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과 파트너가 되었다지만 모울은 의상을 딱히 맞춰 입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단정한 쥐색 턱시도를 입은 모울이 창문에 비친 모습을 보며 머리띠를 단단하게 고정했다. 이상한 옷을 입고 오는 건 아니겠지 가끔가다 턱없는 감각을 발휘하던 카인을 떠올리며 뒤늦게 모울은 걱정했다. 설마, 레이스가 달렸다던가 이상한 무늬가 있다던가 그런 옷은 아니겠지. 제 머리에서 흔들리는 늑대 귀 머리띠는 생각도 하지 않고 카인의 옷이 정말 괴상하면 무도회고 뭐고 그냥 뒤돌아서 기숙사에 가리라 모울은 마음먹었다.
다급한 발소리가 들린다. 카인이 온 것이다. 늦은 것에 대해 한 소리 하며 카인의 모습을 살펴보려던 모울이 굳었다. 아니, 저 옷은, 아담이 호그와트 6학년 시절 이브와 크리스마스 무도회에서 입은 옷이었다 갑자기 한계 오타쿠처럼 -물론 모울은 아담 한계 오타쿠가 맞았고, 아담의 물건을 가지기 위해서라면 그의 아들과 잘 수 있었다.- 어휘력을 잃은 모울이 왈칵 눈물을 쏟았다. 내가, 이걸 실물로 보다니.
갑자기 우는 모울에 카인이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발짝 물러섰다. 마음에 든다니 참 다행이다. 엉거주춤 손수건을 꺼낸 카인이 손수 눈물을 닦아줄 생각은 못하고 모울에게 떠넘겼다. 이건 아담이 자주 쓰던 손수건 브랜드잖아 모울이 제 턱시도 소매로 벅벅 눈물을 닦고 손수건을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었다.
"입장하자, 카인."
"어 어, 어 그래."
이 거대한 크리스마스 선물에 모울이 무도회 동안 카인에게 잘 대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정말 멋지게 에스코트해주마 기대해라, 카인
***
입장하자마자 들린 수군거림에 모울은 그만 기숙사에 가고 싶어졌다. 오직 아담을 동경해서 퀴디치 선수가 되었을 뿐. 사람들 앞엔 나서고 싶지 않았던 그는 카인이 입은 옷을 보며 마음을 다스렸다. 아담을 상징하는 황금 날개가 수놓아진 옷은 정말 멋졌다. 이걸 달라고 하면 안 되겠지.
모울이 기껏 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카인이 접시 가득 모울이 좋아하는 음식을 담아 가져왔다. 이거 좋아하지 않냐며 웃는 카인에 고장이 난 모울이 기계적으로 접시를 받아들였다. 모울은 카인이 잘하는 과목이 마법의 약임을 떠올렸다...
독을 탔거나, 설사약을 탔거나. 아무튼 이상한 걸 탔겠지. 모울은 지나가는 그리핀도르 퀴디치 선수를 붙잡아 접시를 떠넘기는데 성공했다. 접시를 받아서 든 팀원이 수상하게 웃으며 윙크했다. 점점 짜증이 치솟아 오른 그가 발을 탕탕 굴렸다.
그런 행동을 무시하며 카인이 모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 자식은 지하에 있는 기숙사에 살더니 눈치도 같이 없어졌나. 모울이 마지못해 카인의 손을 잡았다. 수군거림이 커졌다. 모울을 부드럽게 잡아끌던 카인이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왜 또 안 하던 짓을 하지. 의심스러운데. 파트너 권유도 섹스하던 중에 했던 놈인데 이런 섬세함이 있을 리가
모울이 의심스럽게 보거나 말거나 카인이 왈츠에 맞춰 그를 이끌었다. 이렇게 된 거 발이나 밟아주자며 모울이 타이밍을 노렸다. 모울이 그의 발을 노리며 콱콱 내리찍을 때마다 카인은 능숙하게 피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퀴디치할 땐 잘 날아다니더니, 춤은 못 추나보네 였다.
모울은 억울했다. 연회 전에 열린 댄스 특강에서 얼마나 칭찬을 많이 들었는데 게다가 저가 일부로 발을 밟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런 말을 하는걸 보니 참 얄미웠다. 파트너가 없어서 신청을 받아들였지만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심지어 제 우상인 아담의 물건만을 노리고 자는 사이였는데.
모울이 머리에 쓴 회색 늑대 귀 머리띠가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분하지만 카인은 의외로 춤을 잘 췄다. 경쾌한 왈츠가 끝났다. 파트너를 바꿔 춤을 추거나 휴식을 취하기 위해 학생들이 흩어진다. 카인이 음악이 끝나자마자 그를 구석 테라스로 이끌었다. 슬리데린 반장과 그리핀도르 퀴디치 반장 사이의 가쉽은 흥미로웠지만 그게 제 파트너를 버려두고 몰두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금방 관심을 껐다.
***
모울이 카인이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퀴디치 스타인 아담을 닮은 건지 힘 하나는 강하네. 모울은 괜히 투덜거렸다. 파트너 수락부터 지금까지 계속 카인에게 끌려다니는 기분이라 썩 좋지는 못했다.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질 무렵 카인이 아벨에게 귀띔 받았던 후미진 구석 테라스로 그를 끌어들였다.
테라스에 들어와 커튼을 친 뒤 정적이 가라앉는다. 제 손을 붙잡고 한참 만지작거리며 카인이 뜸 들이다 말했다.
"오늘, 어땠어"
"기숙사에 가고 싶었는데."
그 대답에 눈에 띄게 상처 입은 듯한 카인을 보며 모울은 기가 찼다.
"아니, 우린 사귀는 사이도 아니잖아. 그냥 섹파일 뿐인데."
"그래, 그렇지."
아, 귀찮은 녀석. 이렇게 된 카인은 두고두고 귀찮아지리라는 것을 안다. 그럼 아담의 새로운 물건도 받지 못할 테고, 이미 알아버린 그 쾌감도 오랫동안 맛보지 못 하리라. 모울의 시선이 카인의 머리 위를 방황했다. 겨우살이가 보인다. 모울이 한참 커다란 카인의 셔츠를 붙잡고 내려 뽀뽀했다. 물론 6학년 아담이 입었던 옷이 구겨지지 않게 아주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갑작스런 뽀뽀에 눈이 동그랗게 떠진 카인을 보며 모울이 겨우살이를 가리켰다. 겨우살이 밑이니까.
헤벌쭉 웃던 카인이 가볍게 모울의 입술에 뽀뽀했다. 그러다 목덜미를 붙잡고 깊게 키스한다. 자신과 붙어먹으면서 쓸데없이 늘어난 키스 실력에 모울이 혀를 차면서도 적극적으로 응했다. 두툼한 혀가 엉킨다. 테라스 안에서 한동안 질척한 소리만 났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카인이 모울의 허리를 더듬었다. 갈, 까 주어 없는 질문에 모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오, 겨우살이 위대한 크리스마스의 마법 이렇게 아직 연인이 아닌 둘이 불타는 밤을 보낼 것이다.
...사실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마법은 사춘기 청소년의 성욕이 아닐까 싶다만, 뭐, 크리스마스 밤은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