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야[4시에 카페에서의 약속, 잊으시면 안 돼요, 선생님]
수신자는 당황했는지, 읽음 확인이 사라진 지 몇 분이 지나고 나서야 길지 않은 답장의 래빗챗을 보냈다.
[응. 잊지 않았어, 아야 쨩. 그때 보자.]
* * *
오사카 소고는 약속대로 4시에 카페의 프라이빗 룸에서 밀회 아닌 밀회의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이라 부르면서 곤란한 질문을 마구 던지고 있는 눈앞의 상대는 사랑스러운 연인의 여동생이었다.
이 당황스러운 비밀의 만남은, 며칠 전 타마키에게 꼭 비밀을 지켜달라는 아야의 래빗챗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소고가 작은 소녀를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당혹에 젖어 판단을 내리는 것조차 어려운 시기가 아니었기에, 처음엔 소고도 타마키 군에게 말하지 못할 ‘비밀’에 대해선 거절했다. 그러나 몇 번의 설전 끝에 소고는 패배했다. 그야 소고에게 아야란 잘 보이고 싶은, 사랑스러운 연인의 친가족이었고, 타마키 군을 닮은, 아니 타마키 군보다 더욱 심한 과격한 행동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고는 아야의 비밀 선생님이 되어주기로 했다. 그것이 이 비밀스러운 만남의 계기였다.
“수갑을 한 채로 계속 해도 손목에는 지장이 없나요, 선생님”
“아야 쨩… 그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대체…….”
“그야, 이쪽 지식을 알려주시니까 선생님이죠 짧은 시간이지만 열심히 배워가도록 할게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물어오는 연하의 여자아이-아야의 성인식은 1년도 더 전에 치러졌지만, 여전히 지켜줘야 할 여자아이로 보였다-의 적극성에 소고만이 홀로 얼굴을 가리고 싶어졌다. 스스럼없이 질문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은 좋았다. 하지만 소고는 아야보다 5살이나 연상인, 동성도 아닌 이성의 성인 남성이었다. 아무리 미래의 예비 가족이라지만, 민감한 주제를 스스럼없이 말하기엔 부적절한 상대 아닌가.
물론 ‘예비 가족’이라는 아야의 말이 있었기에 소고가 한 수 접어준 것이었다.
타마키와 자신의 성생활이 가족 간에 얼마나 공유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야는 소고를 찾아와 이쪽() 지식을 전수해달라 요청했다. 타마키 오빠나 텐 오빠에게 물어보았다간 괜히 걱정만 잔뜩 사고 하루 쨩을 구박하리라며, 두 사람에게 비밀로 하면서 이쪽() 지식을 배우기 위해선 타마키 오빠와 결혼할 소고 씨밖에 없지 않냐며 아야는 주장해왔다.
물론 아야가 지식을 전수 받을 상대로 소고를 찾아온 것은 아주 옳은 선택이었다. 소고는 타마키와 합의 하에 수갑 플레이를 즐긴 적이 여러 번 있었고, 이를 위해 다양한 사이트와 제품을 비교해 가며 분석했던 적이 있으니.
아야는 이런 사적이고 민감한 성적 지식을 물어볼 손위 여성 형제나, 어머님이 부재한 상황이었다. 쿠죠 가의 교육을 받는 동안 속마음을 털어놓을 또래의 동성 친구를 사귀는 것도 어려웠으리라. 결국 소고는 이렇게라도 웃어른으로서 도움을 주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고-소고가 거절한다면 아야 쨩은 하루카 군과 같은 그룹인 멤버에게 묻는다며 미도 씨를 찾아가겠다고 했다- 사근사근 웃는 얼굴로 아야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그런데 아야 쨩, 하루카 군에게도 비밀이라는 건……. 하루카 군의 허락을 맡지 않은 거지 하루카 군의 성향에 대해선 모르겠지만, 이런 건 상호 간의 합의를 거쳐 강압적이지 않게 이루어져야 해.”
“괜찮아요. 하루 쨩은 제 부탁을 잘 들어주는 편이니까요. 제가 해주는 거라면 하루 쨩도 좋아하구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아무튼 비밀이에요 서프라이즈로 준비하고 있는 거란 말이에요.”
“으응…….”
본격적인 BDSM도 아니었고, 아야는 주장과 고집이 센 편이긴 했으나 그렇다고 하루카에게 강제하는 기억을 심어줄 아이도 아니었다. 물어보니 수갑을 차는 쪽도 아야가 아닌 하루카였으니 싫다면 완력으로 거절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소고는 예비 동서에게 트라우마가 남지 않길 조심스레 빌었다.
