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뫼르소 뒤에서 히스가 방망이 깎는 글뫼르소는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금속성의 마찰음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고개를 뒤로 돌려 소음의 원인에게 주의를 줄 수도 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불과 몇달 전, 바로 옆자리의 8번 수감자의 경우에도 크고 투박한 작살을 배 위에 있던 동안 강박적으로 갈아대었었다. 무기를 서슬퍼런 눈으로 갈아대는 자에게 대들 만한 용기가 있는 수감자가 버스안에 없어서였을 수도 있지만... 뫼르소는 단지 관리자님이 8번 수감자와의 면담 이후 진땀을 뻘뻘 흘렸던 것만 기억했기에, 별 말없이 자신의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번에도 자신이 명령받은 바가 없었기에, 또한 7번 수감자에게 자신의 귀에 그 소리가 어떠하게 들리는지를 설명한 뒤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여 합의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변수들을 계산해봤을 때 아마 다소 반갑지 못한 반응이 돌아올것이라 느꼈기에 그저 앉아서 눈을 감았다.
—카드득, 칵. 카칵, 칵.
금속성의 배트에 날카로운 것이 마찰되며 듣기 썩 좋지 않은 소리가 비어져 나왔다. 히스클리프 또한 그걸 느꼈는지, 잠시 앞좌석의 남성을 곁눈질 하다가 다시 칼을 들어올렸다.
"넌 쉬러 안가냐"
"아직 업무종료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리를 뜰 이유가 없다."
다른 수감자들 중 6명은 거울 던전으로 관리자와 함께 떠났고, 나머지 6명 중 넷—돈키호테, 그레고르, 료슈, 이상—은 방금전까지는 버스에 남아있었으나, 둘은 버스 밖으로 담배를 피우러 나갔으며, 나머지 둘은 돈키호테의 주도 하에 췌에스()를 두러간 모양이었다.
"...뭐라도 하지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니까 거 신경쓰이네."
몇개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수감자들과 가까운 지 먼 지 알 수가 없는 그를 곁눈질하다, 히스클리프가 결국 칼을 내려놓았다. 거친 손끝으로 배트의 꺼끌한 면을 대충 털어내자, REVENGE의 V과 N, G부분에 새로운 획이 새로 그어져 있는 것이 드러났다. E뒤에는 아직 덜 그어진 자잘한 흠집들이 나열되어있었다.
"조간 신문은 다 읽었기에, 그리고 이 시간에는 원래 낮잠을 잤었다."
"그러고 보니 돈키호테가 저렇게 꼿꼿하게 앉아서 자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떠들어대는데도 꿋꿋하게 자는게 신기하긴 했지..."
"수면보다는, 단지 눈을 감고 재충전을 하고 있던 것 뿐이다. 눈을 감고 있는 것 만으로도 뇌의 활동이 어느정도 휴식을 취할 수..."
뫼르소가 자연스럽게 설명을 줄줄 늘어놓기 시작하면, 히스클리프가 익숙한듯 대충 중간에 말을 끊어치는게 분명 평소와 같은 모습일테지만...
"..."
워더링 하이츠에 다녀온 이후로, 평소와 같은 모습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시선이 창 너머를 향하는 때가 많아진 그를 뫼르소가 모를리가 없었다. 관리자님에게 전달받은 바는 없었지만, 분명 워더링 하이츠에서 겪은 많은 일들이 그에게 우울한 영향을 미쳤으리라 파악한 뫼르소는 그의 손에 단단히 붙들린 배트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무기를 손질하고 있었나보군."
단순히 무언가를 새기고 있는 모양새였지만, 그걸 매만지는 손과 눈빛에서 고집스러움이 느껴지는 히스클리프를 보며 뫼르소가 먼저 대화를 시작했다.
말없이 글씨를 손끝으로 문지르던 히스클리프는, 다른손에 쥐고 있던 칼을 들어 다시 획을 하나 긁어내리기 시작했다.
