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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smoBbatta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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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극의 평행선 2

    북극의 평행선 2아이작과 카사의 이야기지만 해계는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1편에 나오지 않았던 인물들도 마저 등장을 시켰습니다. (자축)

    ~주의사항~
    ※아이작카사 메인의 카사른

    ※1.5편에서 다룬 모브카사(강압적 관계)의 묘사가 단편적으로 있습니다.

    ※원작과 전혀 관련 없는 2차 창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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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작이 크라켄의 스케일을 입은 후 수개월이 지났다. 왼쪽 눈에 감았던 붕대는 풀어버린 지 오래였다. 원래의 눈이 있던 자리는 의안으로 대체되었고 눈가에는 큰 흉터가 남아있었지만 딱히 안대를 할 생각도 없어 그대로 드러내기로 했다. 이러는 편이 남들에게 위압감을 주기에도 좋았다. 나이가 어린 아이작에게는 해장군이라는 지위나 그 실력보다도 오히려 이런 인상이 그에게 불만을 가진 자들을 눌러두기에 더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그의 능력을 온전히 믿지 않거나 또다시 배신할 거라 의심하는 자가 있더라도 푸념으로만 남아있었다. 또한 시기하는 자들은 일개 병사들 정도였을 뿐, 그의 동료들은 그가 회복하고 해투사의 일원이 되어가는 것을 반기고 있었다. 이오나 바이언과는 가끔 대련하기도 했다.
    "갈수록 좋아지는군."
    "이 정도면 벌써 다 나은 거 아냐"
    두 사람의 말에 아이작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왼쪽 눈으로 가져갔다. 물에 휩쓸렸을 때의 자잘한 상처들은 이미 사라졌지만 한쪽 시력을 잃은 것은 아직도 적응이 필요했다. 보이지 않는 방향에서 오는 공격에는 잘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실력이 짐작하던 정도보다 뛰어나다는 사실도 자신의 부족함을 실감하는 데 한몫하고 있었다.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갈까. 오늘 고기가 꽤 들어왔다나 봐." 이오는 신난 듯이 앞장섰다. "여기에 있다 보면 생선은 질릴 정도야. 테티스의 눈치도 좀 보이고."
    "테티스..."
    "아, 테티스는 원래 물고기야. 몰랐던가."
    아이작이 농담하지 말라는 듯한 얼굴로 이오를 쳐다보자 바이언이 첨언했다. "가끔씩 물속에서 인어의 모습이 될 때도 있는데, 나중에 볼 수 있을 거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지만 아이작에게는 의외의 사실이었다. 테티스가 인간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보다는 오히려 수상한 쪽은 따로 있어서기도 했다.
    "그렇다면, 륨나디스도 인간이 아닌 건가"
    "글쎄...남의 마음은 멋대로 들여다보면서도 자기 얘긴 안 하려고 하니까."
    바이언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왜 카사 같은 자가 해계에 있는지 조금 의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상을 물로 정화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해전사들이었지만 카사의 존재는 다소 이질적이었다. 자신이나 이오보다 먼저 해계에 와 있던 인물이라는 사실 외에는 별달리 아는 정보조차 없었다.
    "물의 마물일 거라고 했잖아. 인간들이 바다를 오염시키니까 쓸어버리고 싶어서 나온 거야."
    아이작은 이오의 가설에 귀를 기울였다. 해계는 성역과 대립하는 관계지만 이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정의라는 것이 존재한다. 잡병 중에는 불온한 자도 있지만 해장군 정도에 이르면 공통적인 목적이 존재한다. 악을 매장한다. 그것은 아이작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성투사가 아니라 해투사가 되었더라도 그런 가치관은 변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아이작을 당당한 전사로 남아있게 했다. 만일 카사가 비열하기만 한 남자라면 언제가 되건 싸워야 한다. 아이작은 그가 스승의 모습으로, 그리고 친구의 모습으로 변했을 때를 떠올렸다. 만일 속이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아이작의 목숨을 거둬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에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

