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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smoBbatta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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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oss the Line 1

    Cross the Line 1북극의 평행선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사실상 3편)

    ~주의사항~
    ※아이작카사 메인의 카사른

    ※(새삼스럽지만) 오리지널 설정이 다수 존재합니다.

    ※원작과 전혀 관련 없는 2차 창작입니다.

    ----------------------------------------------------------------------

    포세이돈 신전이 무너지면서 모든 것이 해류에 휩쓸려 흘러가고 있었다. 해계를 지탱하던 일곱 기둥이 부서지고 메인 브레드 위너마저 파괴된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패배했음을 의미한다. 아테나를 구하러 온, 고작 다섯 명의 성투사에게.

    "......"

    나는 희미하게 남아있는 생명력으로 깨어났다. 이미 신전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시점에서 손을 쓸 수 없겠지만,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상태를 관망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이 물로 가득 차오르고 해류가 몰아치는 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때는 몸을 보호하는 갑옷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나는 졌구나. 효가한테.
    네 마음이 나약하다고 말할 자격이 내게 있었을까
    나야말로 눈앞의 적도, 크로스를 운반하던 아이조차도 해치우지 못했던 것이다.
    크라켄의 스케일을 입었을 때 비정해지기로 결심했는데...
    하지만 효가. 너는 훌륭하게 적을 쓰러뜨렸어...
    너를 이길 수 없었지만, 그때 널 구한 행동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너는 그렇게 성투사로서 계속 싸워나가면 되는 거야. 너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부유하는 신전의 잔해들 사이로, 누군가를 부축하면서 헤엄치는 인어가 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서 테티스가 자신의 주군을 지상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헤엄치고 있었다. 순간 환각을 보고 있는지 의심했지만, 그녀가 입고 있던 머메이드의 스케일에 하나하나 비늘이 일어나면서 인어의 꼬리로 변하던 중이었다. 헬멧도 잃어버리고, 바위에 여러 번 부딪힌 것인지 비늘은 이미 상처투성이인 채였지만 생명을 불태우며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는 테티스가 사력을 다하고 있어서 이쪽을 쳐다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어차피 피차 도움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상태다. 그리고...오래전에 친구를 구하다가 죽어야 했던 목숨이기도 했으니, 이제야말로 정말 끝이 왔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대로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몸이 식어가면서 죽음이 다가오듯 차가워졌다. 시베리아에서도 이렇게 추위를 느낀 적이 없지만, 그 무엇도 이걸 몰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겨울이 끝나고 찾아오는 봄에도, 이글거리는 태양 빛에도 떠나가지 않을 싸늘함이니까.
    이변을 느낀 것은 조금 지난 후였다. 어디까지 흘러갔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바위가 쌓여 돌무더기를 이루고 있는 곳까지 떠내려왔고, 그곳에 카사가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아주 약간은 의식이 있는 상태 같았다. 피닉스와의 싸움에서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카사는 그때까지도 숨이 붙어 있던 것이다. 가까스로 뜬 빨간 눈은 나를 쳐다보고는 안도한 듯이 천천히 깜빡였다. 나는 그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카사가 내 오른손을 살며시 붙잡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차가워진 손을 떨고 있었다. 이번엔 누군가를 구하거나 할 수 없겠지...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마지막을 함께하는 것뿐이었다.

    "…아이작."
    그가 내 이름을 부르는 느낌이 들었고 그때 아주 약간, 온기가 손을 타고 온몸으로 흘러왔다. 카사도 이런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사내였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기력을 끌어내 그와 나눴다. 비록 이 냉혹한 죽음을 몰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했지만...

