실 이 대사를 쓰고 싶어서 쓰기 시작한건데 어째 항상 목표로 하는 씬은 잘 안뽑힌단 말이죠....
생각을 글로 바꾼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것 같습니다.
그거 아시나요 자해는 꼭 칼이나 약물을 남용하지 않아도 된대요.
그러니까 폭식이라던가 털을 뽑거나 손의 거스머리를 뜯어내는 행위까지도 자해성의 범위에 들어갈 수 있대요, 심지어 헌혈까지도
사실 그 말을 듣고 오페라가 생각이 났어요.
오페라가 많은 면에서 이루마에게 의존을 하니까...어쩌면 이것도 회피성 자기방치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원작 대사가 등장했는데 눈치 채셨나요
개연성을 이어나가기 어려울때 원작 빌리기 만큼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의존이란 것도 원작의 그걸...풀어보고 싶었는데 잘 전달됐을지 모르겠네요. 특히 제가 감정묘사에 약한 편이라... 사실 벌써 부족한 점이 보이는데 이제 힘이 부쳐서 손을 더 못대겠어요 (;∇;)
역시 동인은 꿈 아니겠습니까
부족한 점은 살짝 흐린눈 하시고 그냥 이 사람 본지가 참 즐거웠구나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