    "륨나디스라...어떻게 보면 가장 무서운 해투사일까."
    세이렌 소렌토는 갑작스러운 아이작의 질문에 잠깐 할 말을 고르다 대답했다. 두 사람은 임무를 위해 해계 밖의 솔로 가문의 저택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해투사가 된 아이작에게 더 이상 감시 목적의 동행인이 붙지 않게 된지 오래였지만 이번만큼은 명백하게 경계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소렌토 본인으로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낼 마음은 없지만 의심하는 모습을 필사적으로 숨길 필요 역시 없던 것이었다.
    "그건...강하다는 말인가" 아이작은 되물었다. 소렌토의 첫인상으로 미뤄보아 숭고한 이상을 가진 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사 목적을 겸해서 그와 다른 분위기인 카사를 대화 주제로 삼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조금 다른 얘기라고 할 수 있겠지. 아무리 강하더라도 눈앞의 상대를 공격할 수 없게 된다면 그 힘이란 건 아무런 소용도 없게 될 테니."
    "그렇다고 해도 파훼할 방법이 없지는 않을 거다. 모습을 바꾸기 전에 공격할 수도 있을 테니까." 아이작은 우선 제일 먼저 떠오른 가설을 꺼냈다. 자신의 약점을 이미 간파당한 데다, 비겁한 수단을 쓸 수도 없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이론상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그의 능력을 이미 알고 있다면 가능할지도. 하지만 적들은 뒤늦게야 눈치챌 테고, 그 스케일을 뚫고 단번에 죽일 수도 없어."
    "그런 능력을 가진 자가 마음먹고 배신한다면 피해가 클 텐데."
    "네가 뭘 걱정하는진 알겠지만, 우리 해투사는 포세이돈 님의 의지를 믿고 모였어. 설령 륨나디스 같은 자라고 하더라도 무엇이 옳은지는 분명히 알 거다." 소렌토는 멀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물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포세이돈 님은...설명보단 직접 눈으로 보는 게 좋겠지. 솔로 가문에는 해황의 화신이 될 분이 계신다."
    아이작이 소렌토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저택에서 한 남자가 경호원들과 함께 나오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선한 얼굴을 한 남자의 푸른 장발이 바다처럼 물결치며 빛나고 있었다. 줄리앙 도련님. 앞에서 차를 세우고 대기해 있던 운전기사가 남자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자못 상대를 존중하고 있는 언행이었다. 포세이돈이 강림하기 전까지는 아직 인간에 지나지 않지만, 그가 해계를 지휘해 세상을 정화할 것이라는 테티스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중요한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렌토도 경계심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작은 소렌토와 함께 줄리앙의 목적지를 뒤따라갔다. 그곳에서는 자선파티가 열리고 있었고 둘은 눈에 띄지 않도록 밖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줄리앙이 다시 나오기를 기다렸다. 소렌토는 다른 해투사에 비해 그렇게까지 말이 많은 타입은 아니었지만 포세이돈과 줄리앙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 도련님이 평소에도 다른 이들에게 베풀고 싶어 하는 인물이라든가, 따로 경호원이 있으니 갑작스레 신변에 문제가 생기거나 하진 않겠지만 해계에서 주기적으로 근황을 살피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 밖에 별달리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파티는 무사히 끝났고 줄리앙은 차를 타고 다시 출발했다.
    "아이작. 시드래곤에게 보고하는 건 네게 맡기겠다." 소렌토는 차가 떠난 방향에서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그건 혼자 해도 괜찮은 건가"
    "별일 없었으니 그 정도는 네가 해도 상관없겠지. 다만," 그는 아이작이 표한 의문은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한 가지는 첨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드래곤 그자에 대해서는 일말의 가능성을 놓지 않는 게 좋아."
    "어째서지" 소렌토의 의미심장한 말에 아이작은 되물었다.
    "객관적으로 본 그는 유능하지만 한편으론 수상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어. 오늘 너를 경계한 건 어디까지나 방심하지 않으려는 생각에서였지만 이건 그것과는 다르다."
    "......"
    아이작은 그 말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해계로 돌아가는 도중에 가만히 떠올려보면 그것은 스승인 카뮤가 교황에 대해 말한 것과 비슷한 평가였다. 한 세력을 통솔하는 자에게는 비슷한 평가가 내려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지만 소렌토 같은 자가, 해투사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요주의 인물이나 다름없는 자신에게 그런 조언을 했다는 점에서 단순하게 받아넘길 수는 없을 듯했다.

