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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smoBbatta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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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극의 평행선 1

    북극의 평행선 1~주의사항~
    ※아이작카사 메인의 카사른
    카사가 오른쪽입니다. カーサ가 受입니다. KASA=UKE입니다.
    1편에서는 CP 요소가 희미하지만 다음 편부터 이것저것이 나오며 이작카사 분량은 아이작이 성인이 된 후에 나옵니다.

    ※이 시리즈는 스핀오프인 해황재기가 나오기 전부터 구상한 것으로, 지극히 무인에서의 설정과 저의 날조한 동인설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원작과 전혀 관련 없는 2차 창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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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친 눈이 쑤시는 고통과 함께 며칠간은 자다 깨고, 수차례에 걸쳐 뇌리에서 눈을 찔리는 순간이 되감기고 재생되기를 반복한다. 필사적으로 헤엄쳐 오르려 하지만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다. 제자리를 돌 뿐인 붕 뜬 감각과 무거운 팔의 감각이 계속된다. 늘어져 있는 자신의 친구를 잡고 있는 팔이, 이젠 놓아 버린다 하더라도 가벼워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이작이 무엇을 하든 어김없이 조류에 휩쓸리고 그 날카로운 얼음벽에 충돌해 왼쪽 눈을 잃고 마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자신은 그 와중에도 효가만은 저 위로 보내야 한다고 움직일 수 있는 대로 팔을 휘두른다. 언제까지고 계속되는 악몽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 것인지, 깨어나 눈을 흐리게 뜨고 둘러보면 손이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져 있는 이불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시베리아에서 함께 지내온 스승의 손을. 그 손은 아이작이 통증과 열에 시달리고 있을 때 이마에 얹어져 있거나 머리를 쓰다듬곤 한다. 그는 언제나 냉정해지라는 가르침을 주었지만, 그 얼굴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완연하다. 마음으론 따뜻함을 느끼면서도 쥐고 있는 손은 어쩐지 서늘하고 차분함이 있었다.
    "카뮤 선생님..."
    아이작은 잠깐 눈을 뜨고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아이작이 말을 걸자 반가워하는 표정이었다.
    "많이 괜찮아진 것 같구나, 아이작."
    "저...저는...효가를..."
    "그래. 효가를 구하려고 했었지."
    "효가, 효가는......"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어. 너도 돌아올 수 있어서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에요..."
    "그래. 너도 좀 더 쉬는 게 좋겠어."
    그 나지막한 목소리에 아이작은 마음을 놓고 다시 잠에 빠졌다.

    그로부터 수일 후, 아이작은 어떻게든 회복하여 병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다친 왼쪽 눈은 붕대로 가려놓고, 진통제를 먹고 나면 조금씩은 걸어 다니거나 할 수 있었다. 그가 정신을 차린 후 제일 먼저 찾은 것은 스승인 카뮤와 친우인 효가였지만 이곳은 시베리아가 아닌 바다 밑의 신전이었고, 스승의 존재는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이 보고 느꼈던 그것이 꿈이었다고 믿기 힘들었지만 그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네가 크라켄인가."
    아이작이 사용인들을 제외하고 처음 만난 것은 스킬라 이오와 시호스 바이언이었다. 이름은 나중에 안면이 트이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한 명은 뾰족뾰족한 장발에 쾌활한 인상이라면 다른 한 명은 눈매가 날카롭지만 그보다는 조금 차분한 인상의 소년이었다. 마침 보고하러 나온 사람들 가까이에 있던 둘이기도 했고 마지막으로 스케일(린의)를 입게 될 자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하던 것도 있었다.
    "여긴 어디지..."
    "포세이돈 신전이다. 크라켄이 널 데려온 거겠지."
    바이언은 당시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고 이오는 그 옆에서 그때 본 아이작의 상처를 생각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 눈...안됐지만 붕대를 풀어도 낫지 않을 것 같다더군."
    "......" 아이작은 이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렇겠지."
    "...너 이름은 원래 어디에 있었지" 바이언이 화제를 바꾸기 위해 물었다.
    "아이작. ...시베리아에 있었다."
    아이작은 시베리아에서 세인트가 되기 위해 수행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두 사람이 입고 있는 갑옷은 스케일이었고, 그것은 곧 성역과는 적대적이라 할 수 있는 해계 소속임을 나타내기 때문이었다.
    "아이작, 우리 두 사람은 마리너(해투사)다. 너 역시 크라켄의 선택을 받았으니 마리너가 되는 수밖에 없어."
    "마리너라고..."
    "그래. 받아들이면 넌 크라켄의 해장군이 되고, 거부하면 경비를 맡기거나 허드렛일이라도 해야 하겠지. 어쨌든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고 크라켄의 스케일을 입을 만한 사람은 찾기 힘드니까 빨리 결심하길 바란다."
    "나는...생각할 시간을 줬으면 좋겠군. 아직 몸도 낫지 않았고 전력이 될 수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는 건가. 역시 세인트 수련생답군."
    "뭐라고..."
    바이언의 말에, 아이작이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지금까지의 반응이 실수였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마리너나 스케일이라는 게 뭐냐고 묻거나 아니면 집에 보내달라고 애원해야 했을 것이다. 비록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판단할 여유가 없었다곤 해도 경솔했다. 하지만, '역시'라는 건 이미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는 말일 것이다.
    "그럼, 잘 생각해 보라고."
    이오는 그 말을 남긴 채 바이언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

