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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치이사 발렌타인 / 포타 업로드 백업용

    바치이사 발렌타인바치라 메구루는 누군가에게 초콜렛을 선물 해 본 적이 없다. 물론 받아본 적도 없었다. 그의 유년시절은 축구와 괴물, 그리고 외로움으로 덮여 있었다. 축구에만 매진한 터라 또래와의 교류가 적었고, 누군가 제게 보내오는 호감에도 무딘 편이었다. 발렌타인이라는 날을 알기나 할까 의심스러웠으나, 그런 의심을 가질 친분조차 없었다.

    그러나 특별한 날이 가까워질수록 학교란 묘한 공기가 풍기는 곳인 법이다. 아무도 소란을 피우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술렁임이 바닥에서부터 천천히 번져갔다. 바치라 또한 그 기류를 알고 있었다. 남녀가 서로 쭈뻣거리며 견제하는 것은 예민한 기질로 단번에 알아차렸으나 불행히도 바치라는 그 기류가 무엇 때문에 벌어진 일인지는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고로, 발렌타인이 일주일 남은 상황에서도 바치라 메구루가 애인에게 줄 초콜렛을 살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것은 이사기의 행동 때문이었다. 평소와 같이 연습을 끝낸 뒤, 이사기가 슬그머니 물어온 것이다.



    "바치라."

    "응 이사기"

    "14일날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뜬금없는 데이트 신청에 바치라는 고개를 기울였다. 이사기의 뺨은 상기되어 있었고, 평소와 달리 들뜬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바치라는 눈을 휘어 웃으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건 이사기가 바치라를 떠볼 때 쓰는 어휘다. 아무리 바보라도 이 정도는 알겠지, 하는 믿음이 깔려 있는 시선이었다. 연습하는 내내 힐끔거리면서 뭘 기대하는 얼굴이더라니.



    "나는 이사기랑 같이 있으면 어디든 좋은데"

    "크흠. 그으으럼 내가 알아서 골라볼테니까. 그날 시간 비워둬."

    "응 응"



    이사기는 바치라의 위화감을 눈치채지 못했다. 평소라면 쉽게 눈치챘겠지만, 상당히 들뜬 탓에 바치라를 정확히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산뜻하게 손을 흔들며 헤어진 이사기와 달리, 바치라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연인이 당연하게 시간을 비우라고 한다면, 데이트를 꼭 해야 하는 날이라는 뜻이었다. 시험 기간도 아닌데 뇌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14일은 평일이었다. 두 사람의 기념일은 아니다. 생일도 아니고. 크리스마스도 아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봐도 발렌타인, 자유결혼 금지 정책...같은 어려운 단어가 잔뜩 나올 뿐이었다. 한자는 어렵고, 영어는 더더욱 어렵다. 이사기가 외국의 자유결혼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데이트를 하자고 할 것 같지는 않았다.

    평소 축구 외의 활동에서 머리를 쓰지 않는 터라 바치라는 금방 치치고 말았다. 침대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던 그는 차선책으로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나기와 치기리가 전부였다. 그야, 레오는 이사기한테 말해버릴 것 같고 쿠니가미는...



    '치기리가 종종 바보라고 투덜거리는 걸 보면 둔할 것 같단 말이지.'



    바치라는 무척 뻔뻔한 생각을 하며 라인을 보냈다.



    [이사기가 14일날 데이트 하자고 하는데, 무슨 날인지 알아]



    보내자 마자 답장이 왔다. 늘상 핸드폰을 쥐고 있는 나기였다.



    [초콜렛 먹는 날]



    바치라는 미간을 찌푸렸다. 단순히 초콜렛을 먹는 날인가 그렇다기엔 이사기는 단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항상 제가 먹던 것을 주려고 하면 윽, 하고 손을 내저었으니까. 윙, 소리와 함께 연이어 메세지가 도착했다.



    [레오가 선물해줘. 초콜렛이랑 마쉬멜로. 레몬티랑 같이 먹어.]



