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콜사] 락커"자크 씨, 바지에 넣은 물건을 잠깐 정리해줄 수 있겠습니까 계속 제 엉덩이에 닿는군요."
"콜사님, 정말 민망한 이야기지만 그건 소생의 성기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렇, 군요."
큼큼, 콜사가 민망해하며 헛기침했다. 팔자크도 콜사에 닿지 않게 최대한 몸을 뒤로 빼다 얼마 안 가 락커 벽에 부딪혔다. 부딪히며 난 덜컹거리는 소리가 좁은 락커 안에 울렸다. 이 좁은 락커 안에 성인 남성 두 명이 갇히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 바로 콜사의 특별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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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을 위해 특별 수업을 해달라는 팔자크의 부탁으로 콜사가 오렌지 아카데미에 들어섰다. 팔자크의 수업을 듣는 대단한 행운아들에게 그 위대함을 말해주겠다고 다짐한 콜사가 미술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콜사는 특별 수업에 대해 제법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도 그럴것이 자크 씨가 부탁한 특별 수업이다. 팔자크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면서도 주제는 미술이라.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까. 콜사, 라고 하면 떠올리는 대표작 해루미의 체념에 관한 이야기를 할까. 그렇다면 해루미의 체념을 완성할 수 있었던 그때 그 이야기를 해주는 게 좋겠다. 자크 씨에게 마저 말하지 않은 사실이지만 자신을 믿고 특별 게스트로 불러준 자크 씨를 위해서라면야.
콜사가 준비한 미술 수업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팔자크가 콜사의 이야기 끝에 감동적이라며 울음을 터트리는 일이 있었지만 말이다. 콜사는 그런 팔자크의 반응에 뿌듯함을 느낀다. 역시 이 이야기를 하길 잘했다. 학생들도 자크 씨의 위대함에 감명 받은 얼굴이었다. 물론 학생들은 이야기 끝에 울음을 터트린 미술 선생님의 기행에 질겁한 것 뿐이지만. 어쨌든 콜사는 알 길이 없으니 그저 보람차기만 했다.
콜사는 밖에서 기다리기로 하며 미술실 문을 나섰다. 팔자크가 금방 정리하고 나오리라.
수업을 끝내는 종소리가 울린다. 미술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누가 잡을세라 우르르 교실을 나갔다. 텅 빈 미술실에서 팔자크가 아직도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감정을 다스렸다. 비록 감동에 젖어 운 거긴 하지만, 그런 이야기까지 들었는데 말끔한 얼굴로 봐야겠지 않겠는가. 팔자크가 미술 준비실에 놓여있는 락커로 향했다. 문에 달린 거울을 보기 위함이다. 밖에서 기다리던 콜사가 아직 나오지 않던 팔자크를 마중하러 들어왔다. 미술실 안엔 아무도 없었다. 미술 준비실 안에 계시는가 콜사는 미술 준비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콜사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한 번 더 울어 눈이 퉁퉁 부은 팔자크가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그의 손에 축축해진 볼이 느껴진다. 진정하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킨 그가 락커 문을 열었다. 학생들이 지난 수업 시간에 쓰고 아무렇게나 넣어둔 물감이 굴러떨어졌다. 팔자크의 머리를 퉁 치고 떨어진 물감은 바닥을 데구르르 굴러갔다. 마침 팔자크에게 다가오던 콜사가 그 물감을 미처 보지 못하고 밟고 팔자크 쪽으로 넘어졌다. 요란하게 큰 소리가 나며 열려있던 락커 안으로 콜사와 팔자크가 넘어졌다.
"괜찮으십니까, 콜사님"
팔자크가 자상한 목소리로 콜사를 챙긴다.
"네, 괜찮습니다. 자크 씨는 괜찮으십니까"
콜사가 아픈 머리를 문지르며 대답했다. 소생도 괜찮습니다만, 저희는 지금 갇힌 것 같군요. 그들이 넘어지듯 들어온 뒤 문 근처에 기대어져 있던 기다란 막대가 그 충격에 쓰러져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콜사가 등과 엉덩이로 문을 밀었다. 콜사의 힘이 부족했는지 덜컹거리기만 하고 열리지 않았다. 등으로 힘을 주어 밀던 콜사에 팔자크가 사뭇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의 등이 다칠까 봐 걱정되니 몸을 돌려 문을 열어보자고 제안했다. 둘은 몸을 돌리기 위해 애썼다. 한참을 끙끙대던 두 사람은 마침내 그 비좁은 공간에서 몸을 돌리는 것에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락커 안에 있던 물건들에 얻어맞긴 했지만 큰 성과였다. 둘은 숨을 고르고 상황을 해결하려 했다. 다만 몸을 비틀수록 맞닿은 옷이 구겨지고 마찰되던 신체 부위가 뜨거워지더니, 축축한 숨결과 서로의 숨소리만이 좁은 락커 안에 가득 차 분위기가 이상해지던 찰나였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첫머리로 돌아간다. 한동안 그 묵직함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콜사가 이 상황의 문제점을 깨달았다. 몸을 돌려봤자 위치가 그대로 라면 팔자크가 힘을 쓰기 어려운 위치일 테다. 난감한 기분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던 콜사가 제 얼굴을 간지럽히는 노란 머리카락에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으니 더 강하게 느껴지는 팔자크의 땀 냄새에 콜사는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콜사님"
팔자크가 콜사의 얼굴 옆으로 오른손으로 뻗으며 문을 열기 위해 자세를 바로 잡았다. 땀에 젖은 노란 머리카락이 콜사의 목덜미를 스쳤다. 뜨거운 숨이 목덜미에서 느껴져 그의 솜털이 쭈뼛 솓았다. 콜사가 말을 더듬었다. ㅈ,자크씨. 아까부터 의식하던 바지의 묵직함을 더 의식하게 된다.