    시드래곤은 평소 포세이돈 신전의 중앙에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자신이 수호하는 북대서양 기둥에 거처해야 했지만 그가 해장군 필두이기 때문에 이곳에 머무는 빈도가 늘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작은 문 앞에서 노크한 후 대답이 나오자 문을 열었다.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던 시드래곤은 아이작에게 어떤 용무인지 물었고 아이작은 포세이돈의 화신이 될 남자의 근황을 전했다.
    "알겠다. 그 외에 특이사항은"
    "...지난번에 사라진 해투사 한 명의 행방이 아직 묘연하다."
    "그 이야기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만." 카논은 시선을 다시 지도와 서류 더미로 돌렸다.
    "그랬었지. 하지만 내가 여기 오기 전부터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더군. 같은 문제라면 해결책을 좀 더 강구해 보는 게-" "다시 말하지만, 네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시드래곤은 아이작이 말을 마치기 전에 잘라 말했다. 그리고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을 이어 나갔다. "자기들끼리 싸웠거나, 도망을 가다가 제재당하거나 하는 그런 시시한 일일 뿐이니까. 아니면 가끔 미쳐서 몸을 던진다거나 하는 일의 연속일 뿐, 그런 전력조차 되지 않을 잡병들이야 어쨌든 그대로 두면 된다."
    표현을 골라 말할 생각조차 없어 보이는 그 발언에 아이작은 더 캐묻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면 이만 실례하지."
    아이작은 시드래곤을 등지고 걸어 나갔지만 도중에 한 번 뒤를 흘겨보았다. 그는 다른 일이 더 중요한 듯 아이작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있었다. 시드래곤 카논. 이 남자를 소렌토가 수상해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단순히 미리 언질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작이 카논에게 성투사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시드래곤은 어느 누구보다도 오래전부터 해계에 있던 사람이라고 했지만, 어떤 일로 성투사였던 그가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듯했다. 그가 성역과 관계있는 인물이라는 사실도 아이작이 아니라면 알아챈 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에 대해 들쑤실 생각은 없고 적절한 때가 올 때 밝히겠다고 마음에 담아둘 따름이었다. 아이작은 그보다 카사가 좀 더 신경 쓰였다. 시드래곤이 그에게 비밀리에 임무를 내린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해투사들의 실종이 이와 관련이 있을까. 가령 임무를 맡기고 그 대가로 그의 악행을 눈감아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인간을 심심풀이로 고문한다거나 죽인다거나 하는 일일 것이다. 어째서 자연스럽게 이런 가설로 흐르는지 자신도 모르겠지만 그 자라면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상상 속에서 그 길고 빨간 손톱이 심장을 움켜쥐어 깨뜨리고, 빨간 파편이 얼음조각처럼 흩어져 내렸다. 그렇게 생각할 때면 아이작은 심장이 고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하루빨리 그것을 멈추고 싶었다.

    -----

    카사는 인도양의 크리슈나와 종종 마주치곤 했다. 그가 있는 남극해와 거리상으로 가깝기 때문이었다. 남대서양의 기둥도 근처에 있지만 소렌토는 용무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카사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하고 카사도 오히려 그렇게 하는 편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크리슈나는 본인이 필요할 때가 아니라도 말을 걸어오곤 한다. 호감이라기보다는 동료에게 보이는 관대함 같은 느낌일 것이다. 카사의 능력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마음속에 깊이 관여하고, 상대방은 그런 약점을 보이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배척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인물에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건 배려의 의도만이 아니라 본인이 가진 강한 의지의 표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당당한 녀석은 마음속을 들여다본다고 해도 재미없으니까.
    "-아무튼, 별일은 없어."
    카사는 적당히 대화를 마치려고 했다. 그러나 크리슈나는 한 가지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너, 그 이후로도 아이작에게 뭔가 하지 않았나."
    "그 이후"
    "크라켄의 스케일을 입게 만든 다음 말이다."
    "그건 왜 궁금한 거야..." 질문이 꽤 직구였기 때문에 카사도 반문했다.
    "아이작이 아직도 너를 달갑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크리슈나는 아이작이 카사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고, 자신에게도 그런 시도를 했다는 것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첫인상이 좋지 않은 거겠지. 그건 어쩔 수 없어. 난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 이제 관심도 없고."
    확실히, 아이작이 눈에 띄게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는 점은 카사도 알고 있었다. 얼마 전에도 몰래 뒤따라오던 것을 눈치채고, 미행은 그렇게 어설프게 하는 게 아니라고 일러두었던 참이었다. 따지고 보면 아이작이 스케일을 입게 하려던 건 크리슈나와 다른 해투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사실은 어찌 됐든 상관없었다. 그는 의외로 해장군이 된 것에는 후회가 없는 듯했지만, 카사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반감이 있는 듯했다. 일 때문에 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순수한 소년의 내면을 훔쳐보는 것은 꽤 즐거웠다. 스승에 대한 존경과 동경, 친구와의 우정, 복잡하게 얽힌 고민, 그것을 감싸안은 긍지, 그리고 그 한켠에 숨어 있던 후회를.