    -----

    해계 신전의 파괴와 함께 해투사들 역시 물속에 매장되었어야 했지만 그들이 되살아난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성역에서 성투사들을 부활시킬 때 해계에서도 그러한 제안을 받은 것이다. 아테나가 자신의 전사들을 다시 불러온 이유는 다른 신들과의 전투가 유례없이 빠르게 찾아올 것임을 예견한 데다가, 지금 세대와 다음 세대의 성투사까지 모두 집결시켜야 성전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성역은 총력을 모으는 한편 그들이 싸울 때 또 다른 위기가 생길 것에 대비할 외부 세력을 원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러했지만, 죽었던 인간을 되살리는 것은 천륜을 거스르는 일이었고 그로 인해 신의 벌을 받게 되면 연대 책임을 지게 할 목적임이 다분했다. 이미 죽어가는 인간 하나를 구하기 위해 시간도 거슬러 올라간 전적이 있으니, 그들로서는 자신과 같은 위험을 감수해 주었으면 했을 것이다. 포세이돈은 그런 함의가 있는 제안에 응했다. 그와 아테나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해투사들은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그들은 다시 한번 신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필두는 여전히 카논이었다. 죽기 직전에도 성투사로서 싸웠던 그였기에 썩 유쾌한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이 벌였던 일에 책임을 져야만 했다. 포세이돈은 봉인으로 행동에 제약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줄리앙은 기억을 잃은 채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여행을 하고 있었다. 소렌토는 그 곁을 지키느라 포세이돈 신전에는 가끔만 모습을 비췄다. 아이작과 다른 해투사들은 카논과 함께 해계를 재건해 나갔다. 다들 카논에게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지금까지 지휘해 온 체제를 유지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포세이돈이 그를 용인했고 수습해야 할 일이 많아 책임을 묻는 것은 우선순위가 뒤로 밀렸던 것이다. 특히 부활했던 직후에는 모두 정신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해장군들은 성역과 교류하면서도 해투사의 훈련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래-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고 해봐라."
    카사는 변신한 채로 눈앞에 있는 잡병의 반응을 살폈다. 상대방은 타지에 있어야 할 가족을 갑자기 만나게 되어 당황스러워하는 눈치였고 카사를 공격하던 움직임은 멈춰 있었다. 아이작은 멀지 않은 거리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작의 강한 주장으로 카사가 가진 능력의 정체를 숨겨두기로 했기 때문에 변신을 하는 일은 꽤 드물게 되었다. 지금의 해투사들은 대부분 그것을 환각을 보게 하는 것이라고만 짐작하며 두려워할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카사가 훈련에서 그 능력을 쓸 일이 있다면 한 사람 이상은 그 근처에 있기로 했다. 카사 본인은 이 조치를 달가워하지는 않았고 변신이 아닌 환각 능력을 대신 갈고닦기도 했지만 제일 자신 있는 기술을 쓰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카사를 감시할 필요성을 느끼는 해장군은 아이작 외에는 그다지 없었다. 다른 해장군들은 그 역시 해장군이니 자신의 일은 알아서 잘할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고, 그의 사정을 모르는 그들로서는 한가할 때나 구경하자는 정도의 입장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사의 훈련을 지켜보는 것도 대부분 아이작이었다.
    '아직까지도 이 해계에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아이작은 생각에 잠겼다. 이곳의 정세가 앞으로 어떻게 돌아가든, 그에게 책임 따윈 없고 자신은 할 만큼 했다고 말하며 별다른 이유 없이도 어디론가로 홀연히 떠날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작이 이곳에 온 과정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이작은 카사가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됐는지조차도 알지 못했다. 물어볼 만한 다른 사람들도 모른다고 했으니 카사가 해계에 왔을 때의 일을 아는 사람은 카논 정도밖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남아 있을 이유라면, 어쩌면-
    아이작은 종종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서, 꿈이나 환각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혼자서 바닷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거부하면서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현상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은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그리고 아이작이나 카사조차도 그 일에 대해서는 상대방에게 언급한 적이 없다. 그러나 가끔 카사와 눈이 마주칠 때 그의 반응을 보면 역시 꿈 같은 것이 아니었다고 확인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카사가 아이작이 있는 북극해 기둥을 찾아왔을 때는 아이작도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카사는 문을 두드리고 들여보내 달라고 말하고는 들어온 즉시 문을 닫아 버렸다. 아이작은 그 지시에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열어봐."
    카사가 그렇게 말하고 건넨 것은 한 통의 편지로, 한 번 열어본 편지봉투에 적힌 수신지는 남극해였다. 아이작은 편지의 글씨체에서 낯익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카사가 이것을 전달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의아해하는 아이작이 편지를 꺼내보니 또 다른 편지봉투가 끼워져 있었다. 북극해의 아이작에게 온 것이었다. 보내는 이의 이름은 효가로 되어있었다.
    '어쩐지 익숙했는데 효가의 글씨였어. 하지만 어째서 이게 카사한테...'
    "너, 이 녀석한테 편지를 받은 적은 있어"
    아니. 아이작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지난 1년 동안 그에게 온 편지는 없었다. 다른 해투사들은 교류를 위해 성역을 오갔으니 아이작 역시 부활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겠지만 자신은 부활한 이후 성역에 간 적조차 없다. 정확히는 아이작을 성역에 보낸 적이 없는 것이다. 카논이.
    "흐음- 짐작이 간다. 아마 전에는 아이작 너에게 이걸 보냈을 거다. 하지만 여태까지도 받았단 느낌이 없으니 다른 수를 써본 거겠지. 주변인들이라면 내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숨길 것도 없고." 카사는 귀찮다는 듯 말했다. "나도 너희를 이용해 먹은 적이 있으니까 한 번은 의도대로 움직여줬어. 나머지는 알아서 해."
    카사는 곧장 돌아가 버렸고 아이작은 개봉되지 않은 편지를 열어보았다. 짧은 근황과 함께, 아이작이 이걸 늦게 읽을 거라고 짐작한 듯이 자신도 성역에서의 일로 바빠 편지를 많이 보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스승인 카뮤를 만나러 왔으면 좋겠다는 의향을 내비치고 있었다. 어느 곳도 아닌 성역으로 직접. 그 후 아이작은 바로 우편을 담당하는 병사를 찾아갔다. 그는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당황스러워하며 따로 숨겨두었던 편지를 몇 통 건네주었다. 맨 처음 왔던 것은 시드래곤 님의 명령으로 파기했다는 말과 함께. 아이작은 그 편지들을 손에 쥐고 카논을 찾아갔다.

