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팥떡님 🥳끄응-
미야기가 두 팔을 하늘로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루카와. 오늘 간 라멘집 어땠어
"맛있었어요."
"그렇지 서랑도 가깝고 자주 갈 것 같아."
"···저랑만 간다고 약속해 주세요."
미야기가 못 말린다는 얼굴로 루카와를 바라봤다. 미야기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묘하게 심통 난 표정이었다. 미야기는 루카와를 처음 만났던 날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입이 굳게 닫혀있어 필요하지 않으면 말을 걸기는커녕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이 생겼다고 생각했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루카와의 시선은 미야기에게만, 사쿠라기와 미야기가 잠복 수사를 했을 때도 서로 돌아온 잔뜩 지친 미야기의 어깨를 조심스레 감싼 뒤 제일 맛있는 곳이라고 경찰서 내에서 소문이 자자한 카페에서 사 온 커피를 건넸다. 미야기에게만 말이다. 선배 주무실 건가요 으응, 피곤하네···. 미야기의 말에 루카와는 미야기의 손에 들린 커피를 냅다 뺏어들었다. 오, 줬다 뺏기 머리를 긁으며 사쿠라기가 놀리자 미야기는 괜히 자극하지 말라며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웃었다. 조용히 자자.
"주무실 거면 이거 드세요."
"이건 뭐야"
"초코 라테요."
"그럼 나머지 한 잔은 내 거."
그럴 리가 있겠냐. 마치 그런 표정을 지은 루카와가 사쿠라기의 손에 들린 컵을 또 날름 빼앗고는 그대로 입을 대 마셨다. 사쿠라기는 포기하지 않고 먹던 커피라도 빼앗으려 했지만 루카와는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사쿠라기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냈다. 체력도 좋아. 그렇게 말하며 미야기가 천천히 초코 라테를 들이켰다. 루카와의 시선이 그새 미야기에게로 고정됐다. 저 기대에 찬 두 눈을 보며 놀려줄까 말까 잠시 고민하던 미야기는 루카와의 정성을 위해 고맙다며 맛있다고 웃어 보였고 루카와는 고개만 끄덕하고 말았지만 다시 커피를 들이키는 손이 벌벌 떨리고 있어 미야기는 초코 라테를 뿜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 직업을 택한 뒤 미야기의 직감은 항상 틀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 받아줄 마음은 없었기에 미야기는 조금 더 지켜보기를 선택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슬슬 말해줄 때가 되지 않았나 선배의 마음으로 내가 먼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미야기의 표정은 매우 심각해져 지나가던 미츠이가 발걸음 소리를 죽이려고 까치발을 들게 만들었다.
벌써 경찰서가 보이자 잠시 루카와를 힐끔 바라보던 미야기는 조금만 더 걷다 들어가고 싶으니 먼저 들어가라고 권했지만 루카와는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같이 있다가 들어가요. 그래. 루카와는 자신의 뒤만 졸졸 따라오면서 생각보다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요구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말이다.
"잠복 수사 없는 평일이라니. 귀하다 귀해."
루카와와 미야기는 서로 들어가기 전 잠시 여유를 만끽했다. 어 미야기가 고개를 돌리며 반응하자 루카와도 같이 고개를 돌렸다. 이 꽃 봐봐, 루카와. 예쁘다. 푸른색을 띠고 있는 꽃은 마치 돌고래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선배랑 같이 돌고래 보러 가고 싶다. 루카와가 답지 않게 주책맞은 생각을 할 때쯤 미야기가 말했다. 이름 돌고래란 뜻을 가진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거래. 돌고래. 루카와는 흠칫 놀랐다. 선배가 내 마음을 읽었나 아님 설마 내가 입 밖으로 선배와 데이트를 가고 싶다고 말해버렸나 루카와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굴러갈 때쯤 미야기가 말했다. 카에데.
