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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딴건 내가 써야돼 9
    몹레 1731

    9최근 그 애와 함께 살게 되면서 바뀐 생활 패턴이 몇 가지 있다.

    일단은 식생활. 그가 거주하고 있는 멘션의 부엌이 일반 주택의 그것보다 썩 좋지 못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단 그는 요리를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게다가 세상의 기준은 정상성을 띄는 4인 가구에 맞춰져 있어서 식재료를 사더라도 유통기간 내에 다 먹는 일이 드물었다. 일하느라 요리하는 게 귀찮기도 했고. 가끔 집밥이 생각나서 사다놓은 야채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곤죽이 되거나 죄다 물러져서 음식물 쓰레기가 되었다. 그렇다보니 레이겐은 보통 저녁을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오는 쪽이었다.

    시게오와 함께 살게 되어서도 이 식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집에 고등학생이 한 명 생기긴 했어도 레이겐은 여전히 회사를 다녀야 했고, 요리를 하는게 귀찮았다. 점심은 학교에서 알아서 해결하는 듯 싶었으니 저녁만 같이 해결하면 되겠구나, 하고 레이겐은 안일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성장기 청소년을 데리고 일주일 내내 저녁을 라멘과 편의점 도시락으로 떼우고 나자, 문득 인스턴트 음식을 사 먹이는게 어른의 도리에 어긋나는 일 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자신이 요리에 흥미가 없었던 만큼, 시게오도 딱히 요리에 흥미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사용인을 부리는 저택에 살던 도련님이 요리를 할 일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결국 시게오가 이 집에서 반 년 정도 머무르는 동안 저녁은 내가 해야겠구나, 레이겐은 귀찮은 일이 늘었다고 생각했다.

    "...이게 뭔가요"

    접시 내려 놓는 소리에 시게오는 탁상에서 풀던 문제집에서 고개를 들고서는 물었다. "맨날 사 먹을 수는 없으니까." 그말에 시게오는 납득한 듯 아닌 듯 고개를 살짝 갸우뚱 기울였다. 그도 그럴 것이 퇴근길에 산 '당신도 할 수 있다 가정 백반 마스터' 책을 들춰가며 만든 음식들은 레시피를 정확히 지켰음에도 어딘가 어설픈 면이 있었다. 약간 탄 내 나는 감자조림과, 어딘가 어설프게 간이 된 오이무침. 그리고 터무니 없이 많이 끓여버린 된장국. 요리 초보가 간과하기 쉬운 실수 중 하나는 양 조절이 아닐까. 그게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대충 봐도 냄비 한가득 끓였으니 족히 일주일은 매일 매일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어쨌든 저녁 먹자는 말에 시게오는 풀고 있던 영어 예제 풀이집을 치우고서는 얌전히 식기와 물컵 놓는 일을 도왔다. 그래도 쌀밥은 잘 됐다. 레이겐이 도쿄로 상경할 때 엄마가 억지로 떠넘기듯 쥐여준 애물단지 밥솥이 이제서야 빛을 발하게 될 줄은 몰랐음으로 고슬고슬한 밥을 푸면서 레이겐은 속으로 약간 감탄했다.

    썩 대단하지 않은 음식들이어도 시게오는 불평 없이 잘 먹었다. 밥그릇이 비워질 때 마다 소년의 부드러운 뺨이 복스럽게 부푸는게 보기 썩 좋았다. 혼자 밥을 해 먹었더라면 역시 며칠 뒤에 그만 뒀을 텐데 같이 먹는 이가 있으니 요리 하는 일도 나쁘지는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 내일 나가실 때 이거 가지고 가세요. 설거지를 다 한 뒤 쉬고 있는데, 시게오가 다가와서 불쑥 레이겐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이게 뭔데"

    "내일 필요하실지도 몰라서요."

    손바닥만한 9v건전지가 하나 놓여졌다. 레이겐은 그냥 웃고 말았다. 그는 그것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서는 담배를 피러 베란다 밖으로 나갔고, 시게오는 그것을 빤히 바라보다 풀던 문제집에 집중했다.

