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몇잔 들어가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기 마련이다. 천사가 된 최초의 인간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거나하게 취해 바에 머리를 박은 아담을 엔젤이 놀려댔다. 허스크도 거들었고. 맨정신이라면 하지 않을 이야기가 툭툭 튀어나왔더랬다. 엔젤은 제 착한 동생이 어딨는지 궁금했고, 아담은 전 천사였지. 그래서 가족 이야기가 나왔던가. 가족, 이라는 단어에 아담이 반쯤 감긴 눈을 크게 떴다.
"남자 새끼 셋을 키웠지."
술에 취해 흐물거리던 아담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구부정하던 허리가 곧게 세워지고 탁한 금빛 눈에 의지가 깃든다.
"참으로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힘겹게 삶을 이어가도 모든 것이 충만한 시절이었고."
남자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먼 옛날을 바라보는 시선이 허공에 맴돌았다. 잔을 만지는 손길은 추억 속 아이들을 만지듯 조심스럽다. 엔젤과 허스크가 숨을 죽였다. 평소와 다르게 거룩해 보이던 남자가 말을 이었다. 행복했었지.
"허나, 하나는 도망가고 하나는 떠나고···."
"...."
"그리하여, 하나만 남았지."
여상하게 이어지는 말에 엔젤이 숨을 들이켰다. 아담이 말을 얼버무려도 모두가 아는 이야기다. 아무렴, 그 유명한 친족 살해 이야기는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 말을 마친 남자가 눈을 감자 고여있던 금빛 물줄기가 뺨을 타고 흘렀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인 눈은 금빛이 아니라 갈색으로 보여···, 엔젤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거두었다. 이건 값싼 동정이야. 허스크가 그런 엔젤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항상 시끄럽고 경박하던 남자는 평소와 다르게 지쳐 보였다. 모든 것을 불태우고 남은 재처럼 회색빛으로 물들었던 남자의 곧은 허리가 이내 천천히 무너졌다. 폐허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기둥이 무너지는 것처럼, 아담은 그렇게 무너졌다. 떠들썩하던 허스크의 바에 소음이 사라지고 주정뱅이의 헛소리만 들렸다.
"잘 마시고 있나 주정뱅이들 아담이 폐를 끼치진 않았나"
루시퍼가 유쾌하게 들어오다 무덤같이 가라앉은 분위기에 멈칫했다. 아담과 다르게 루시퍼는 분위기를 볼 줄 알았다. 따라서, 루시퍼는 아담을 패는 대신 무슨 일이 있었느냐 허스크에게 귓속말했다. 아담을 보며 착잡해 하는 엔젤보단 떫은 표정으로 잔을 닦는 - 어쩌면 닦는 시늉인 - 허스크가 더 잘 알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허스크에게 전말을 들은 루시퍼가 상냥하게 아담을 흔들었다.
"아담, 집으로 돌아가자. 돌아가면 네가 좋아하는 갈비를 해주마."
상냥한 속삭임에 아담이 눈을 뜨지도 못한 채 배시시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빠 루시퍼가 굳었다. 엔젤이 무심코 박수를 치고, 허스크가 한숨 쉬었다. 이 곳이 사랑하는 딸이 운영하는 호텔이라는 걸 기억하고 뭘 하든 돌아가서 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엔젤과 단둘이 술을 마실 때 지나가는 말로 루시퍼의 사타구니를 궁금해하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알고 싶지 않았다. 아직도 굳어있는 루시퍼의 바지춤이 모자이크로 검열되었다. 모자이크는 크고, 크고, 컸다. 그냥 컸다.
루시퍼가 굳은 얼굴로 아담을 안아 들었다. 하필 그 바지춤에 닿은 아담의 엉덩이까지 모자이크로 검열되었다. 아, 제발. 허스크가 천장을 보았다.
"술값은 얼만가"
"받지 않겠습니다. 그냥 가십쇼···."
허스크의 말이 끝나자마자 빛무리에 휩싸여 루시퍼가 사라졌다. 걱정해서 괜히 손해 본 기분이라며, 독한 걸로 달라는 엔젤의 투덜거림에 허스크가 말없이 술을 말았다. 다음부턴 아담과 술을 마시지 않으리라. 잔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이미 많이 마셨지만 더 마셔야겠다. 그 모자이크를 잊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