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담이 사라졌다. 루시퍼는 아담이 늘 하는 떼쓰기라고 생각해 찾지 않았다. 호텔에 사는 이들은 루시퍼가 잘 데리고 있겠거니 싶어 호텔에 잘 안보여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도 아담을 찾는 이 없이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간다. 어쨌든 만년이나 살았으니, 지옥에서도 혼자 괜찮지 않겠는가 어린아이도 아니고. 물론 그는 어린아이가 아니었지만 제 후손들이 키워온 악의를 너무 우습게 봤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어 인류에게 심어진 악의 씨앗은 인류의 역사를 지나며 다양한 형태로 피어나 지옥에 죄인으로 처박혔다.
아담은 이제 천국이 아니라 지옥에 살고 있으니 그 사실을 알아야만 했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아담은 실종되고 몇달이 지나서야 발견됐다. 어느 죄인의 지하실에서였다.
발단은 루시퍼에게 진상된 황금 날개였다. 루시퍼는 황금 날개를 본 순간, 몇달째 보이지 않던 아담을 떠올렸다. 슬슬 찾으려고 했었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날개를 빼앗기고 다니는건지. 진상된 황금날개를 추적하다 보니 경매장으로 이어졌다. 경매장에 나온 엑소시스트 수장의 황금날개를 추적하기 위해 감정인을 심문했다.
찬란하게 빛나던 황금날개는 억지로 잡아 비틀었는지 깃털이 우수수 빠져있어 앙상한데다 날개 밑동도 어설프게 잘려 단면이 매끄럽지 못해 가치가 떨어졌다. 날개를 감정하는 양복 죄인의 앞에서 비루한 남자가 손을 비비며 기다리다 현금을 잔뜩 받아갔다. 그 죄인을 추적해 온 곳이 바로 이 지하실이다.
어쩌다 아담이 여기까지 흘러왔을까. 대답해줄 이는 아무도 없다. 눈 앞에 있는 아담을 아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지를 상실해 제 이름으로 부름에도 대답 못 하는 이를 그저 짐승처럼 길게 울음만 내는 이것을 아담이라고 할 수 있나. 찰리가 마른침을 삼켰다. 아담을 싫어하긴 했지만, 이건. 루시퍼가 찰리를 뒤로 물렸다.
"찰리, 내가 책임지고 돌보마."
"...응."
경험하지 못한 악의가 지옥의 공주를 할퀴었다. 어떻게, 이런. 죽일 순 있어도 살아있는 이를 이렇게까지, 어떻게 같은 사람을. 배기가 찰리의 허리를 단단하게 감쌌다. 문으로 돌아서면서 시선이 참상을 비스듬히 비켜 나간다. 복도로 나서자 머리와 몸이 분리된 죄인이 보였다. 죽음을 모욕한 죄인에게 너무 자비로운 처사였다. 배기가 자신도 모르게 성호를 그었다. 아담에게도 부디 자비가 베풀어지기를. 그가 죽길 바랬지만 이딴 식으로 되길 바라진 않았다.
지하실에 남은 루시퍼가 아담을 살폈다. 오물로 가득찬 구덩이를 뒹굴던 아담이 알아들을 수 없는 울음소리를 냈다. 루시퍼가 마법으로 아담을 건져냈다. 루시퍼가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겨 물을 아담에게 끼얹었다. 더러운 액체가 악취와 함께 뚝뚝 흘러내렸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허름한 이불로 물을 닦아냈다. 그나마 깨끗한 면적으로 팔을 제대로 봉합하지 않아 나오는 끈적이는 고름을 닦아낸다. 아담이 상처에 닿는 거친 천에 움찔거렸다.
"가자, 아담."
루시퍼가 닦아내던 이불 그대로 아담을 감싸 안았다. 아담의 짧은 팔이 어깨에 닿았다. 닦아냈어도 여전히 흐르는 고름이 루시퍼의 하얀 프록코트에 묻어난다. 루시퍼가 퍽 다정하게 아담의 등을 도닥였다.
"집에 돌아가자, 가서 어떻게든 해보자꾸나."
루시퍼의 말을 이해를 하긴 했을까. 아담이 고개를 루시퍼에게 기댔다.
***
아담의 입에서 침이 늘어졌다.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는 것에 질린 아담이 뭉툭한 팔과 다리를 버둥거리다 몸을 뒤집었다. 아담은 입으로 빨간 크레파스를 물었다. 하얀 도화지에 꾸물거리는 뱀과 사과, 남자를 그린다. 볼에 빨간 동그라미도 그려주면 완성이다. 아담은 뿌듯하게 도화지를 내려보았다. 그는 이 그림을 본 남자가 다정하게 쓰다듬어주며 달콤하고 푹신한 팬케이크를 주길 기대한다. 언제 올까. 아담이 닳아버린 크레파스를 퉤 뱉어내곤 털이 부드러운 곰인형 위에 올라탔다. 문은 보지도 않은 채였다. 문을 보지 않으려는 몸짓이 필사적이기까지 했다.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루시퍼와 약속을 했다.