    -----

    임무를 끝내고 나니 하늘은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지금 출발하면 도중에 밤이 될 테니 하루 숙박하고 날이 밝으면 출발하는 게 보통이겠지만 아이작은 이미 귀로에 오르고 있었다. 딱히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베리아에 있을 때는 그저 마을에서 일을 돕거나 수행만을 반복하는 생활이었는데, 생각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악인들의 이해관계 따위는 그다지 알고 싶지 않았다. 오늘처럼 무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게 세상일이니까. 생각만 해도 피곤해서 동료들이 있는 해계로 돌아가고 싶었다. 언제나 경계가 필요한 생활이지만 기왕이면 익숙해진 공간에서 눈을 붙이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작은 이전에 찾아둔 지름길로 향했다. 앞이 어두워서 길을 헤매기 쉬웠지만 여러 번 지나왔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을 피하지 않는 쪽이 지금의 그에겐 더 도움이 되었다. 잃어버린 한쪽 눈 대신, 청각과 후각, 촉각 등 다른 감각을 더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땅을 밟는 느낌이나 바람 소리와 같은 것을 지표 삼아 나아가던 중, 아이작은 잠깐 들려온 위화감 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얼핏 생각하면 잘못 들었나 싶은 정도의 작은 소리였지만 그것은 간헐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정체는 파악할 수 없지만 포세이돈 신전과 멀지 않은 위치였기 때문에 외부인이라면 물러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고통을 억누르는 비명 같은 것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 부상을 입은 것이라 추측하기엔 다소 들어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 위화감은 더 커졌다.

    '저쪽에 있는 건, 한 명이 아니야...더 인기척이 있다.'
    아이작은 절벽이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 헐떡이며 고통스러워하는 목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리고 있었다.
    "원래... 이런 일을..."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도 섞여들었지만, 대화의 내용보다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가 신경 쓰였다.
    "..."
    "- 너는..."
    "..."
    "안 돼, 더 이상은..."
    아이작의 머릿속 한구석에 희미한 형상이 떠오를까 하던 중, 멀리서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남자들을 발견하고는 숨을 쉬는 것을 잊어버린 듯 멈춰 섰다. 개개인이 누구인지까지는 기억나지 않는 잡병 사이에 카사가 있었다. 그 마르고 창백한 피부가 달빛에 비쳐 누구보다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팔다리는 두 사람에게 붙들려 있었고,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소리를 지르거나 초점 없는 눈을 뜨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아이작은 자신이 처음으로 본 광경이 어떤 것인지 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 카사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남자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 고개를 돌렸고, 눈에 초점이 돌아왔을 때 자신을 쳐다보는 또 다른 눈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아이작은 마주친 카사의 눈동자에 찰나의 당혹스러움이 드러난 것을 지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언제 그랬냐는 듯, 가느다란 눈웃음으로 바뀌었다. 카사가 다시 고개를 돌리고 작게 웃음소리를 낼 때까지 아이작은 자신의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제서야 아이작은 이 행위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급 병사들은 그가 근처에 있을 때도 서로 거칠고 저급한 말을 곧잘 내뱉곤 했다. 자신들보다 한참 어린 소년이 높은 지위에 있다는 사실이 거슬렸을 것이다. 여자 얘기라든가 그런 쪽의 저속한 대화를 들으면 마음이라도 꺾일지 시험해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무시로 일관했다. 모르는 이야기지만 어쩐지 기분 나쁘다는 감정이 달라붙어 있는 채로. 지금 그것을 실제로 알았다. 아이작은 속이 메스꺼웠다. 반사적으로 자리를 피하고 돌벽의 한구석에 기대어 구토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구역질과 철퍽하고 오물이 떨어지는 소리는 유난히 잘 퍼져나갔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신 없이 움직이는 그들의 귀에까지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속을 게워낸 후, 숨을 고르면서 상황을 다시 떠올려냈다. 환각일까 아이작이 발견한 것도 어디까지나 우연이었고, 카사가 지금에 와서 이런 일을 꾸며낼 이유는 없다. 그의 의지와는 상관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이작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카사가 지은 미소가 그저 시늉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자신의 착각인지 장담할 수 없었다. 눈이 마주치기 전까지의 모습은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해장군인 카사가 잡병 셋을 못 이겨서 당하고만 있었다는 것은 믿기지 않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반항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면 이 자를 구해주어야 할까. 스승으로 변해서 자신을 농락하고, 친구로 변해서 크라켄의 스케일을 입게 만든 자를 아이작은 자신을 향해 조소하는 카사의 얼굴을 떠올렸다. 정말 싫었지만 그가 도움을 청했다면 손을 내밀지 못 할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 보기엔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이미 도망쳤고, 카사가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어설픈 웃음을 가장했으니.