—칵.
여전히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소리였기에 뫼르소의 미간이 1mm정도는 좁아졌으리라. 히스클리프가 배트를 긁어내리며 나지막하게 답했다.
"이건, 그러니까... 그래. 네 말대로 손질이 맞아. 틀린걸 고쳐놓는거니까."
"확실히, 복수를 할만한 대상은 모두 제거 되었다."
무덤덤한 뫼르소의 목소리에는 딱히 감정이랄것은 없었지만, 다음으로 이어지는 말에서는 약간의 의아함이 섞여있었다.
"복수를 끝냈음에도 기억할 것이 아직도 남았는가"
—끼익.
뫼르소의 말에, 히스클리프의 칼을 든 손이 거칠게 흠집 하나를 새기고 미끄러지며 소음을 냈다. 배트 위에는 새로운 철자 R이 새겨져 있었다.
"야, 난 너만큼 기억력이 좋지는 못하거든 ...머리가 나빠서 말야. 그, 뭐냐, 복수를 끝낸 것도 기억 못할 수 있...으니까 적어두는 거라고."
히스클리프는 목소리를 키우며 무언가를 홧김에 말하려다, 적당히 얼버무리듯 말소리를 줄였다.
뫼르소는 히스클리프의 수상한 어조에도 말없이 그 철자들을 곁눈으로 훑어보다, 다시 앞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끝났다면, 지금부터라도 눈을 좀 붙이도록 하겠다."
"뭐야 낮잠 자게"
"네 무기손질 소음에 의해 잠이 방해되었다. 끝날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관계 유지 및 에너지 절약에 합리적이라 생각하여 그저 앉아있었을 뿐이다."
"...말을 되게 어렵게 하네. 그냥 시끄러워서 잠 못자겠으니까 참았다 이거 아냐 졸리면 졸리다 할 것이지."
"네가 하는 행동이 아주 무의미한 일은 아닌 것으로 느껴졌기에, 그에 대해 존중을 하기로 했다."
"그..........뭐"
또다시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대화에 언성이 높아지던 히스클리프가 먼저 당황한듯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뫼르소가 이전 황금가지 수복 때 저택에서 자신의 안위를 고려해 후퇴를 시계대가리에게 조언했었다는 말을 히스클리프도 전달받았었다. 그때는 뭔 개소리냐며 한 귀로 듣고 흘렸지만, 역시 실제로 비슷한 말을 다시 들으니 적응이 안되는 느낌에 히스클리프는 한 박자 느리게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일에 대해서 나와 관리자님을 포함한 다른 수감자들은 더 자세히 아는 것이 없다. 추출된 인격들을 살펴보았을 때, 히스클리프 너와 그 관련자들만이 알고 있는 어떠한 중요한 정보가 있는 것으로 추정은 되나, 나 역시 명령받은 바가 없기 때문에 그이상 추궁할 의도는 없다."
"...그, 뭐, 그래..."
뫼르소는 히스클리프에게 '존중'에 대한 의도를 줄줄이 나열하기 시작했으나, 히스클리프가 알아들은 것은 대충 '중요한 정보', '추궁하지 않음' 정도였다. 저택에서 몇번이고 말을 끊기는 바람에 뫼르소의 말이 좀 더 빨라진 것 같다는 감상을 속으로 하던 히스클리프는 잠시간의 침묵 후 답을 했다.
"그래도, 그, ...... 고맙다. 이것저것."
저택에서의 일들을 떠올리며, 둘이 있을때나 할 수 있을 말을 한참을 고민하던 히스클리프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대답이었다.
머리를 벅벅 긁던 히스클리프가 무안함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REMEMBER이라 적힌 배트를 어깨에 걸치고 슬쩍 앞자리의 남성을 곁눈질했다.
"....에이씨, 자네."
투덜거리며 복도로 히스클리프가 사라지고, 뫼르소의 눈썹이 조금 찌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