    -----

    "내가 무슨 말을 하러 왔는지는 알겠지. 개심한 줄 알았는데 이런 수작을 부릴 줄은."
    카논은 아이작이 우편물째로 손바닥을 책상에 내리치는 것을 보면서도 놀라지 않고 답했다.
    "그럴 필요가 있었다. 나도 성역에서 개인적으로 온 건 전부 버렸어."
    "어째서지"
    "너하고 나는...원래 성투사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해장군이 되어버렸고 부활하고 나서도 여기에 머무르게 됐어. 미련을 가지면 안 되니까 치웠을 뿐이다."
    "그건 당신이 멋대로 한 생각이겠지. 나는 어차피 돌아갈 생각따윈 없었어."
    "그래 그렇게 남고 싶은 이유라도 있나"
    카논의 말에 아이작은 그 순간 떠오른 생각에 자신도 당황스러워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에 가까울까. 남고 싶은 이유라면... 하지만 그렇다면 스승을 찾아가서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있어. 그것 때문에라도 만나봐야 할 이유도 있고."
    카논은 자신의 이마를 짚고 앞머리를 쥐어 올렸다. "개인적인 감정 때문만은 아니야. 성역과는 언제든 틀어져도 이상하지 않아. 그것만이 아니라 해계에서조차도. 배신한 놈은 또 배신하게 되어있다거나 그런 의심의 여지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너도. 나 역시도."
    카논은 이전의 삶에서 단 한 번, 황금성의를 입고 싸우던 순간을 떠올렸다. 여신의 허락을 받고 동료에게도 인정받은 삶이었다. 찰나였지만 그 순간은 아무런 후회조차도 없었다. 그대로 눈을 감아도 좋았을 것이다. 포세이돈이 다시 자신을 선택했다는 문제만 없었다면. 신은 자신을 농락한 자를 그대로 영면하게 두지 않는 것인가. 카논에게는 이 상황이 그렇게밖에 비치지 않았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이 자리에서 책임을 지는 것밖에는 달리 없었다.
    아이작이 성역으로 돌아가든 어떻게 하든 원하는 대로 하도록 놔두어도 카논 자신과는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편지가 왕래하는 정도는 눈감아 주었어도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자신에게 제동을 거는 것과는 일관성이 부족해지는 것이다. 그 불일치하는 점을 다른 이들에겐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결국에는 아이작에게 오는 편지를 처분시킬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것과 마찬가지로.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야."
    카논은 아이작을 설득하려 했다. 당사자만이 아니라 다른 동료들에게도 영향이 미칠 수도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작은 오해가 중대한 문제로 번지는 수가 있다던가, 그와 아이작이 성역의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면 절대 개인적인 용무가 아닌 공적인 상황에서 제한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아이작은 그 말이 탐탁지 않았다.
    "대의적인 명분이라면 그걸 숨기기 전에 상의라도 해봤어야 했어. 당신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그건...그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명하지 않았어. 우리는 당신의 야망 때문에 이미 한 번 죽었는데도."
    "......"
    "그리고 카사는...카사한테는 무슨 일을 시키고 있었지 그때도 숨기고 싶어 했었지."
    아이작은 카사가 잡병들을 죽이고 바다에 던져넣었던 일을 떠올렸다. 죄를 저지른 자를 처단한다지만 자신의 몸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사고방식은 마치 그렇게 하도록 몰아간 사람이 있는 것만 같았다. 아이작은 당시 그에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인물은 카논밖에 없다고 짐작하고 있었다. 제대로 추궁하기 전에 성역과의 전투가 벌어져 말할 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잊을 수는 없었다.
    아이작의 갑작스러운 추궁에 카논은 고심했다. 강요한 일은 아니었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처리해야 할 상대들이 있었고 그 일을 카사에게 맡겼을 뿐이었다. 대가가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때 그렇게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했던 말이 있었다. 그 말을 되짚어 본다면 카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카논은 짧지 않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에 대해서라면...본인에게 물어보는 게 좋을 거다."
    그 대답에는 아이작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고, 더 소동을 일으키지 않고 물러가기로 했다. 카논이 반응이 단지 과거를 들추고 싶지 않아서 카사에게 설명을 넘겨버린 것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상당히 사적인 이야기가 될 거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간접적으로 확인받은 것으로 충분한 수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역을 찾아가는 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작은 그 후 다른 해투사들의 의견을 묻기로 했다.