    자신은 지금 적진 한가운데에 있다. 아이작은 생각했다. 지금은 부상자기 때문에 타인의 경계심은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있을 수 있는 시간도 길지 않다.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순응하는 것과 싸우는 것 두 가지뿐이었다. 싸운다는 선택은 간단하다. 그냥 목숨을 버리면 되는 것이다. 몸이 회복되든 회복되지 않든 이런 상황에서 싸운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이런 곳까지 누군가 구하러 올 리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자신은 정식 세인트도 아닌 일개 수련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한 사람을 구하러 적진 한 가운데로 뛰어 들어간다는 판단을 지금의 성역에서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교황에 대해선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스승인 카뮤도 고민하는 것이 많아 보였다. 교황은 세간에 널리 칭송받는 한편, 비정하다는 인상도 존재했다. 아이작이 지금 싸우기로 결심한다면 혼자서 싸울 수밖에 없음은 자명했다. 지금 목숨을 포기하면, 세인트가 되었을지 모를 한 사람의 용감한 죽음이라는 명예의 일부분이라도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순응하는 선택은 어떠한가. 그건 아이작에게 있어 지금까지의 인생을 포기하고, 스승과 친구, 더 나아가서는 성역을 배신하는 것이다. 그가 적의 편에 서기로 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카뮤와 효가도 성역에서 요주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해계에서의 눈도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한 번 배신한 자는 또 한 번 배신해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에 그쪽에서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선택을 할 이유가 있을까.
    어차피 돌아갈 수 있더라도 이 상태라면 세인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몸이 언제, 얼마나 나을지조차 알 수 없고 그사이에 그 자리는 효가의 것이 될 테니까. 마지막으로 본 그 모습 그대로 무사하다면 효가는 카뮤에게 인정받고 크로스를 걸칠 수 있겠지. 아이작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단지 결과를 알고 있는 채로 그 순간으로 돌아갔을 때 다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들지 않았다.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고 있다면 효가는 그대로 물속에서 명을 다 할 뿐이겠지만 그렇게 해서 효가가 없어진다면 크로스는 자신의 몫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은 크로스는 가치가 있는 것일까. 효가가 양보받아 얻은 크로스는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에게 가치 있는 크로스를 양보해 준 것이라면 자신도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손에 쥐어도 괜찮지 않을까. 이 아이작의 배신으로 위기가 찾아온다면 그 역시도 그가 짊어지어야 할 책임일 것이다. 그것이 효가의 죄책감을 덜어주게 된다면 배신도 괜찮지 않을까. 아이작의 사고는 고뇌와 합리화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한편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머릿속의 그는 수차례 싸우다가 죽거나, 해계의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도망가다 붙잡히거나, 자결하거나 했다. 몇 번은 성역에서 온 사람들에게 구조되었지만 일어날 리 없는 망상일 뿐이었다.

    한동안 아이작은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하면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다. 재활을 겸해 주변을 산책할 때면 주변에는 감시자가 따라다녔다. 대부분은 잡병이나 경비 무리였지만 간혹 스케일을 갖춰 입은 자가 붙기도 했다. 머메이드 테티스는 씨익 웃으며 아이작을 쳐다봤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먼저 이름을 알려주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녀는 포세이돈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포세이돈은 조만간 현신해서 이 신전을 찾아올 것이라고 한다. 그때가 되면 성전이 시작될 거라고. 곧 때가 오기 때문에 어서 그분을 따르기로 결심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금발 머리에 파란 눈이구나. 아이작은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 말에 답하지 않았다. 가끔은 바이언과 이오와도 마주쳤다. 나이대가 비슷한 둘은 서로 친한 듯했다. 아이작을 자신들보다 어린애 보듯 하는 눈이었다. 곧 동료가 될 거라 생각하고 있는지 그쪽에서 아이작에게 말을 걸어오기도 했지만 그는 단답하거나 아예 답하지 않았다.