* * *
이스미 하루카가 쿠죠 아야와 비밀 연애-팬들에게서-를 하게 된 것은 3년 전의 어느 날이었다. 아야는 첫사랑의 실패를 수긍했다. 확고한 거절을 당했고, 아야도 사랑을 놓아주려 노력했지만, 감정이란 게 곧바로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연애 대상으로서의 사랑은 아니었지만 하루카 역시 쿠죠 타카마사에게 사랑을 느꼈고 갈구했으며, 끝내 그에게 버림받고 나선 한동안 자신의 부족함을 대신한 텐을 향해 질투와 동경을 불태웠으니.
시간이 약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받는 시간이 쌓이면 아야 역시 깊은 외로움을 타카마사에게 향하는 일이 없어질 테다. 다행이게도 아무도 곁에 남지 않았던 자신과 달리 아야에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타카마사와의 사랑을 제외하고 아야를 응원해 줄 사람들은 많았으며, 아야 역시 본격적인 데뷔를 준비하면서 타카마사를 향한 감정도 갈무리되고 있다고, 주변 사람들은 생각했다.
아야의 오빠들의 걱정은 줄어들었으나 줄어들지 못했다. 그 ‘요츠바 타마키’ 마저 하루카에게 아야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느냐며 종종 물어왔다. 한참 사랑을 할 질풍노도의 시기의 아야였다. 실제로 사랑을 해서 모두가 기겁할 이슈를 만들어 냈으니, 이왕 여동생이 사귀는 사람이 아야의 또래이자 인연이 나름 깊은 자신의 친우이길 바라는 마음은 이해됐다.
타마키의 바람과 달리 하루카는 아야와 사귈 마음이 없었다. 물론 ‘죽어도 얘랑은 못 사귀어’ 같은 생각이 아니라, 섣불리 실연당한 여자아이에게 다가갈 마음이 없었던 것이며, 아야에게 괜히 고백을 찬-마음은 둘째치고 자신이 앗 쨩에게 고백을 해도 차일 게 뻔하지 않나- 애매한 남사친으로 불편한 관계의 사람 1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루카는 자신이 아야의 허물없는 친구라는 데에 자신이 있었다. 상처를 입은 이에게 마음 편한 친구의 존재는 중요했다.
설마 그 ‘쿠죠 텐’까지 은근히 응원할 줄은 몰랐지만. 하루카는 정말 만약에, 아주 만약에 자신이 아야와 사귀게 된다면 그의 친오빠인 타마키에게 밝혀지는 쪽이 훨씬 덜 무서우리라 생각했다. 비록 여동생을 채간 남자를 향한 화를 좀 듣겠지만 금세 수긍할 게 뻔히 보이는 것이 요츠바였다. 반대로 쿠죠 텐에게 들킨다면 아이돌의 연애에 대한 무시무시한 일장 연설을 들을 것이라 생각했다. 타카마사를 향한 배신감과 분노에 치달았을 때의 자신이 보아도 텐은 이상적인 아이돌이었다. 아이돌의, 팬을 향한 태도를 일깨운 것도 텐이었다. 그러니 아이돌이 팬을 기만하는 행위인 연애를 응원할 줄이랴. 다만 아야의 눈에 눈물이라도 떨어지는 날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는 협박 아닌 협박에 하루카는 동생을 둔 형이자 오빠의 텐의 모습을 보았다.
하여튼 하루카는 아야와 사귈 생각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야에게 고백할 생각이 없었다. 3년 전 어느 날, 아야가 자신과 같은 나이인 17살에 데뷔하고 18살에 1주년 콘서트를 마친 그날 저녁, 눈앞의 한창 잘 나가는 여성 싱어이자 귀엽기만 하지 않고 여성적인 매력까지 물오르듯 피워 올리는 매력적인 여사친이 박력 있게 고백을 하기 전까지, 하루카는 진실 되게 아야와 사귈 생각따위 하지 않았다. 그날 하루카는 얼떨결에 고백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자마자 무섭게 울리는 타마키의 래빗챗을 무시하며 머리를 쥐어 싸맸다.
“이거 꿈인 거 아냐”
스스로 양 볼을 쥐고 아플 정도로 늘렸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아주 아팠다. 그 와중에 새로운 래빗챗 알림-요츠바의 알림은 잠시 뮤트해놨다-이 휴대폰 상단에 떴다. ♥앗쨩♥ 저 요란한 하트는 언제 붙인 거란 말인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하루카가 새빨개진 얼굴로 고백을 수락했을 때 곧장 휴대폰을 뺏어든 아야가 바꿨으리라. 하루카는 저 낯부끄러운 요란한 하트를 빤히 바라보다가 알림창을 눌렀다.