아담은 루시퍼와의 약속에 따라 문에 가까이 가지 않았다. 사실, 문을 쳐다보기도 싫어했다. 그의 멍한 머리로도 이해할 수 있게 루시퍼가 친절하게 학습시킨 까닭이다. 끼잉 거리며 뭉툭한 팔로 문을 통통 치고 있던 아담을 집어 들어 밖으로 내보내고 문을 닫았다. 문밖에서 벅벅 긁어대는 소리에 루시퍼가 팔짱을 꼈다. 루시퍼는 진실로, 아담을 잘 대해주고 싶었다. 처음 발견한 그 순간의 충격 아무리 오만하고 멍청한 아담이라 해도 루시퍼마저 동정심이 들 정도였으니.
그렇지만 눈에 거슬리는 게 많았다. 섬세한 예술가는 그런 사소한 것도 다듬어줘야 직성이 풀렸다.
아무리 정신이 나갔어도 지켜야 할 건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10, 9, 8... 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점점 잦아든다. 7, 6, 5... 크게 쾅 소리가 났다. 4, 3, 2... 조용하다. 루시퍼가 마지막 1을 세고 문을 열었다. 문 앞을 막은 무거운 덩어리가 질질 밀려났다. 아담이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루시퍼를 올려보았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눈물과 콧물에 섞여 황금색 범벅된 얼굴이 더러웠다. 아담이 루시퍼에게 손을 들어 올리며 안아달라고 재촉했다. 루시퍼가 손수건으로 얼굴을 대충 닦아냈다. 순종적으로 눈을 감으며 루시퍼의 손길을 받아내던 아담이 안으로 들어가자며 몸을 문으로 돌렸다.
"아담, 앞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을 거니."
그런 아담을 안아 들며 루시퍼가 속삭였다. 아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밖엔 아직 위험한 게 많단다. 좀 더 나아지면, 나와 함께 나가자꾸나. 아담이 죽을 힘을 다해 루시퍼에게 매달렸다. 방에 들어오고 나서도 아담은 루시퍼에게서 한참을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손이나 다리만 있었다면 꽉 붙잡아 옷이 잔뜩 구겨졌을터였다. 루시퍼가 아담을 손쉽게 침대에 내려놓았다. 아직 아물지 않아 황금피가 흘러내리는 이마에 가볍게 뽀뽀해 피가 멎게 한다. 루시퍼가 다정하게 아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잘 자렴, 아담."
아담이 떠나가는 루시퍼를 잡으려 팔을 뻗었다. 팔이 허공을 헤맸다. 버둥대며 일어나 앉은 아담이 멀어져가는 루시퍼를 애절하게 본다. 아담이 침대 가드를 오르다 말고 몸을 부딪혔다. 침대 가드가 흔들렸다. 큰소리에 루시퍼가 뒤돌아봤다. 무너져내린 가드 사이에서 아담이 허벅지로 바닥을 절박하게 밀어내며 루시퍼에게 기어 왔다. 부서진 가드에 다리가 찔려 생긴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아담이 기어 온 길이 황금길로 바뀐다. 아담이 루시퍼의 다리를 간절하게 껴안았다.
"ㄹ,루시,퍼어."
아담이 떠듬떠듬 루시퍼를 끝없이 되뇌었다. 여기 오고 나서 처음으로 말하는 단어였다. 아담이 짐승처럼 울부짖는 소리 외에 발하는 인간적인 소리에 루시퍼가 그를 발로 차려다 멈췄다. 루시퍼가 잠깐 멈춘 사이 아담이 루시퍼의 발에 얼굴을 문질렀다. 황금 눈물이 발을 적신다. 아담, 너는. 루시퍼가 한숨을 쉬며 아담을 안아 들었다.
***
"나 왔다 아담 착한 아이로 있었나"
루시퍼를 기다리던 지친 아담이 곰 인형 위에서 자고 있었다. 아담을 침대로 옮겨 주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던 루시퍼의 발에 종이와 크레파스가 걸린다. 루시퍼가 아담이 그려놓은 그림을 주워들었다. 빨간 크레파스로 삐뚤삐뚤하게 그려진 그림을 짐짓 사랑스럽게 본 루시퍼가 벽에 그림을 붙였다. 오직 아담이 그린 그림으로만 벽이 하나 가득 찼다. 처음엔 선도 못 그리다 점점 원이나 삼각형 같은 도형을 그리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루시퍼를 그려냈다. 그날은 팬케이크 파티였다 아담은 기뻐하며 접시에 고개를 처박고 먹어 치웠다. 운동을 하지 못하니-밤의 운동을 즐기기엔 루시퍼도 양심이 쥐똥만큼 있었다. 조금만 더 호전되고 나면 즐기리라. 루시퍼는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식단 관리로 체중을 조절해야하는 아담이라 팬케이크를 드물게 먹였다.
루시퍼는 자신이 이루어낸 성과에 고무됐다
이제 아담은 점점 나아질 것이다. 아직도 더듬거리며 말하는 루시퍼라는 단어도 이제 점점 나아질 것이다. 다른 단어들도 말할 수 있을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