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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전기반 망상이 한가득 들어간 단편글입니다.

    암피트리온과 알케이데스알케이데스, 이 테바이 아래엔 뭐가 있는지 알고 있니. 아버지는 저무는 빛을 우측으로 받은 채 앞을 가리키며 저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아래로 내려가면 아테나이가 있잖아요. 당연한 상식으로 질문에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 아버지의 질문은 손가락이 석양을 향한 채 이어졌다. 그렇다면 아테나이와 테바이 사이의 육로를 따라 내려가면 뭐가 있는지도 알고 있니 손가락의 움직임을 따라 고개를 돌리며 대답을 이어갔다. 항상 아버지가 알려주셨잖아요. 미케나이가 나온다고.
    아버지가 늘상 하던 질문이었다. 언제나 같은 질문. 그리고 같은 해답. 변주 하나 없이 그저 반복되는 아버지의 사소한 한탄이었다. 저 너머에 있는 미케나이가 바로 우리들의 고향이라고. 영웅 페르세우스가 세운 나라. 신의 축복을 받은 도시. 나의 이름은 자신의 아버지이자 훌륭한 왕이었던 알카이오스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라고. 그분이 나를 보면 분명히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라며,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마음은 고향을 떠올리며 긍지 높게 생각하자고.....
    아버지는 결코 테바이를 멸시하거나 하지 않으셨다. 언제나 추방된 자신과 따라와 준 어머니를 받아준 이 도시를 은인처럼 여기었고, 자신의 손으로 테바이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늘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어머니도 이 도시를 마음에 들어 하셨고, 나와 동생에겐 이곳이 고향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버지와 이따금 보내는 이런 시간은 언제나 어색하며 의아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테바이가 아무리 좋은 땅이라 해도 아버지에게 미케나이는 고향이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비애의 땅이기도 했다. 가족이 있음에도, 집이 있음에도 추방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떠나야만 했으니 틀림없이 슬펐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고향을 향한 향수는 항상 그러려니 했다. 나에게 테바이와 집을 떠나 머나먼 곳에서 홀로 지내야만 한다면 분명 슬퍼하며 쓸쓸한 밤을 지샐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어색하고 의아한 것은, 나와 동생에게 우리의 고향은 미케나이라며 그것을 마음에 새기길 바라는 아버지의 영문모를 간절함이다. 자신의 출신지를 긍지높게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가짐을 비웃는 것이 아닌, 그저 이해하기 힘들 뿐이기 때문이다.
    손에 가진 적도, 눈에 담은 적도, 발에 닿아본 적도 없는. 저 멀리 있는 도시의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도 나의 고향은 지금 서 있는 이곳 테바이다. 테바이가 나의 부모를 받아주었고, 나를 태어나게 해 주었고, 또한 나를 살려주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가본 적도 없는 선조들의 땅보다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이 도시의 풍경이 더욱 존귀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부모의 고향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즐겁다. 모르는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것은 흥미로우며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세계가 아니다. 나의 집이 아니다. 나의 사랑이 아니다.
    아버지, 당신은 어째서 늘 곁에 없는 근원에 대한 회상을 나에게 들려주시는 걸까요. 내가 알지 못하는, 그럼에도 나의 근원인 그곳에는 정말로 나에게 있어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일까요. 눈에 보이지 않고 들어본 적도 없는 것에, 눈앞에 있는 지금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정말로 있는 걸까요. 그곳엔 정말로 제가 돌아갈 자리가 있긴 할까요...눈앞에 서 있는, 추억에 잠긴 남자를 바라보며, 그를 서운하게 만들지 않도록 나는 성심성의껏 대답을 이어나갔고, 아버지의 발걸음과 헬리오스의 기척이 사라진 하늘을 등불삼아 내가 모르는 도시의 이야기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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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남자는 문득 유년의 기억을 떠올렸다. 양부와의 사소한 대화. 고향을 그리워하는 남성의 한탄, 자신과 같은 근원을 부디 잊지 않길 바란다며 돌아갈 수 없는 집을 그리워하는 이방인의 서글픈 웃음과 함께 보낸 추억이었다.
    남자는 반신이었다. 주신의 계획 아래에서 태어난 목적이 있는 존재. 혼은 육체의 설계도라고 하던가, 그렇다면 주신의 모습을 빼닮은 이 남자는 필시 의도된 형태대로 올바르게 태어난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불행히도 그것을 너무나도 뒤늦게 알아버린 탓에 남자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세월을 소모해야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 마음에 떠올려 본 적 조차 없는 발상. 일평생 관심조차 가지지 않은 자리. 그럼에도 그것들은 모두 자신이었다. 주신의 아이, 여신의 계략에 의해 빼앗긴 왕의 자리, 괴물을 죽이며 사람들을 구하는 위대한 영웅...... 그리고 그런 자신이 되기까지 잃어버린 소중한 사람들까지도 전부 다.

    양부의 한탄은 필시 이런 의도의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자신의 고향을 나의 아이들도 소중하게 생각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너희에겐 이곳 말고도 돌아갈 곳이 있다고, 고향을 사랑하는,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한 말이었을테니. 남자는 문득 자신의 처지에서 유년시절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깨달았다 생각했을 뿐이다.
    자신이 모르는 곳에 있던 진실이, 설령 그것이 이전의 삶과 무연한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해도 그것이 곧 자신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괴로운 것이라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끔찍한 자신을 길들이고 붇잡아 둘 수 있는 것도, 그런 자신이 있을 수 있는 곳도 결국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그치만 티륀스는 짜증나..."

    죄의 대가로 추방된 고향을 그리워하며, 마음 한켠 내준 적 없는 도시를 비난하듯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가 들으면 뭐라 생각하실지. 괜찮습니다 아버지. 그래도 경치가 멋진 도시이긴 했어요. 도무지 정을 붙일 순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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