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휘핑크림주말 오후, 루시퍼도 낮잠을 즐기러 가 아담은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났다. 흠, 배고프군. 아담은 누워있던 소파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이동했다. 나초나 다른 과자 같은 것이 있을 터였다. 주말 오후에 소파에 나태하게 누워 먹는 간식은 특별한 맛이 있었다.
아담은 부엌을 뒤졌다. 루시퍼의 부엌에 남은 재료는 밀가루와 달걀, 대충 쿠키 굽는 재료 밖에 남지 않았다. 아무리 뒤져봐도 갈비나 그외 음식은 보이지 않아 아담은 한숨 쉬었다. 어쩔 수 없지. 아담은 소매를 걷어 붙였다. 새끼, 오늘은 내가 개쩌는 쿠키를 만들어서 먹여주마. 매번 팬케이크만 먹으면 존나 질린다고. 내 특제 쿠키를 영광으로 알아라. 쿠키를 굽기 전에 앞서 아담은 일단 가장 중요한 일을 하기로 했다. : 레시피 검색.
1. 실온에 버터 두기.
아담은 냉장고에서 버터를 꺼내 노려보았다. 그래봤자 녹진 않겠다만 어쨌든 노려봤다. 1초 간격으로 버터를 누르던 아담은 버터가 녹아서가 아니라 힘으로 파이자 그냥 보울에 넣었다. 힘을 주어 주걱을 꾹꾹 눌러 버터를 풀어준 아담은 그다음 과정을 보았다.
2. 설탕을 2번에 나눠 넣어 버터와 잘 섞어주기.
한꺼번에 넣어도 상관없다는 말에 아담은 설탕 봉지를 와르르 쏟았다. 목표로 했던 양보다 많이 쏟은 아담은 작은 티스푼으로 설탕을 슬쩍 떠내려다 포기했다. 달면 좋지 뭐. 아담은 티스푼을 뒤로 던져버리며 중얼거렸다. 그 우울증 새끼도 단거 먹으면 좋아지겠지. 설탕이 서걱거리는 소리가 거의 없어질 때까지 부지런히 저어주라니... 아담은 주걱으로 열심히 저었다. 설탕과 버터가 섞인 반죽이 튀어 벽에 붙었다. 반쯤 사라진 내용물을 내버려 두고 아담이 다음 과정을 살폈다.
3. 실온에 놔둔 달걀을 풀어 달걀물을 만들어 버터와 설탕 반죽에 넣고 섞어주기.
오. 아담은 짧게 탄성을 터트리며 달걀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진작 꺼냈어야 했는데. 달걀을 노려보지만 차가운 달걀이 미지근해질리는 없다. 아담은 적당하게 물을 뎁혀 달걀을 넣었다. 이렇게 하면 미지근해진다지 아담은 달걀이 미지근해질 때까지 기다리며 다음 과정을 미리 살폈다. 준비하기 전에 미리 살폈다면 좋았을텐데. 다행히 뭘 더 꺼내 실온에 둬야 하는 건 없었다. 아담은 달걀을 두고 모두에게 언제나 유용한 하얀 가루를 꺼냈다. 그래, 박력분, 소금, 베이킹 파우더 말이다 무엇을 생각했는가 먹으면 행복해지는 하얀가루는 죄인들이나 먹으라지. 아담은 그 하얀가루를 떠올리며 구역질하는 시늉을 했다. 하여튼 죄인들이란.
4. 가루류를 체에 곱게 내려 준비하기.
박력분과 베이킹 파우더를 체에 쳤다. 고운 가루가 눈처럼 보울에 떨어졌다. 아담은 떨어지는 가루를 보며 잠시 그 추운 겨울을 떠올렸다. 그냥, 파랗게 얼어가는 그 작은 손이 만지는 하얀 벌판이. 쓰애끼, 배고파 죽겠는데 괜히 감성적이 된담. 그 우울증 새끼에게서 우울이 옮은게 틀림없었다. 아담은 뭉친 가루가 다 떨어질 때까지 흔들었다. 점점 줄어가는 가루 뭉치에서 아담의 상념도 떨어진다. 자, 이제 미지근해진 달걀을 깨서 달걀물을 만들자. 소금도 넣고, 가루도 넣어서 개쩌는 쿠키를 만들어 보자고.
5. 체 친 가루를 버터 반죽에 넣어 주걱으로 젓기.
주걱을 11자로 돌리며 열심히 젓는다. 하얀가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젓던 아담은 둥그런 덩어리가 되자 주걱을 뒤로 던졌다. 부엌 타일에 맞은 주걱이 퉁퉁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아담은 랩을 꺼내 덩어리진 반죽을 감쌌다.
6. 반죽을 한덩어리로 뭉쳐 냉장고에 넣어 휴지시키기.