    "그 편지가 그런 내용이었다고...그래서 넌 정말로 만나고 싶은 거냐 이런 귀찮은 일이 생기기 전에 저지르고 봤더라면 편했을 텐데."
    전말을 전해 들은 카사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다시 생각해 봐도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미리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이제야 생각났어. 해야 할 말도 생겼고."
    "어쨌든 너 개인의 문제니까 나는 반대라거나 찬성을 말할 것도 없어. 특히 오래된 인연을 이어갈 것이냐 이대로 놓을 것이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아이작이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해계에 처음 왔을 때만 하더라도 자신이 생존했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알릴 것인가 숨길 것인가 단호하게 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눈의 상처 역시 이야기로 전해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다를 것이고 그것이 스승과 친구에게 어떤 상실감과 죄책감을 안겨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카사, 너는...이런 일이 있었나"
    "나는 왜"
    "여기에 온 사람들은 저마다 이유 하나씩은 있었어. 그건 너도 마찬가지겠지."
    카사는 아이작의 왼쪽 눈을 바라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이곳의 해투사들은, 세계를 물로 심판하겠다는 계획에 가담한 인물들이었다. 인간관계에 문제가 없는 쪽이 드문 것이다. 오래 전의 기억까지 거슬러 올라간 카사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랬지. ...그 악연 같은 것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끝났어. 그렇게 사연 끝."
    "그런가..."
    아이작은 카사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더는 물어볼 수 없었다. 카사의 시선이 대지를 벗어나 물가를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작 너의 경우엔...만나보는 것도 손해는 아니야. 너와 그 사람들의 관계는 그런 종류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 사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거다."
    격려해 주는 것일까. 아이작은 생각했다. 아이작이 사고로 해계에 오게 되었을 때, 좋은 의도라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카사는 그의 마음을 들여다본 적이 있다. 그것을 보고 내린 결론인 것이다. "알려줘서 고마워. 편지도, 네 이야기도."

    아이작은 다른 해투사들에게도 찾아가 물었다. 테티스는 지위상 상급자인 아이작의 의견에 감히 반대할 수 없지만 성역과 평화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지금이 그야말로 가능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크리슈나는 만약 아이작의 행동으로 성역과의 관계가 틀어지게 된다면 그건 원래부터 틀어질 수밖에 없고, 그 일은 구실 중 하나에 불과할 거라고 답했다. 바이언은 아이작이 소동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상관없다는 입장이었고 이오는 스승을 만나러 가는 것 정도는 문제가 아니라고 장담했다.