    한동안 문제를 풀던 시게오를 옆을 지나가던 레이겐이 틀린 부분에 대해서 손으로 짚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이 예제문에서는 부정문을 강조하기 때문에 도치법을 여기서 썼잖아. 그래서 일반 동사를 쓸 때는... 그의 말에 시게오는 레이겐의 설명을 차분하게 받아적고서는 문제와 비교를 하며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생각보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정신력을 많이 소모하는 일이다. 이해하는 것과 남을 이해 시키는 것은 다르다. 레이겐은 시게오를 가르치며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약간 존경심을 느꼈다. 시게오는 머리가 나쁜 편은 절대 아닌데, 뭐랄까, 그냥 남들과 다르다고 해야 할까. 보통 사람들이 다 아는 상식이 조금 부족하다고 해야할지. 하긴 생각해보면 그 애는 평범한 집에서 자란 적도 없고 평범한 능력을 가진 인간도 아니니까. 레이겐은 영어 문장을 붙잡고 끙끙거리는 시게오의 곧은 턱선을 보며 생각했다.

    원래 고등학교 3학년, 더군다나 2학기 전학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역시 유명한 가문의 도련님이 원하는 일이라면 다 할 수 있는게 아닐까. 카게야마 가문에서 어떻게든 도쿄 내의 사립 학교에 연이 닿아서 그 곳을 시게오는 다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시게오의 성적은 그리 나쁘지도 썩 좋은 편도 아니여서 상담 끝에 도쿄 인근의 적당한 중위권 대학으로 목표를 잡았다. 목표 학과는 고민 끝에 심리학으로 정했다. 어차피 졸업하면 신사의 일을 이어 받아서 할 거니까 취직이 잘 되는 인기 있는 학과는 필요하지 않다. 정말 그 애가 좀 더 깊이 배우고 싶은 과를 고르면 된다. 그것 만큼은 조금 부럽다고, 레이겐은 생각했다.

    사람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서요.

    ​보통 사람들은 다들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카게야마 시게오는 그렇게 말했다. 레이겐 아라타카에게 카게야마 시게오는 함께 지낸지 반 년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고 어린 아이일 뿐이다. 그것도 무척 예전에 만나서 이제는 거의 다 닳은 지우개처럼 희미해져 가는 묘한 추억일 뿐이다. 결혼이니, 뭐니 해도 썩 와닿지 않지만, 그럼에도.

    "다 풀었어요."

    시게오의 새까만 동공이 레이겐을 응시했다. 멘션의 백열등 아래로 살짝 그늘진 그 동공에는 조금 피로해보이는 30대 초반의 남성이 비춰지고 있다. 그래, 그 애의 눈을 보고 있으면 그 애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고 싶은... 그런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게 사실은 진짜 초능력이 아닐까. 레이겐은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날 언제나 같이 회사에 출근했더니 같이 입사한 동기가 레이겐을 보며 웃었다.

    "요즘 표정 좋네. 연애중"

    "안해."

    "그런 거 치곤 빤질빤질해서 밥 잘 얻어먹고 다니는 것 같은데."

    여자랑 동거해 그는 그렇게 말하며 양복을 차려입은 레이겐의 옆구리를 가볍게 쳤다. 레이겐은 본의 아니게 같이 살고 있는 어린 신랑의 존재를 떠올리며 정색했다. 연애같은 거 안한다니까. 레이겐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탕비실의 커피를 컵에 따랐다. 괜히 캥길 것도 없는데 커피의 뒷맛이 썼다.

    "오늘 오랜만에 신주쿠에 놀러 갈래"

    동기는 그렇게 말하며 제 한손으로 홀짝 마시는 시늉을 했다. 한잔도 하고. 레이겐은 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잠시 생각하다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먼저 집에 가면 시게오의 모의고사를 봐주기로 약속했다.

    "역시 안되겠네. 선약이 있어서."

    "뭐야, 여자 있는 거 맞잖아."

    레이겐은 그 말을 무시한 채 탕비실 밖으로 나왔다. 이제 날씨는 조금씩 시원해 지고 있는 중이다.

    언제까지나 저물지 않을 것 같은 주황빛 태양이 조금씩 짧아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레이겐은 한 번 더 시계를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입시까지 얼마나 남은거지 몇달은 되나. 그 말은 그 애와 함께 할 시간도 그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입시가 끝나면 그 애는 대학에 갈 테고, 대학을 졸업하면 다시 그 지겨운 시골에 쳐박혀서 늙은 노인들의 투정을 들어주고 영혼을 제령하는 고루한 일을 할 테지. 뭐, 사실 그게 고루한 일은 절대 아니지만.