이제 냉장고에 넣어 20~30분 정도 휴지하면 된다. 휴, 내가 이정도로 너한테 신경쓴다. 아담은 엉망이 된 부엌을 무시하며 냉장고에 넣었다. 냉장고의 냉기가 가혹했던 그 겨울을 불러 일으킨다. 루시퍼가 사과를 주지 않았더라면 겪지 않았을 겨울이다. 아담은 냉장고 문에 머리를 처박았다. 이렇게 해서라도 루시퍼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 하는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다. 배에서 나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아담이 냉장고에서 반죽을 꺼냈다.
7. 냉장고에서 꺼낸 반죽을 5~6mm 두께로 균일하게 밀기.
밀대로 반죽을 밀자. 아담이 잡념을 밀대에 실어 누르자 반죽은 적당한 두께가 아니라 아주 얇게 밀렸다. 아담은 다시 뭉쳐 밀대로 밀었다. 힘 조절을 잘못했는지 몇번이나 아주 얇게 변한 반죽을 보며 아담은 루시퍼를 생각하며 반죽을 상판에 패대기쳤다. 드디어 적당하게 펴졌다. 아담은 뿌듯하게 웃으며 쿠키 틀을 꺼냈다.
8. 원하는 모양의 쿠키 틀을 사용해 찍기.
아, 이새끼 사과 모양 틀 밖에 없어. 아담은 그냥 갈기갈기 찢어 쿠키를 구울까 하다 지금까지 한 모든 것이 아까워 아담은 사과 모양 틀을 반죽에 찍었다. 사과 하나에 이브 하나, 사과 둘에 이브 둘, 사과 셋에 루시퍼 새끼 하나... 아담은 욕설을 중얼거리며 쿠키를 찍어 쿠키팬에 올렸다.
9. 170도로 예열된 오븐에서 13분 정도 구워주기.
길었다. 아담은 자신이 기특했다. 이 모든 거지 같은 과정이 드디어 끝났다 드디어 오븐에 쿠키팬을 넣은 아담이 시간을 맞췄다. 존나 내가 이렇게 천재다. 아담은 스스로를 칭찬하며 쿠키가 구워지길 기다렸다.
땡, 소리가 났다. 아담은 쿠키가 완성이 되자 덥석 쿠키 팬을 잡았다가 비명을 지르며 놓았다. 성을 강타하는 찢어지는 비명소리에 루시퍼가 잠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그대로 달려왔다. 아담은 화상입은 손을 후후 불며 호들갑을 떨다 루시퍼를 보고 거들먹거렸다.
"야, 내가 너를 위해 친히 쿠키를 구웠다. 감사히 여기도록."
달콤한 낮잠을 방해받아 인상을 찌푸리던 루시퍼는 그 성의를 가상히 보아 아담을 봐주기로 했다. 한번쯤은 봐줄 수 있지. 아담이 주방 장갑을 끼고 쿠키 팬을 꺼내 상판에 두었다. 쿠키를 접시에 둔 아담이 휘핑크림으로 마무리했다. 단 쿠키에는 단 휘핑크림이지. 달콤한 오후의 간식시간이다.
아담은 접시를 들어올리다 화상입은 손에 닿여 그만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요란한 소리가 나며 접시가 깨졌다. 휘핑크림이 가득 올라간 쿠키가 바닥에 떨어졌다. 짜증이 울컥 난 루시퍼가 아담의 목을 잡고 아래로 처박았다. 처박힌 왼 볼에 찐득한 휘핑크림이 묻었다. 아담이 일어서려 바닥에 둔 두 손에 힘을 주자 루시퍼가 손아귀를 조였다.
"아담, 너는 왜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니."
루시퍼는 지친 표정으로 아담을 보았다. 낮잠시간 전에, 분명히 말했을텐데.
"내가, 잠시, 가만히, 있으라 한 말이 너에게 그리도 어려웠니"
아담은 변명하고자 입을 열었다. 목에서 손을 놓은 루시퍼가 아담의 머리카락을 잡고 바닥에 문질렀다. 열린 입 사이로 도자기 조각이 박힌 휘핑크림이 들어온다. 아담은 갑작스레 입에 가득 찬 휘핑크림에 숨이 막혀 콜록거렸다. 휘핑크림이 섞인 조각이 입 안을 사정없이 찔렀다. 입가에 질척하게 묻은 하얀 크림이 피에 섞여 분홍색으로 변한다.
"아담, 네가 어지른 건 치워야겠지 않겠니."
아담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손길이 무심했다. 루시퍼는 머리칼에서 손을 놓았다. 눈가가 붉어진 아담이 연신 기침을 했다. 치,워야지. 씽크대에서 행주를 가져오고자 몸을 일으키는 아담을 루시퍼가 발로 걷어찼다. 아담이 꼴사납게 앞으로 넘어진다. 크림과 접시 조각이 사정없이 얼굴과 몸을 스쳐 더럽힌다. 스스로 치워야지. 아담. 아이를 어르듯이 부드럽게 타이르는 목소리와는 다르게 등을 밟는 발길은 매섭기만 하다. 아담은 천천히 혀로 바닥을 핥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