    이건 조언이 아니라 숫제 자랑이다. 바치라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나기 또한 답장을 바란 메세지는 아니었는지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바치라가 다시 데굴데굴 침대 위를 구르며 고민하기 시작할 쯤, 전화가 걸려왔다. 화면을 확인하니 치기리였다. 손가락만 움직여 전화를 받자, 곧장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큰일났네, 이사기. 너랑 데이트한다고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던데.]

    [치기링]

    [여어, 바치라.]



    치기리의 목소리는 밝고 경쾌했다. 그는 곧장 발렌타인에 대하여 설명해주었다. 발렌타인은 연인들의 날로, 서로 초콜렛을 주고받는 날이라는 말에 바치라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발렌타인에 받은 건 한 달 후에 3배로 갚아야 해. 좋은 걸 주면 답례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고. 치기리의 역설에 역시 누나가 있으면 많이 아는구나, 하고 바치라가 감탄을 뱉었다. 치기리는 꼭 초콜렛이 아니라도 괜찮은 선물은 많다며 품목을 쭉 나열해주고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지금부터 준비하면 늦었을걸. 괜찮은 물건은 전부 예약해야 한다고. 여자들의 이벤트를 얕보지 마.]

    [엑]

    [뭐, 힘내. 난 이미 준비해놨지만.]



    치기리는 하고 싶었던 말은 다 했다는 듯,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어지는 순간에도 그의 목소리에는 웃음이 묻어 있었다.



    '큰일났다.'



    바치라는 직감했다. 듣자하니 발렌타인은 연인들을 위한 날인 것 같았다. 이사기는 자잘한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대범한 사람이지만, 그와 동시에 평범한 소년이다. 한껏 기대하고 있을텐데 기분을 망쳐놓고 싶지는 않았다. 분명 보편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거창한 선물은 주지 못하더라도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뭘 주지'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았지만, 치기리의 말대로 괜찮은 것들은 모두 품절 딱지가 붙어 있었다. 인기 있는 것들은 두 달 전부터 예약 싸움이 치열하다는 이야기에는 혀를 내둘렀다. 예쁜 초콜렛은 모두 팔렸고, 마쉬멜로우는 배송이 오래 걸렸다. 식단을 조절하는 이사기에게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파는 음식을 선물하고 싶지는 않았다. 근처에 괜찮은 화과자 집이 있기는 하지만 연인들의 날에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프로틴을 선물해주면... 이건 눈치가 없어도 알았다. 발렌타인에 줄만한 선물은 아니었다. 바치라는 침대에 걸터 앉았다가 드러눕기를 반복했다.

    오르골 무겁지 않을까 패스. 인형 이사기와 무척 어울리기는 하겠지만 패스. 시계 ...조금 솔깃했지만 패스. 이건 나중에 페어로 사고 싶으니까 같이 고르자고 하고 싶기도 했고, 혼자서는 이사기가 좋아할 만한 걸 고를 자신이 없기도 했다. 바치라는 난생 처음으로 타인을 위해 머리가 깨지도록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금단의 영역에 발을 딛고 말았다. 야후 질문란은 거대한 도서관이나 다름 없었다. 절반은 쓰레기였지만. 반나절을 꼬박 매달린 후에야 바치라는 겨우 괜찮은 아이디어를 건질 수 있었다.

    바치라는 침대 위로 쓰러지며, 내년에는 꼭, 무조건, 어떻게 해서든 초콜렛을 미리 예약하겠다고 다짐했다.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한 번도 참여해본 적 없는 이벤트라 그런지 자꾸만 가슴이 술렁거렸다. 바치라는 곧, 이것이 학창시절 내내 그가 알지 못했던 묘한 기류의 본질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두근거리고 긴장되었다. 연인에게 무엇을 줄까 고민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고, 또한 무서운 일이었다.

    머리에서부터 발 끝까지 그를 지배하는 것은 오롯이 이사기 뿐이었다.



    이 기쁨 또한 오롯하게 이사기만을 위한 것이다. 가슴이 부풀어 터질 것만 같았다. 한 번 자각한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고조되었고, 이대로 둥실 하늘로 떠오를 것 같았다.



    바치라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걸렸다. 내년에도 이사기를 위해서 무언가를 준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를 기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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