그 긴장감을 느낀 팔자크가 오른팔을 천천히 거둬 눈앞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콜사님,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소생의 심장 소리에 집중해보세요. 그거 아십니까. 인간의 심장박동은 심신을 안정 시키는데 큰 도움을 준다는군요."
콜사가 천천히 팔자크의 가슴에 기댔다. 두근, 두근. 콜사는 정확하게 떨어지는 그 심장 소리에 스스로가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이제 다리 사이에 느껴지는 묵직함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남자로서 저 괴로움이 무엇인지 아는데도, 내가 불안에 떠니 달래주는 이 포용력... 역시 자크씨는.. 콜사가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팔자크에 대한 존경심을 키웠다.
한편, 팔자크는 필사적으로 아카데미 교가를 불렀다... 전통을 존중하며 강하고 크게 자라리 지식을 탐구하라 오렌지 아카데미... 언제나 이 교가를 부르면 팔자크는 제가 아카데미에서 가르친다는 자부심에 가득 차지만, 지금은 그 자부심이 아니라 마음을 안정 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노랑머리의 드래곤 조련사는 어렸을 때 가문에서 배운 호흡법을 떠올리며 자신을 가라앉히려 했다. 호감 있는 상대와의 밀착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만, 그는 콜사와의 처음을 이 비좁은 락커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몸을 돌릴 정도였으니 조금만 더 공간이 있었다면 완전히 나갈 수 있었을 텐데. 팔자크는 자신이 떨어질 수 있는 한 최대로 콜사와 떨어지려 했다.
그가 최대한 떨어지려 했어도 콜사는 이미 그의 가슴에 기대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물론, 팔자크의 팔자크는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경계심 없이 기대는 남자의 모습에 팔자크가 속으로 한숨 쉬었다. 믿어주는 건 고맙지만. 콜사의 짙은 녹색 머리에서 나는 물감 냄새가 팔자크의 후각을 자극했다. 헉, 숨을 들이킨 팔자크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다. 콜사의 그 모든 것이 그에게 자극적으로 다가온다. 심지어, 아까 해루미의 체념에 얽힌 이야기가 떠오르기 시작하며 이 눈앞의 녹색 머리 남자가 사랑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아니, 물론 콜사님은 언제나 사랑스러운 분이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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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주인을 찾아온 딥상어동이 주인의 냄새가 나는 락커 문을 향해 몸을 부딪혔다. 우당탕탕, 다시 한번 시끄러운 소리가 나며 락커 문을 닫고 있던 막대가 부서진다. 딥상어동의 몸무게를 받아낸 문이 너덜거리며 열렸다. 락커에 구겨져 있던 팔자크와 콜사가 굴러나왔다. 의기양양하게 자신을 내려보는 딥상어동에게 감사인사를 전한 콜사가 팔자크를 향해 몸을 돌렸다. 팔자크에 대한 존경심으로 눈을 반짝이던 그가 몸을 바짝 가까이 대며 말했다.
"자크 씨, 저는, 자크 씨에 비하면, 저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되는군요."
"그, 그렇군요. 콜사님. 그런데 일단 제 바지는 놔주지 않겠습니까..."
샛노란 머리카락에 언뜻 보이는 빨간 귓가에 콜사의 얼굴도 과사삭 벌레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제야 잊고 있던 묵직함을 생각해낸 - 심지어 지금도 만지고 있기까지 했다 - 콜사가 사과의 말을 주섬주섬 주워섬기며 팔자크의 몸에서 일어섰다. 어쩐지 손에 감촉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오늘 저녁 식사는 취소할까요"
"그,런가요."
"밖에서 먹는 대신 소생의 집에서 먹는 것이 좋겠군요."
특별수업 기념 외식을 취소하는 팔자크의 말에 콜사가 눈에 띄게 실망했다가 뒤이은 말에 화색을 띈다. 팔자크가 여전히 붉은 얼굴로 일어섰다. 오늘 밤은, 길겠군요. 똑같이 얼굴이 빨간 콜사가 예약해놓은 근사한 레스토랑을 머리 속에서 빠르게 지우며 대답했다. 네, 그렇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