    "네가 아이작이군."
    크리슈나라고 하는 사내는 크고 건장한 체격에 갈색 피부, 그리고 특이한 헤어 스타일의 긴 백발이 위협적이라 생각되는 인상이었다.
    "아직 고민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이작이 함구하자 크리슈나는 말을 이어갔다. "마음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크라켄의 스케일을 한 번 보러 가는 건 어떤가."
    '크라켄...'
    아이작은 '그날', 친구를 물 위로 올려보낸 후 희미한 의식 속에서 목격했던 검고 거대한 형체를 떠올렸다. 그것이 자신을 선택했다는 사실도. 크리슈나는 스케일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를 넌지시 알려주었다. 필요하면 그곳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아이작은 그 배려가 필요하지 않았다. 크라켄은 여태껏 줄곧 그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어디 있는지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크라켄-항해하는 배 앞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고 사악한 인간만을 바다에 매장시킨다는 괴물, 그 존재는 아이작에게는 경외의 대상이자 본보기와도 같았다. 하지만 그걸 다시 한번 보게 되어 마음을 빼앗기기라도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지금 그들이 원하는 일이라면 섣불리 휘둘려서는 안 될 것이다.

    -----

    "아이작. 아이작-"
    이오는 해계의 기둥을 둘러보는 아이작을 부르고 있었다. 아이작이 머무는 곳과 가까운 북극해의 기둥을 시작으로 7개가 있고 기둥마다 각각 다른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해장군의 사명은 이 기둥을 지키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는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이작이 관심을 보여서 이오는 잠깐 기대했지만 7개의 기둥이라든가 메인 브레드 위너라든가, 포세이돈 신전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털어놓기에는 시기상조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설명 대신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사실을 꺼내기로 했다.
    "너의 스승이라는 사람, 골드세인트라면서"
    "......" 아이작은 그 말에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동요한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이오는 그가 당황한 기색을 이미 눈치챈 뒤였다.
    "아니, 그렇게 모른 척하려고 해도 우린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물병자리의 카뮤잖아."
    "어떻게 카뮤 선생님의 이름을."
    "알아내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 있었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그거야. 네가 전에 봤다고 생각한 스승은 카사가 변신한 거다. 그놈은 남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너무 많이 알려준 것 같지만...뭐, 어차피 그 능력을 알고 있더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으니." 바이언이 한 마디 덧붙이자 이오는 그게 무서운 점이지.라고 말하며 조소했다.
    "카사가 누구지 너희 말고도 더 있던 건가."
    "륨나디스 카사, 그 녀석도 우리 같은 해장군이다. 네가 합류하면 7명이 되겠지."
    "여태 마주친 적이 없었나..." 아이작의 질문에 바이언은 잠시 상황을 되짚어보았다. 일반 병사와 테티스를 제외하고, 지금 해계에서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자신과 이오, 크리슈나, 카사로, 나머지 두 사람은 일이 있어 곧 돌아오거나 할 예정이었다. 카사는 아이작이 있는 북극해의 기둥과는 정반대에 위치한 남극해 쪽에 머물고 있지만 자신들과는 사흘 동안 몇 번도 교류가 있었다. 어쩌면 고의적으로 아이작을 피하고 있었을까. 이오가 다 말해버리기 전에 막았어야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애초에 카사에게서 언질 받은 것이 별달리 없었다. 결국 알게 되는 것은 순서의 차이일 뿐이라고 결론짓고는 일단은 알아서 흘러가게끔 두기로 했다. 아이작이 자신의 거처로 발을 돌리자 바이언은 팔꿈치로 이오를 찔렀다.
    "아얏, 어떻게든 좀 흔들어볼까 했던 거다. 여태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었잖아."
    "그래, 오랜만에 대화 같은 것이 오가긴 했지. 그렇지만 카사하고도 그럴 수 있을까."
    "무리일지도 나는 전에 속았을 때 가만둘 생각이 없었으니까."
    "앙갚음이었나..." 바이언은 한숨을 쉬었다.