    -----

    아이작은 발길을 돌려 그대로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거리가 꽤 멀어진 후에도 들려오는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한번이라도 도와달라고 말했다면.'
    돌아온 후 입을 헹구기만 하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테이블에 고개를 파묻고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바로 잠들었다면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게 꿈이었다면 아이작은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카사도 그런 표정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크라켄 님"
    몇 번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작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쭉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잠들지 않았으니 아직 늦은 시간일 것이다. 그런데도 상관을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당황스러운 기색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아이작이 문을 열고 그를 맞았다.
    "아, 이런 시간에, 죄송합니다.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만..."
    '문제'. 아이작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져 부하는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말을 더듬으며 상황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작이 생각하는 그 문제는 아니었다. 그는 신참이었는데 실수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 생겨 안절부절못한 채로 아이작을 찾아왔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어쨌든 해장군이 확인해 주는 편이 빠르게 해결될 일이었기 때문에 손을 쓰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사실 그 문제에 신경을 돌리는 동안 카사의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쪽에 가까운 것이겠지만.

    "여러모로 신세 많이졌습니다. 크라켄 님."
    병사는 감사하고는 급히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아이작은 곧바로 저지했다.
    "왜 그쪽으로 가려고 하지"
    "네 그, 잠깐 담배를 피우고 오려고 합니다만. 혹시 안 되는 거였습니까" 흡연이 딱히 금지 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의아한 눈치였다.
    "...다른 곳에 가서 펴라. 앞으로는 저쪽으로 가지 마."
    아이작이 굳은 얼굴로 말하자 병사는 그가 어리기 때문에 담배를 싫어하는 것인지 의문을 품은 채로 반대 방향으로 사라졌다. 아이작은 자신의 반응을 돌아보았다. 남자가 그 방향으로 간다고 해도 카사와 마주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 장소에 발을 들이게 되고...그 역겨운 짓에 가담하는 일만은 막고 싶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어느샌가 세게 쥐고 있던 손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 그로부터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지만 카사나 잡병들 중 어느 쪽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밤공기는 춥고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 아이작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급히 몸을 움직였다.

