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은 무엇인가 지옥에도 눈은 오는가 수없이 많은 학자들이 지옥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했다. 이승에 사는 이들에게 지옥에 대해 가장 유명한 것을 꼽자면 단테 알리기에리가 묘사한 지옥일테다. 그래서 지옥에도 눈은 오냐고 물론 단테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담은 대답할 수 있다 왜냐 겪었으니까 지옥엔, 눈이 온다
아담이 호텔에 메이드로 취직하기 전까지 아주 많은 일이 있었다. 결국 니프티를 선배 메이드로 받아들인 아담은 아주 성실하게 메이드 일을 해내고 있었다. 업무를 위해 아예 루시퍼의 성에서 호텔로 옮겨와 지낼 정도로 말이다. 방에 들어차는 추운 공기에 아담이 욕설을 중얼거리며 눈을 떴다. 이래서 지옥이란 아담이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려 덮었다. 해즈빈 호텔의 명예를 위해 덧붙이자면 찰리는 아담에게도 모든 것이 갖추어진 근사한 방을 주었다. 그냥 아담이 어젯밤 창문을 닫지 않았기에 바람이 들어오는 것이다. 이불을 덮어써도 느껴지는 추위에 아담이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하늘에서 새하얀 눈이 떨어진다… 황금빛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하얀 눈에 뒤덮인 도시는 제법 괜찮았다. 피며, 오물이며, 욕설이며 모든 더러운 것이 눈으로 뒤덮인 오만의 고리. 아담은 순결해 보일 정도로 하얀 도시에서 천국을 떠올리다 얼굴을 사정없이 구겼다. 내가 미쳤지. 지옥 따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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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담은 니프티 선배와 함께 눈덩이를 뭉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친애하는 공주님께서 신뢰훈련으로 눈싸움을 하자고 제안해서이다. 전혀 아프지 않은 눈덩이로 싸우며 기르는 협동심과 어쩌고저쩌고. 분명 신나게 설명하는 찰리의 이야기를 들었을텐데 기억이 안난다. 아담이 기계적으로 눈를 뭉쳤다. 그 옆에서 니프티가 신나게 눈덩이를 굴렸다. 일반적인 눈덩이보다 한참 큰 눈덩이를 배기가 미심쩍게 보다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집어들었다.
목도리를 단단히 맨 니프티가 메이드는 무조건 같은 팀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탓에 팀을 짜기가 골치 아팠다. 니프티의 말에 아담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니 더더욱. 그래서 찰리는 결단을 내렸다. 찰리팀과 배기팀.
아담과 곧 죽어도 같은 팀을 하긴 싫지만 찰리와 같은 팀을 하고 싶었는데. 그러나 사랑스러운 찰리가 팀장을 부탁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배기는 가위를 냈던 손을 원망스럽게 보았다. 찰리에게 지는 건 괜찮지만 아담과 같은 팀이 되는 건 힘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최선을 다한다… 아담을 어떻게든 협조하게 만들리.
그런데 웬걸 니프티가 눈덩이를 뭉치자 툴툴대던 아담도 눈을 뭉치기 시작했다. 배기는 니프티에 대한 존경심을 10 정도 키웠다. 메이드들이 무한히 만들어내는 눈덩이에 힘입어 배기는 엔젤을 탈락시켰다. 니프티가 만든 좀 많이 큰 눈덩이 - 눈폭탄은 반칙이잖아 - 는 배기에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주위를 날카롭게 살피던 배기가 아담이 만든 눈덩이를 던졌다. 하얀 눈 사이에서 검정 일색인 허스크는 쉬운 표적이었다. 눈덩이는 아쉽게도 허스크의 팔을 스쳐 지나갔다. 배기가 혀를 차며 재빠르게 다른 눈덩이를 잡았다. 눈덩이를 뭉치기 위해 허리를 굽히던 허스크가 비명을 지르며 팔을 움켜잡았다.
무슨 일이지. 설마 아담이 눈덩이에 돌이라도 넣었나 배기는 황급히 눈을 헤쳤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담을 돌아보자 아담이 지금 자길 의심하는 거냐며 고함을 질렀다. 점점 소란스러워지자 찰리가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달려온 찰리는 억울해하는 아담의 이야기를 흘려들으며 아직도 웅크리고 있는 허스크를 살펴보았다. 눈덩이를 스친 팔은 미약하게 화상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화상 찰리가 아담을 돌아보았다. 함께 허스크의 상처를 보던 아담이 입을 딱 다물고 눈을 피했다.
“아담이 눈덩이를 뭉치다 신성력이 흘러들어갔나봐.”
배기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거 열심히 하다 보면 신성력이 들어갈 수도 있지”
“설마, 저기 있는 눈덩이들 전부 아담이 만든거야”
“응”
발랄하게 대답하는 니프티를 끝으로 눈싸움은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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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뎃 손가락을 들어올리며 방으로 뛰어간 아담을 걱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찰리는 일단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해즈빈 호텔 상식 : 아담의 일은 루시퍼에게. 모두 기억하자.
찰리의 전화에 루시퍼는 금방 도착했다. 찰리에게서 신뢰훈련에 있었던 일을 듣고 한참 웃던 그는 따가운 눈총에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담 보러가야지, 흠흠.
아담이 머무는 방문을 루시퍼가 두드렸다. 아담은 대답이 없었다. 루시퍼는 늘 들고다니는 여벌 열쇠로 자연스레 문을 열었다. 아담은 내 것. 그럼 아담의 방도 내 방.
방 안은 어두웠다. 루시퍼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하얀 로브를 주워 의자에 올렸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도 침대 위 이불 뭉치는 미동도 없었다. 또 무엇때문에 심통났을까. 이미 전후사정을 알지만 아담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여전히 이불을 둘러쓴 아담이 루시퍼에게만 들리게 속삭였다. 있잖냐, 루시퍼…
지옥에서 천국을 겹쳐봤다면 정말 끔찍했겠군. 루시퍼가 짧게 감상평을 남겼다. 어느새 이불에서 두터운 손이 나와 루시퍼의 옷자락을 꽉 잡고 있었다. 루시퍼가 아담의 손등을 살살 만지작거렸다.
“아담, 나에게 좋은 방법이 있다만.”
“뭔데.”
“눈이 오는 동안 네 눈이 떠지지 않게 만들어주마.”
“뭐”
뜻을 이해하지 못한 아담이 멍청하게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이런 뜻이란다, 아담. 루시퍼가 아담의 눈가에 가볍게 키스했다. 키스받은 얼굴이 서서히 빨개지기 시작했다. 고함이 터지기 전에 얼른 입을 막아버리자. 루시퍼가 문을 마법으로 잠그며 수염이 난 턱을 꽉 잡았다. 아담이 소리치기 위해 입을 벌리는 순간 루시퍼가 깊게 입맞췄다.
그래서 지옥에도 눈이 오냐고 그렇다. 루시퍼가 자신이 한 말 - 눈이 오는 동안 눈을 못뜨게 만들어주마.- 을지키는 동안에도 눈은 펑펑내렸다. 그리하여 아담은 원래도 지옥이 싫었지만, 지옥에서 내리는 눈은 더 싫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