    아이작이 카사를 찾아간 것은 조금 시간이 흐른 뒤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에 대해 물어본 다음이었다. 테티스는 아이작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는 사실이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남극해 기둥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아, 한 가지 말해두지만, 성격이 그렇게 좋진 않으니까요."
    카사라는 남자는 구부정한 자세로 기둥 앞 계단에 앉아있었다. 헬멧을 쓰고 있어 얼굴의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었고 피부색은 창백하다 못해 보랏빛이 돌 지경이었다.
    "륨나디스."
    분노를 누르고 있는 아이작의 부름에 상대방은 고개를 돌려 돌아보았다.
    "네가 먼저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선생의 얼굴이라도 다시 보고 싶어졌나"
    "역시 네가 벌인 짓이었어. 사람의 마음속을 훔쳐보다니."
    "하나 정정하자면 나도 명령으로 했을 뿐이다. 뭐, 재미있긴 했어. 너는 다 죽어갔는데 얼굴만 비춰줘도 살아야겠다는 기색이 보였으니까. 네 친구가 멀쩡하다고 했을 때는 정말 기뻐하던데."
    다분히 비웃는 말투에, 아이작은 그 태도가 심기가 좋지 않았다.
    "이 자식..."
    "하지만, 그게 네가 보고 싶은 거였잖아. 난 그걸 보여줬을 뿐이고."
    아이작을 쳐다보고 있던 붉은 눈동자가 빛났다. 카사의 말에 아이작은 잠시 할말을 잃었다. 실제로 효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저 아이작 본인이 그렇게 되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날 효가를 물 위로 던지는 일까지는 해냈지만 그 후 효가가 무사히 살아남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이작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카뮤가 어떤 심정인지도 모른다. 그는 제자 둘을 모두 잃었을 것일까 아니면 하나라도 살아 돌아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하나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빠져있을까, 효가를 비정하게 가르치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자책하고 있을 것인가.
    "좋게 생각하는 게 좋아. 어쨌든 너는 목숨을 건졌고 크라켄의 마리너로 선택됐어. 그게 세인트가 되는 것보다 더 좋은 거 아냐 브론즈나 실버...아니, 골드보다도 더 높은 자리란 말이다. 그야말로 출세잖아"
    "그 따위 것, 필요 없어. 네놈들이 원하는 대로는 하지 않겠다."
    "아이작, 어차피 네 다친 눈은 돌아오지 않는다. 비싼 수업료를 치렀으면 이만 깨달아라."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아이작의 등 뒤에 대고 카사는 말했다. 그 말은 어쩐지 아이작의 마음속에 날카롭게 꽂혔다.