    -----

    달려가는 아이작의 손에는 망토가 들려 있었다. 냉정한 판단은 할 수 없었다. 최단 거리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었음에도 어딘가 비효율적인 동선을 그렸다. 고작 이런 걸 챙기겠다고 말이다. 이런 얇은 걸 챙겨봐야 어디에 쓸 수 있단 말인가. 아예 이불을 들고 오는 게 어떻겠냐고 자신을 힐난했다. 다시 그쪽으로 가면 무슨 말을 할지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잡병들이 그 자리에 남아있다면 모두 쓰러뜨릴 생각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아이작이 마주친 광경은 그가 대비하기로 마음먹은 상황과 달랐다. 남아있는 것은 추잡한 짓을 하는 남자들도, 혼자 방치되어 쓰러져 있는 카사도 아니라, 바닥에 흩뿌려진 피와 그 사이에서 갑옷을 입고 있던 카사였다. 그는 주저앉아있던 상태에서 아이작을 올려다보았다. 헬멧으로 가려진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평소에도 창백한 피부가 더 핏기가 가신 듯했다. 갑옷 밑에 받쳐입은 하의는 평소에 입던 것이 아니라 사이즈가 맞지 않는 헐렁한 사복 바지였다.
    "륨나디스."
    아이작은 카사를 불렀지만, 무슨 말을 이어가겠다고 꺼낸 소리는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아챈 카사는 그를 응시하던 시선을 돌리고는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말했다.
    "안 좋은 꼴을 보였군."
    아이작은 그것이 진심인지 빈말로 하는 말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나직이 말하려던 목소리가 갈라져 있다는 것만 분간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한편, 카사는 그가 어째서 다시 돌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다시 구경하러 왔냐든가 한발 늦었다거나 하는 식으로 놀리고 싶은 마음 역시 들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은 힘은 잡병들을 죽이고 바다에 던져버리는데 소진했다. 걸어갈 힘이 남아 있다면 진작에 일어나 남극해 기둥으로 돌아갔을 것이었다. 잠시 비껴간 시야에 아이작의 팔에 감겨 있는 천이 들어왔다. 평소에 두르지 않는 망토라...
    "그거 좋아 보이는데."
    "..."
    별다른 대답은 없었지만 카사는 자연스럽게 망토의 아랫자락을 잡아당겨 팔에서 빼낸 다음 자신의 몸에 둘렀다. 어차피 그런 의도로 가져왔을 테니까. 아직 팔과 어깨 부분의 갑옷을 걸치기 전이었기 때문에 좋은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아이작은 그 손과 팔에 묻어있는 피나 찰과상이 난 것을 보았다. 망토를 잡은 손이 파르르 떨렸고 카사의 얼굴이나 갑옷 틈새로도 생채기나 멍 자국이 보이고 있었다.
    "그놈들은..." 아이작은 입을 열었지만 본래 하려던 말과 다른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다른 실종자들도...네가 죽였나."
    "글쎄...뭐라 생각하든 상관없지만." 그 목소리에는 비웃는 듯한 소리가 섞여 있었다. "네가 궁금한 게 정말 그걸까"
    아이작은 마음속을 간파당한 기분이 들었지만 부정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카사는 잠시 콜록거리며 기침하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왜 그 인간들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뒀냐면. 단죄하기 위해서라고 하면 될까. 하지만 그러려면 일단은 죄를 지어야겠지...그런 거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렇다면 애초에 처음부터-"
    처음부터 당하기 전에 막으면 됐잖아. 아이작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카사의 말에 가로막혔다.
    "네 눈앞에 있는 이 몸을, 그 남자들이 노렸다고 말하면 너는 믿겠어"
    "..."
    "그런 추악한 눈으로 바라봤다는 건 그저 내 기분 탓이었을 뿐일지도 모르지."
    그건...궤변이다. 악취미다. 머릿속에 여러 가지 표현이 떠올랐다. 그러나 어느 것도 아이작의 입 밖으로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말해도 제대로 믿어주지 않을 거다."
    "적당히 해둬라" 아이작은 모두 털어놓고 싶었다. 너를 구하러 갈지 모른 척할지 고민했어. 생각해 보면 너한테 바보 취급당할 게 싫었던 거다. 하지만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너에게도 중요한 것이 있다면, 소중한 것이 있다면...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이작은 떠나려는 듯 뒤돌아섰다. 좀 더 빨리 알아챘어야 했다고 생각하면서, 다시금 도망치듯 빠져나오고 싶었다. 그러나 그를 잡아둔 것은 카사의 말이었다.
    "일단 여기 왔으니까 바다 구경이라도 해보는 게 어때. 조용히 감상하기엔 좋은 때니까."
    내려다보이는 밤바다는 지나가는 배도 없이 그저 달빛을 받으며 물결치고 있었다. 아이작이 여기까지 몇 번을 왕래하면서도 미처 신경 쓰지 못 했던 경치였다. 그야말로 해황의 가호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소름 끼치는 매력이 있었다. 차가운 바람, 물결치는 소리가 귀로 흘러들어오면서 까맣게 머릿속을 채웠다. 지금까지의 일들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킨 듯했다.
    "아이작. 시베리아를 다시 찾아갈 생각은 없나."
    카사의 목소리가 한 번 걸러내 정제된 것처럼 들려왔다. 그러나 문장을 되새긴 후 말의 뜻을 이해한 아이작은 오래전부터 해왔던 생각을 드러냈다.
    "나는 그때 한 번 죽었어. 이제는 크라켄으로 살아갈 수밖에."
    "친구를 구하지 않았다면, 너는 눈도 잃지 않고, 그대로 스승에게 크로스도 하사받았을 텐데."
    아이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못하는 쪽에 가까울 것이다. 그때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까 아직도 그 답을 모른다. 멍한 느낌 속에서 마음속 심연을 들여다보면 해저에서 헤엄치는 생물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카사가 물속으로 던져 넣은, 그 죄악은 언젠가는 떠오를까. 그러나 지금 그런 걱정은 카사에게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먼 곳을 쳐다보는 그 눈을 보면서 아이작은 생각했다.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다.
    그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나와 같지 않다.
    우린 그렇게 언제까지나,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하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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