    "포세이돈 님의 의견을 묻고 싶은 건가. 안됐지만 그분의 영혼이 찾아오는 일은 드물어. 그래서 그자한테 일임하는 걸 반대하지 않았던 거다."
    "그렇다면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어."
    오랜만에 해계에 돌아왔던 소렌토는 아이작의 질문에 고민했다. 지금까지 전달 받아온 정보에 의하면 지금의 성역이 마땅한 이유 없이 위협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대로 판단했을 뿐, 실상에 대해선 어두울 수밖에 없어 확신할 수 없었다. 아이작의 사연을 알고 있는 해투사들이라면 대부분 성격 좋게 허락해 줬을 테지만 해계와 포세이돈에게 해가 될 가능성은 가능한 줄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도 반대하고 싶지는 않지만...아직 일 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좀 더 상황을 두고 볼 필요가 있어."
    "카논도 그런 말을 했는데 결국은 안 된다는 말이군."
    "...내가 시드래곤하고 같은 생각을 했다니, 철회하지."
    소렌토는 상당히 기분 나쁜 소리를 들은 듯한 표정으로 아이작을 쳐다보았다.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이미 대부분의 동의를 받아 과반수를 확보한 상태였다.
    "포세이돈 님이 반대한다면 몇 명이었든 소용없었겠지만...아무튼,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
    "그자와 달리 혼자 멋대로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아서겠지."
    "혼자만 반대한 꼴이라니 볼만하겠어. 구경하고 돌아가야겠는데."

    카논을 제외한 해투사 전원이 동의했기 때문에 그로서는 막아설 명분을 잃게 되었다. 아이작은 효가를 통해 찾아갈 날을 정했고 성역으로 떠났다. 아이작은 시베리아도 다른 곳도 아닌 성역으로 직접 찾아가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무장하지 않은 상태로 출입하기로 했다. 효가가 마중 나와 있었고 들어갈 때에는 간단한 조사만 이뤄졌다. 두 사람은 다소 서먹했지만, 성역의 계단을 오르면서 그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리고 효가가 몇 번이고 편지를 보냈었던 이야기, 그리고 자신과 싸웠던 카사라면 이미 자신을 알고 있을 때니까 그쪽으로 대신 편지를 보내는 것을 시도해 봤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아이작은 지금까지 보낸 것을 숨겼던 사람이 카논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계시는 보병궁은 11번째 궁이었지."
    "맞아. 그렇지만 오늘은 다른 곳에서 만날 거다."
    "역시 거기까지는 무리겠지." 아이작은 자신이 해투사이기 때문에 최상부에 가까운 곳까지는 보내지 않으려 하는 거라 짐작했지만 효가는 그 설을 부정했다.
    "제일 먼저 보여줘야 할 것이 있다고 하셨어."
    두 사람이 도착한 곳에는 성투사의 묘비가 가득 세워져 있었고 그곳에서 스승인 카뮤가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물병자리의 성의를 갖춰 입은 고고한 모습이었지만 아이작과 마주치자 안도와 그리움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아이작."
    "카뮤 선생님..."
    아이작은 자연스럽게 달려갔고 스승과 포옹했다. 그 동작이 많은 말을 대신해 주었다.

    -----

    "너를 여기 부른 이유는, 알려야 할 사실이 있어서다."
    카뮤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묘비 중 하나를 가리켰다. 거기엔 아이작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그 밑에 백은의 성투사임을 나타내는 글자가 이어졌다.
    "...이건"
    "왜 성역에 아이작의 묘비가..." 효가도 아이작만큼 놀란 얼굴이었다.
    "아이작이 사라지기 전...나는 너희 둘 모두 성투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성역에 서신을 보내고 답을 기다리고 있었지. 하지만 그 사이, 그 사고가 일어나자 나는 성역에 직접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고 처분을 기다렸다. 교황은 이미 임명했으니 무르지는 않겠다고 말했지만, 얼마 후에 이걸 세워놓았던 거다."
    카뮤와 효가는 아이작을 쳐다봤다. 만일 그날 효가와 아이작 두 사람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면 동료로서 서로를 마주했을 것이다.
    "아이작, 네가 원하면 성투사로서 성역에 머물 수 있다. 지금까지는 형식적인 이름이었지만 너라면 그 자격을 증명할 수 있겠지."
    카뮤는 지금도 아이작이 원한다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그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를 보여준 이유는 이것이 가벼운 제안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작은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한 스승의 배려에 감사했다. 하지만 그가 직접 찾아온 이유는 다른 것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아이작은 스승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두 사람은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지만 그를 배웅해 주었다.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았다.