    -----

    해계의 병사들은 담배를 피우거나 병째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땅바닥의 돌을 발로 차면서 운을 띄웠다.
    "얼마 전에 온 아이작이라는 놈..."
    "그 애송이 이름이 아이작인가"
    "그래. 크라켄한테 선택됐으면서 아직도 스케일 한 번 걸쳐보질 않았다던데."
    "역시 형님이 됐어야 했는데 말이죠." 또 다른 병사가 말했다.
    "그런 눈도 멀쩡하지 않은 녀석한테 가다니. 똑같이 눈이 삐었어."
    "......" 그는 다른 두 사람이 자신을 추켜세우고 있어도 흡족하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몇 년을 굴렀는데."
    실제로 그는 마지막으로 남은 스케일을 입게 될 유력한 후보자였다. 병사들 사이에서 그의 실력은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고 해장군 중 한 사람이 되지 않겠냐는 권유도 한차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스케일을 제대로 걸칠 수 없었다. 크라켄의 스케일이 그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납덩이처럼 무거운 갑옷은 한 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고행으로 만들었다. 그 무게에 적응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크라켄의 해투사가 되어 보일 텐데.하고 그는 생각했다. 아이작이라는 소년은 새파랗게 어리고 의욕조차 보이지 않았다. 눈에 입은 부상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런 녀석쯤은 자신이 거뜬히 이길 수 있을 것이었다.
    "그놈이 물러나게 만드는 건 어렵지 않겠지. 내가 스케일을 제대로 걸칠 수 있을 때까지 그 자리를 공석으로 만들어두는 거다."
    그들은 아이작을 손볼 계획을 세웠다. 아이작에게는 다른 감시인이 동행으로 붙었지만 혼자 남아있는 때를 노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는 늦은 시간에 거처 밖을 나서곤 했다.
    "이런 시간에 빠져나오는군. 도망갈 방법이라도 찾고 있나"
    자신을 깔보는 말에 아이작은 대답 없이 얼굴에 새로 감았던 붕대의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런 정신머리로 해투사가 될 바엔 포기해."
    밤에 습격하는 인물답지 않게 당당한 말투였다. 비록 무리 지어 찾아왔지만 이런 꼬마 정도는 자기 혼자서라도 상대할 수 있다는 태도였다. 동료들을 끌고 온 것은 수적으로 압박을 가해 먼저 꼬리를 내리게 만들겠다는 계산에서였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본인이 크라켄의 스케일에 더 어울리는 인물임을 자칭했고 주변인들도 그것을 재차 강조했다.
    "..." 아이작은 이것을 촌극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진작에 스케일을 입지 않았지"
    "...꽤나 깔보고 있구나. 아직 스케일을 입지 않은 건 너도 마찬가지일 텐데." 남자의 목소리엔 심기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차피 내 것이 될 거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그렇게 만들 테니까."
    그 말에 아이작은, 남자가 스케일을 입기엔 이미 실격이라고 판단했다. '그것'은 지금도 아이작을 부르고 있었다. 그가 그걸 원하는지와는 상관없이 그것을 걸치라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버릇부터 고쳐놔야겠어."
    무리 중 한 사람이 먼저 나섰다. 그는 아이작에게 가까이 다가간 후 크게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는 한 손으로 상대의 팔을 붙잡고 역으로 주먹을 그 명치에 꽂아 넣었다. 아이작이 잡고 있던 팔을 팽개치듯 옆쪽으로 날리자 남자의 몸은 간단히 땅에 내팽개쳐졌다. 예상외의 광경에 무리는 잠시 놀란 듯 정적을 유지했지만, 각목을 든 자가 호기롭게 덤벼들자 몇 명이 더 가세하듯 뒤따르기 시작했다. 아이작은 그런 그들을 차례차례 쓰러뜨려 나갔고, 마지막으로 달려든 잡병을 발로 마무리하고는 남아서 구경하고 있던 한 사람을 돌아보았다.
    "네가 어느 정도 한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 하지만 저런 놈들은 나도 혼자서 쓸어버릴 수 있으니까."
    그 말이 허세는 아닌 것 같아 아이작은 자신의 가려진 한쪽 눈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그리고 쓰지 않고 있던 냉기를 주위에서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

    아이작은 가끔씩 비틀거리며 북극해의 기둥으로 걸어갔다. 갑자기 몸을 많이 움직였고 한 쪽의 눈으로만 보느라 눈도 피로하다. 마지막으로 싸우던 자에게는 적당히 봐주거나 하는 가감 같은 것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어쩌면 재기불능이 되었을지도. 이번 사건을 배반의 신호라고 여겨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역시 마음의 준비를 해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쯤 되면 항복을 한다 하더라도 믿어줄 리가 없으니까. 조금이라도 해계의 전력을 줄여주고 간다면 자신의 할 일은 끝일까.하고 생각했다.
    아이작이 북극해 기둥 앞에 도달하자,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등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듯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봐주면서 상대했던 잡병 중에 뒤따라온 자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던 것이 의아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봐도 사람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이작은 크라켄의 기운과 인기척을 헷갈렸다고 짐작하고는 자신의 거처로 들어갔다.

    "아이작."
    그때 누군가 그를 불렀다. 한발 늦게, 자신을 부른 그 목소리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작의 눈앞에 있는 목소리의 주인은 효가였다. 그는 광채로 빛나는 갑옷을 두르고 있었는데 하얀, 백조의 날개와 같은 모습이었다.
    "무사했구나 아이작" 효가는 당황한 얼굴의 아이작에게 다가가면서, 자신도 난처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효, 효가 어떻게 여기에 그 크로스는"
    "...미안해. 네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구하러 오려면 입는 수밖에는 없었어."
    "그건 아무래도 좋아. 그런데 어쩌자고 혼자 적진 한복판에 온 거야"
    "그...그건...네가 나를 구하느라 이렇게 됐으니까..."
    "우리 둘이서는 승산이 없어. 카뮤 선생님은, 너만이라도 무사하길 바랄 텐데..."
    아이작은 문득 크라켄의 스케일을 떠올렸다. 그것을 입는다면 도주에 실패하더라도 효가만은 빠져나갈 기회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근처의 경비가 그렇게 철저하지 않은 편이었다.
    "효가, 잠깐 기다려. 내가 스케일을 입고 같이 싸우면 어떻게든 될지도 몰라."
    "그건 괜찮아 야코프하고 같이 빠져나갈 곳을 찾아놨어. 좁은 통로라 쉽게는 못 쫓아올 거야."
    "좁은 통로...그렇군. 그런 길이라면 대부분은 따돌릴 수 있을 테지."
    "나도 간신히 지나갈 수 있어...아무튼, 돌아가려면 지금 가야 해, 아이작"

