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원:너를 위한 기도본격적인 데뷔 준비에 들어갔다. 프로필용 사진 촬영도 노래의 녹음도 끝나서 이제 남은건 뮤비 촬영만이 남아있었다.예산 상의 문제로 다른 지역으로 나가서 멋지게 촬영하는 것은 불가능 했지만 두사람의 노래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상의해서 찍기로 한 뮤비는 완성된다면 성공적인 데뷔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다들 생각했다. 단 한명 모모를 빼고.
"수고하셨습니다."
연습을 마친 모모는 돌아갈 준비를 마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모모군, 미안하지만 오늘은 먼저 돌아갈래"
"무슨 일 있으신가요"
인사를 마친 모모가 유키를 찾고 있을 때 유키가 먼저 모모에게 말을 걸었다.
"MV곡은 원곡이랑 다르게 하고 싶다고 디렉터한테 연락이 와서 지금부터 미팅 가야할거 같아."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먼저 집에가서 기다리겠습니다."
"유키군,그럼 갈까요"
유키는 데모테이프와 악보를 챙겨 매니저인 오카모토 린토와 함께 사무실을 먼저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모모는 두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사무실에 남아있다가 사무실을 나섰다.
'유키씨가 만들어준 곡으로도 충분히 멋진 곡인데 수정을 해야하는 구나.역시 내가 아니라 반씨가 있었어야 했던게 아닐까'
데뷔가 가까워질 수록 모모는 불안했다.
집에 도착한 모모는 세탁물을 정리하고 어제 집에서 가지고 온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집을 나올 때 짐을 전부 가지고 나오고 싶었지만 유키씨와 단둘이 살고 있는 집이 좁아서 모든 물건을 한번에 들고 올 수 없었다. 그래서 당분간만 계절별 옷만 집에서 챙겨오기로 했다. 누나가 집에 없는 시간에 잠깐만 들러 필요한 짐들만 서둘러 챙겨온 탓에 가방안에 들어있는 짐들이 엉망이었다.
"어이건 내 물건이 아닌데. 누나 짐이 섞여버린건가."
모모는 가방속에서 나온 붉은 색의 매니큐어를 따로 챙겨놨다.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것. 그것은 이 매니큐어뿐만 아니라 자신이 서 있는 자리도 마찬가지였다.
'왜 네가 반씨의 자리에 대신 들어가는데'
자신이 유키씨와 팀을 짜서 리바레로 데뷔하기로 했을 때 누나는 기뻐해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게 정말 맞는걸까"
유키씨가 노래를 그만두지 않았으면해서 그래서 반시를 찾기 위해 노래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모모는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댄스는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있었다.노래도 유키씨의 덕분에 잘 부를 수 있게 됐지만 유키씨와 반씨의 리바레에는 자신이 미치지 못 했다.
"...."
모모는 점점 불안해져서 몸을 둥글게 말고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이고 살짝 눈을 뜨니 모모의 시야에 염색한 머리가 들어왔다.
"...발원이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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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잘 알아가기 위해, 유키씨에 대해 알아가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앨범인가요"
"반이 찍어서 모으고 있던거야. 팬들이 보내준 사진도 있다고 들었어."
과거를 알아보는데 가장 확실한건 사진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모모는 유키와 반의 사진을 황홀하다는 듯한 얼굴로 한장씩 넘겼다. 밴드맨의 시절의 사진부터 아이돌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의 사진, 그리고 모모군과 만난 시기의 사진도. 모든 사진에는 날짜와 언제 찍은 사진인지 반이 적어둔 메모가 적혀있어서 유키는 추억을 더듬어가며 사진에 대해서 모모에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어라 유키씨 이 사진은 아이돌 활동시기의 사진 같은데 머리에 브릿지가 없네요.브릿지는 언제 하신거에요"
모모가 '첫아이돌활동'이라고 메모가 되어있는 사진을 보며 물었다.
"아,도쿄에 올라왔을 무렵인가"
유키는 브릿지를 만지며 무언가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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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 먼저 도쿄로 올라가 거점을 잡을 준비를 할 때 두사람의 아지트인 반의 자취방은 정리를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반이 살기 위해 반의 부모님이 마련해준 자취방. 반이 도쿄로 이사가게 되면 그 집의 존재는 애매해질 수 밖에 없었다. 유키는 미성년자, 부모님에게 부탁해 그 집을 계약을 한다고 해도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더군다나 반이 없는 집에서 유키 혼자 살아갈 이유도 없었다. 결국 유키는 재미없는 본가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반이 도쿄로 가면서 리바레의 활동거점도 애매해졌다. 기존의 뮤직스테이션에서의 공연, 도쿄에서의 공연. 정신없이 흘러가는 일상속에서 이동에 허비되는 시간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그 시간에 작곡을 하고 싶다. 반과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유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 학교 그만둘까봐."
어느날 유키가 반에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동시간이 너무 아까워. 그리고 반이랑 떨어져 있으니까 작곡을 해도 바로 피드백 받지 못하니까 불편해.만나고 싶을 때 바로 만나지 못하는 것도 아쉬워."
유키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반에게 말했다. 사실 유키가 느끼는 불편은 어느정도 반도 느끼고 있었다.하지만 반은 그 불편함마저도 유키를 위한 미래의 초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안돼,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하고 와.앞으로 몇개월 안남았잖아. 말했잖아, 반드시 데뷔하게 해주겠다고. 앞으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니까 조금만 더 참자."
반의 설득에 유키는 알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뚱한 표정으로 반의 쓰다듬을 받을뿐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대답을 하지 않고 얌전히 쓰다듬을 받는것이 긍정의 대답이라는걸 반은 알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유키가 졸업과 동시에 도쿄로 올라왔다.