"그래서 이 꽃의 이름이 뭔지 알아 델피늄이래. 어떤 책에 돌고래의 시간이라는 게 나오거든 일종의 명상의 시간과 비슷한 거야. 언제나 평온한 돌고래처럼 쉼표를 만들어 그 공백을 느끼는 거지. 지금 우리가 맛있는 라멘을 먹고 델피늄을 보며 얘기를 나누는 것처럼."
"료타 상."
"어쭈"
미야기의 눈이 일순 커졌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하곤 마치 계속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요. 료타 상."
그 말을 끝으로 루카와는 입을 다물었다. 이게 끝인가 내심 무언가를 기대했던 미야기가 마음대로 하라며 입을 열려 할 때,
"좋아해요. 료타 상을."
루카와는 미야기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야를 방해하는 앞머리를 시원하게 넘겼다. 카에데란 이름이 미야기의 조곤조곤한 목소리를 가지고 태어났을 때, 루카와는 자신의 이름이 꼭 푸르게 빛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 마음이 아니면 안되리란 확신을 느꼈다. 틀린 적이 없던 미야기의 직감처럼 말이다.
"그래, 루카와. 나도 네가 좋아."
"···이름으로···."
하하. 입을 크게 벌려가며 미야기가 웃는데도 루카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루카와 너 어린 시절에 갖고 싶은 장난감이 있으면 그 앞에서만 한참을 서있었지
"···어떻게 아셨어요"
"너 사건 일지 아니면 나만 보잖아. 카에데."
들켰다는 생각 때문인지, 좋아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얻은 것 때문인지 새하얗던 루카와의 얼굴이 슬며시 붉어졌다. 델피늄을 등지고 다시 서로 걸어가는 두 사람의 손은 어느새 빈틈이 없도록 붙어있었다. 료타 상 고향이 오키나와라고 하셨죠. 그렇지. 저랑도··· 같이 가주시면 좋겠어요. 어련하시겠어. 픽 웃은 료타가 고향의 푸른 바다를 떠올렸다. 근데 그 꽃을 어떻게 잘 아는 거예요 루카와의 물음에 미야기가 핸드폰을 흔들었다. 여기서 그러던데 아···.
"루카와. 저기 꽃집 좀 봐봐."
"델피늄이네요."
"지금이 개화시기인가 봐."
때마침 꽃집에서 델피늄 꽃다발을 든 여자가 행복한 얼굴로 나오고 있었다. 저런 거 받으면 기분 정말 좋겠지. 여자가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미야기는 괜히 자신이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 진짜 들어가자, 카에데. 카에데 어디 갔지 그 짧은 사이에 루카와가 사라져버렸다. 표정을 굳히고 루카와의 번호를 눌러 통화 버튼을 누르자 루카와가 금세 전화를 받았다. 루카와 뭐야 ···. 루카와 전화가 끊기자 미야기가 고개를 든 순간 무수히 많은 델피늄을 품에 안은 루카와가 미야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잖아 미야기가 타박하자 루카와가 사과하며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리했다.
"근데 그 꽃다발, 너한테 더 잘 어울리는 거 같은데 내가 줬다고 거짓말 쳐볼까 경찰서 사람들한테"
"싫어요. 그리고 료타 상도 무척 잘 어울려요 이 꽃."
당신에게 돌고래의 시간보다 더 좋은 시간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쑥스러운 마음의 꽃다발 끝을 만지작거리던 미야기는 루카와의 시선을 못 이기고 결국 웃으며 마주 보았다. 그래. 기대할게. 그렇게 서로 들어간 두 사람은 서에 있든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 나서야 퇴근할 수가 있었다. 미야기는 델피늄의 절반은 경찰서에, 절반은 집으로 가져와 화병에 꽂아두었다. 신기하게도 경찰서에 있는 델피늄은 유난히 푸르고 싱싱했다. 미야기가 없을 때 루카와가 정성스럽게 돌보았기 때문이었다.
돌고래의 평온함을 가지고 있는 루카와가 푸른 바다를 닮은 미야기에게로 기꺼이 뛰어들었다. 미야기라는 바다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잠하게 보냈지만 이따금 돌고래와 함께 큰 파도를 만들어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