    두 사람은 북극해 기둥을 떠나 어느 통로로 향했다. 어두운 심야라 한쪽 눈이 성치 않은 아이작의 시야는 더 혼란스러웠다. 앞서 빠르게 달려 나가는 효가의 실루엣이 일렁거리는 듯했고 그렇게 뛰어다니고 있는데도 주변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생기지 않는 것처럼 적막한 기운이 돌았다. 혹시 꿈은 아닐까하고 아이작은 생각했다. 지난 며칠간 어떤 결정을 할지 고심하다가 꾸던 꿈처럼, 사실 아까의 대결에서 자신은 패배해 버렸고 흐릿한 의식 속에서 사고만 흐르고 있는 상태로 허우적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크라켄이 떠나지 말라는 듯 그를 부르는 감각만이 생시라고 판단할 수 있는 희미한 근거였다.

    나는 지금 도망치고 있는 거야.
    네 부름에는 응할 수 없다.
    어떻게든 계속 다리를 움직여서...
    효가를 따라가기만 하면 돼.
    그러면 돌아갈 수 있어.
    시베리아로 돌아가서...
    효가와 카뮤 선생님한테 지금까지의 일을 말하고...

    그런데,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뭘 할 수 있지

    ......

    아이작은 그 다음을 떠올려낼 수 없었다. 통로는 갈수록 좁아지면서 어두워졌다. 꽤 몸을 움츠리며 걸어야 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빠른 걸음을 옮겼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길은 구불거리거나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거나 했다. 효가는 표식조차 보이지 않는 갈림길에서 주저하지 않고 방향을 잡아나갔다. 아이작이 효가를 부르자 그는 이제 다 왔다고 말하며, 앞을 가로막고 있는 문을 열었다. 나무로 된 문의 경첩이 끼익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빛을 내뿜었다. 아플 듯이 밝은 빛, 갑작스럽게 시야를 사로잡은 광채에 아이작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읏..."
    "여기까지 잘 와주었다. 아이작."
    그 말에 아이작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낯선 목소리에 황급하게 눈을 뜨자 그의 앞에는 그동안 피해 왔던 그 모습이 있었다. 바닷속에서 마주친 그것이 금속의 형태로 변이한 듯이, 날카롭게 빛나는 모습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크라켄. 아이작은 넋을 놓은 듯한 표정으로 가까이 다가가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 옆에는 즐겁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 비열한 남자가 있었다.
    "몰랐나 본데, 네가 혼자 있는 것처럼 보일 때는 이몸이 형체를 숨기고 감시하고 있던 거다. 이런 기회는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너..."
    차가운 스케일에 올려진 손은 그의 의지와 달리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이작은 자신의 나약함을 깨달았다. 바닷속 신전에 스승은 없었고, 그런 륨나디스의 능력을 겪어 익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또다시 속아 넘어갔다. 자신을 구하러 올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전부터 이미 수없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결론지었으면서도 꾸며낸 말을 믿은 채 따라갔다니...그때 마주친, 자신을 걱정하는 얼굴의 효가를 떠올렸지만 막상 그가 입은 갑옷이 어떤 모양이었는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 시그너스의 크로스였을 텐데. 더 이상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환각에 지나지 않았다.

    아이작은 크라켄의 스케일을 그대로 바라보고는, 이것이 있어야 비로소 자신이 완전해질 거라고 결론내렸다. 바다 생물의 모습을 한 스케일은 갑옷의 부품으로 분리되어 그의 몸에 맞춰졌다. 무게감이라고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지만 마음속의 그늘만은 쉽게 걷어낼 수 없었다. 아이작은 문밖을 나서며 뒤돌아보지 않은 채, 카사에게 말했다.
    "기뻐하지 마라. 나는 내 의지대로 이것을 걸치는 거다. 지금의 나에겐 크라켄의 비정함과 강인함이 필요하다"
    언제 어떤 적과 마주치더라도 냉정할 수 있게. 아이작은 입술을 깨물며 다짐했다. 다시는 속아 넘어가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되뇌는 그를 카사는 웃으며 환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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