"유키,너 머리가."
반은 유키의 머리한켠에 하얗게 브릿지가 들어간 머리를 가리켰다. 지난주에 만났을 때만 해도 평소와 같았는데 일주일만에 만난 유키의 머리는 어딘가 세련되고 멋있어져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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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군은 발원이 뭔지 알아"
"네네. 그 신에게 소원을 비는거라고."
"맞아. 리바레는 나와 반, 둘이 있어야만 활동 할 수 있었으니까.헤어져서 활동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어.소원을 빌 때 자신의 행동을 제한하거나 무언가를 몸에 지니고 있는거라고 해서 염색까지 한건데...결국 소용은 없었지만."
유키는 염색한 자신의 머리를 손끝으로 잡았다. 유키의 발원.자신의 노래가 타인에 의해 바뀌지 않아으면 하는 마음으로 계속 노래할 수 있게 해달라며 신에게 빌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노래는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걸 한번 경험 했으니까. 하지만 신은 그런 유키를 비웃듯 유키에게서 반을 뺴았아 갔다.
"...그래도 괜찮아. 이제...모모군 울어"
"그..흑..죄송해요.유키씨가..."
유키는 모모의 눈물을 닦아주었지만 모모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흐읏...윽...유키씨...저 저도 염색할게요유키씨가 계속 노래할 수 있게,반씨를 찾아서 두분이 반드시 다시 노래할 수 있도록 저도 발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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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는 그날의 다짐에 따라 바로 미용실에서 염색을 진행했다. 처음 해도는 염색은 너무나 어색했지만 유키의 '잘 어울려.'라는 말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매니큐어..."
따로 챙겨놨을 터인 매니큐어가 소리없이 굴러와 모모의 발에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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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어,모모...이게 무슨 냄새지"
미팅을 마치고 귀가한 유키는 코를 찌르는 냄새에 인상을 썼다. 어디선가 맡아본적이 있는 듯하면서도 짐작이 가지 않는 불쾌한 냄새였다.
"...일,일찍 오셨네요,유키씨."
유키가 인상을 쓰며 방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자 모모가 급하게 거실쪽으로 나가 유키를 맞이해줬다.
"뭘하고 있었어"
"아니,아무것도 안했는데..."
"모모,너 손이"
모모가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을 저었을 때 유키의 시야에 들어온 건 빨갛게 된 모모의 손이었다. 유키는 붉게 변한 모모의 손이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린것이라고 생각해 안색이 창백해졌다.
"약,약상자가..기다려.금방 치료를..아니 지금 바로 병원에.."
"그..다친게 아니라 매니큐어에요"
유키가 불안한 얼굴로 모모의 손을 꼭 잡아쥐자 모모는 얼굴이 빨개진채로 소리를 질렀다.유키는 모모가 내는 큰 소리가 아닌 옆집에서 시끄럽다며 벽을 친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매니큐어"
"네...그 매니큐어가 있어서 발라봤는데 이상하게 발라져서 그런데 지우려고 해도 잘 안지워 져서 곤란해하고 있었는데 유키씨가 오셔서..."
"하하,그런거였어다행이다.그래.매니큐어..매니큐어였구나."
유키는 창피해하는 모모의 손을 다정하게 쥐며 안심하며 웃었다. 유키의 웃는 얼굴에 모모는 더욱 창피해졌다.
"매니큐어는 전용 리무버가 있어야 지울 수 있어.잠깐 기다려봐."
유키는 모모에게 기다리라고 한 후 아직 정리가 덜 끝난 상자를 뒤적이다가 네일 리무버라고 적힌 병을 하나 꺼냈다.
"어디 유통기한이...다행이다. 아직 쓸 수 있겠어."
"..유키씨 이건.."
"예전에 어디서 받은건데 반네 집에 놨었거든. 다행히 아직 있었나봐."
유키는 리무버로 모모의 손톱을 조심스레 닦으며 매니큐어를 지워줬다. 삐져나가고 군데군데 안 발리고 뭉친데다가 먼지까지 붙은 엉망인 매니큐어가 마치 지금의 자신들 같아서 천천히, 앞으로의 미래는 밝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조심스레 지워나갔다.
"그보다 갑자기 왠 매니큐어야"
"집에서 가져온 짐에 섞여 들어가 있었어요.그,저는 유키씨만큼 멋있지 않고..."
모모는 입을 꾸욱 다물고 뒷말을 삼켰다.
"그리고"
창피해서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안 될거것 같아서 모모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예전에 누나가 말한적 있어. 화장은 여자의 무기라고.매니큐어도 그 중 하나라고. 손끝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쓰면 더 당당하게 자신있게 있을 수 있다고."
모모는 매니큐어를 바르며 자신감에 찬 얼굴로 웃는 누나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때의 누나는 당당하고 누구보다 강해보였다.
"그리고 발원."
"발원갑자기"
"유키씨의 머리가 리바레의 노래가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노래를 하기 위한 발언이라면,이건 반씨를 다시 찾을 수 있게,반씨를 찾아서 다시 유키씨와 리바레를 노래할 수 있도록 있게 해달라는 저의 기도예요."
모모의 단호한 목소리에 유키는 살풋 웃었다. 자신을 설득 하러 왔을 때 처럼 강인한 눈동자.모모가 이 눈으로 말하는건 전부 이루어질 것 같은 그런 매력이 있었다.
"그럼 나도 바를까"
"네아,아뇨.매니큐어는 바르면 생각보다 불편하다고 하니까 저만 바르면 되는걸요.그리고 이건 제 욕심이니까."
"그럼 내가 바르는 건 내 기도인걸로. 모모와의 앞으로의 활동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