[하루 쨩이랑 사귀기로 한 거 타마키 오빠한테도 말했어.]
래빗챗이 꿈이 아니라고 소리쳤고, 하루카는 그날 스스로도 무슨 정신인지 모르는 상태로 축하와 잔소리를 동시에 상대해야 했다.
그래, 솔직히 예쁘다고 생각했다. 쿠죠 아야는 객관적으로 미소녀다. 인정하기 싫지만 타카마사의 재력으로 철저하게 아이돌의 관리를 받은 아야는 길을 가다가 돌아볼 정도로 아름다웠다. 첫 만남의 그냥 귀여운, 눈이 커다란 여자아이에서 시간이 갈수록 물씬 예뻐졌다. 그냥 남사친이 봐도 예쁘고 귀여웠다. 아야가 데뷔한 이후 요츠바와 남매인 이유도 솔직히 체감했다.
그렇다고, 심지어 고백을 받아들이기까지 했지만, 하루카가 아야에게 성적인 욕망을 지녔다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하루 쨩에게 앗 쨩이란 못말리는 친구이자 여동생과 같은 존재였다. 실제로 아야와 여동생으로 가족을 꾸리는 헛된 상상을 하던 시기도 있었으니 친오빠인 요츠바라면 모를까, 양오빠인 쿠죠 텐과 자신이 아야를 대하는 건 다를 바 없었단 말이다.
타마키의 래빗챗을 안 읽고 있자 텐에게서 래빗챗이 왔다. 그것도 단체 래빗챗이었다. 당연히 같이 있는 멤버는 요츠바 타마키.
[이스미 하루카. 답신이 늦어.]
하루카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임금님 푸딩이 잔뜩 화내고 있는 래빗챗을 열어봤고, 아야의 오빠들에게 석고대죄하며 아야가 성인이 될 때까지 손 이외의 신체 부위는 절대 건드리지 않기로 맹세를 하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어쨌든 하루카가 오빠였고, 하루카는 성인인데 아야는 아직 미성년이었다. 여동생 같은 친구였다… 심지어 친구의 여동생이다……. 하루카도 제정신으로 판단할 여유가 있었다면 거절했을 터였다. 하지만 상대가 불같은 행동력의 아야였고, 그가 사랑에 얼마나 과감한지 하루카도, 타마키도, 텐도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이는 참작되었다. 연애라기보단 보호였고, 하루카도 그 보호에 응했다.
그 대화의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친구의 연애 사정-하필 타마키가 소고와 사귄 시점에서 소고의 나이도 20세로, 지금의 하루카와 같은 나이였다-까지 들었으니 여동생을 향한 무한한 걱정을 이해했다.
그 뒤로 정말 건전하게 연애했다.
새로 생긴 크레페 가게에 얼굴을 가린 채로 같이 가고, 게임 센터에 가서 게임 스코어로 내기도 하고, 게임 센터 앞 크레인에서 작은 인형을 뽑아주기도 하고, 로케 촬영을 갔을 때 그 지역 마스코트 캐릭터 키링-아야의 취향이었다-을 사와 커플 템처럼 맞추기도 했다. 아야의 복불복과 같은 음식을 가장 많이 맛보았고, ZOOL의 신곡이라든가 하루카의 잡지가 발매될 때면 아야의 응원과 코멘트를 가장 먼저 받기도 했다. 아야의 손을 잡을 때 이전과 달리 두근거림이 포함된다는 점, 프리쿠라를 찍으러 갔을 때 아야가 갑작스럽게 볼에 키스를 해서 놀란 사진이 찍혔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전과 비슷했다. 이게 친구 같은 연애인가 아이돌이라 파파라치에 찍히지 않을까-츠쿠모 료에 의해 업계의 무서움은 이미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이 겪었다- 주의해야 하는 점 이외엔 하루카는 이 두근거리는 일상에 만족했다. 웃기게도 연애하면서 하루카의 ‘안기고 싶은 남자 랭크’는 승승장구로 올랐지만 하루카는 누구보다 건전한 연애를 했고, 아야가 성인식을 마치고 나서도 그 이상으로 넘어갈 생각은 크게 없었다.
분명 없었었다…….
기어이 첫 키스를 한 작년 겨울, 두 사람은 기념비적인 밤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