    아이작이 해계로 귀환했을 때, 카논을 제외한 다른 해투사들이 중앙의 포세이돈 신전 앞에 모여 있었다.
    "왜 다들 여기에..."
    "모두 네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대로 성역으로 떠나시는 게 아닌가 했습니다만, 괜한 걱정이었군요."
    신전의 계단 밑에 서 있던 크리슈나와 테티스가 아이작을 맞이했고, 기둥에 기대어 서 있거나 계단에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도 말을 건네러 다가왔다. 바이언과 이오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했다.
    "스승한테 혼난 건 아니겠지."
    "스카우트라도 받았어"
    "제안은 받았지만 돌아가지 않아. 그렇게 말하고 왔다."
    "역시나"
    "네가 왔을 때부터 우리 동료로 인정하고 있었으니까."
    "잘 말하고 왔다." 두 사람의 말에, 소렌토도 첨언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하고 돌아왔지 사실 우리 내기를 좀 했거든."
    "그건...내가 돌아올지에 대한 내기인가"
    "아니, 네가 무슨 멘트로 거절했을지에 대해선데...그래서 뭐라고 말해뒀어"
    이오가 설명하자 바이언이 예상했던 답변을 말했다.
    "저는 이미 한 번 죽은 몸...(이하생략)"
    "크라켄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이하생략)"
    "의외로, '당장 할 일이 쌓여 있어서 돌아가 봐야겠는데요.'라든가"
    소렌토와 이오도 각자 예상하고 있던 답을 말하자 아이작은 잠시 함구한 채로 생각했다.
    '모여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나...'
    테티스나 크리슈나는 처음부터 내기에 끼지 않은 것 같았지만 카사는 이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작과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자 그제야 궁금했냐는 듯 입을 열었다.
    "'지금은 이렇게 됐지만, 아직도 당신의 제자입니다.'"
    아이작은 그 답안에 씨익 웃고는 북극해 기둥으로 발을 돌렸다. 바이언은 그 표정의 의미를 눈치챘다.
    "반응을 보면 네가 이긴 것 같은데."
    멀리서 이오가 처음부터 불리했다고 토로하거나, 소렌토가 무섭구나~하는 감상을 태연한 얼굴로 말하는 가운데, 카사가 후훗.하고 웃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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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뮤는 과거에 아이작과 효가의 일로 교황을 찾아갔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가능한 한 성역에 가는 것을 피하던 그였지만 서신의 답이 아직 오지 않았고, 급히 보고할 일이 생겼기 때문에 하는 수 없었다. 카뮤가 차분히 설명하려 했던 것도 있지만 교황의 반응은 담담했다.
    "단순한 사고, 인가...카뮤, 보내온 서신에서는 그 생사불명의 소년이 다른 한 명보다 먼저 수행을 시작했고,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실력을 쌓은 상태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어떠한 공을 세우기도 전에 물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보다 부족하다는 남은 하나의 처분도 고민할 수밖에 없겠지."
    "'부족하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카뮤가 의견을 정정하려 했지만 교황은 잘라 말했다.
    "그에게 성의를 주는 것은 유예할 필요가 있겠어. 성투사의 자격만을 주고 성의를 입게 하는 것은 나중에 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카뮤는 교황이 자리를 떠날 것을 허락할 때까지 기다리는 기색이었지만 교황은 무언가를 깊이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음산한 목소리가 섞인 채로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그렇게 할까. 어쩌면 나쁘지 않을지도...불길함의 상징일 수도 있는 '그 성좌'를 그에게 내려둔다면 후환이 없을 테지."
    "교황님, 더 명령하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교황의 혼잣말에 카뮤가 물었다.
    "아니, 죽은 하나를 어떻게 할지를 생각했을 뿐이다. 이만 가봐도 좋다."

    카뮤는 그 후 시베리아로 돌아갔지만 그때 교황이 흘려보낸 발언을 잊지 않았다. 불길함의 상징일 수도 있는 성좌...카뮤가 성역에 아이작의 묘비가 세워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그리고 그가 백은 성투사의 지위가 내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성좌에는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의 성의가 있고, 그것은 이전 세대에 명계의 편에 섰던 자가 걸쳤던 것이기도 했다. 그것을 죽고 없는 자에게 수여하는 것은 액막이 개념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아이작은 죽지 않았고, 성역과 대적하는 해장군이 되어 있었지만.

    만약 아이작이 카뮤의 제안을 수락했다면 인정받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길일지라도 그가 선택하도록 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작은 자신의 동료들을 선택했다.
    "비록 해투사가 되었지만, 선생님이 가르친 대로 정의를 위해 싸우겠다는 마음가짐만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아이작은 카뮤와 효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해계에는 함께하고 싶은 동료가 있어요."
    그 한쪽 눈은 빛을 잃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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