    어린 나는 한 때 그런 것을 동경했다.

    그럼에도 나는 속할 수 없는 그들의 세계가 미웠다.

    그래도 네 곁에 있으면 나는 조금 더 특별 해 진 것 같아서...

    레이겐은 손에 쥐고 있던 종이컵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졌다. 종이컵 안에 남은 설탕 섞인 커피가 쓰레기통 안에 촥 뿌려졌다.



    퇴근 하고 멘션의 계단을 올라오는데 복도에서 카레 냄새가 진동을 했다. 아직 주황빛 노을이 은은하게 비단처럼 깔려 있는 멘션의 비좁은 복도를 걸으며 내다 본 저녁 하늘은 사람이 잔뜩 모여사는 대도시 답게 까만 전선이 거미줄처럼 엉켜 있었다. 레이겐은 제 집 문 앞에 붙어 있는 특급 배달 홍보지와 인근에 새로 생긴 마트 세일 전단지를 떼어낸 뒤 바지 호주머니에 손을 푹 넣어 열쇠를 쥐었다. 코 끝에 맴도는 카레 냄새 때문에 배가 고팠다. 누구 집에서 카레를 하는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현관문이 열렸다.

    "오셨어요"

    "으응."

    문을 열어준 시게오는 오래된 앞치마를 입은 채 한 손에는 국자를 들고 서 있었다. 국자에는 걸죽한 카레가 묻은 채였고, 문을 열어주느라 살짝 숙인 얼굴의 까만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었다. 저녁 노을 빛이 강해서, 그 애의 머리카락은 새까만 색인데도 어쩐지 주황색 처럼 보이기도 했다. 레이겐은 고맙다, 작게 인사를 덧붙이고서는 정장 구두를 벗었고 시게오는 주방으로 먼저 들어가버렸다. 복도에서 나던 카레 냄새가 우리집에서 나던 냄새였구나. 레이겐은 자기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렸다.

    손을 씻은 뒤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 채 부엌으로 가자, 시게오는 냄비 솥 가득 끓인 카레를 국자로 휘휘 저어대고 있었다. 저번에 자신이 사 온 '당신도 할 수 있다 가정 백반 마스터' 책은 야채 카레 페이지가 보이도록 펼쳐져 있었고, 책 한 쪽 귀퉁이에는 흘린 카레가 누렇게 묻어있었다. 레이겐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카레, 네가 했어"

    "아뇨, 전부 혼자 한 건 아니고... 에쿠보가 도와줬어요."

    "에쿠보는 학교 친구"

    그 말에 시게오는 빙그레 미소를 지은 뒤 제 허리에 묶인 앞치마를 풀었다. 네 집도 아닌데 친구를 막 부르면 안되지. 그 말에 시게오는 네, 알겠어요. 라고 공손하게 대꾸한 뒤 가스불을 껐다. 며칠 전에 잔뜩 하고 남은 쌀밥을 푼 뒤 그 위에 카레를 끼얹자 제법 그럴싸한 요리가 완성이다. 식탁에 마주 앉아 카레라이스를 한 술 뜨려는데 시게오는 수저를 쥔 채 레이겐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안 먹어"

    "스승님이 첫 술 드시는 거 보고싶어서요."

    "싱겁긴."

    레이겐은 그렇게 말하며 카레를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솔직히 말해서 카레라는건 어떻게 만들어도 보통은 가는 음식이다. 물론 양파를 미리 볶아서 넣거나, 씨푸드를 추가하면 좀 더 풍성해지는 차이는 있겠다만은 아무렇게나 죄다 넣고 팔팔 끓이기만 해도 맛잇는 음식이 되니까 요리따위는 전혀 해 본 적 없는 남고생이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음식이다. "맛있으세요" 그 말에 레이겐은 카레를 계속해서 떠넣으며 말했다. "응, 맛있어." 그제서야 시게오도 카레를 같이 먹기 시작했다.

    역시 신주쿠에 가지 않길 잘했다. 레이겐은 그 애와 함께 저녁을 먹는 이 순간 집에 온 기분이 들었다. 그냥 몸을 뉘이고 쉬는 곳이 아니라, 볕이 잘 드는 내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로 채운 가구들이 가득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반겨주는, 그런 집... 창 밖에는 주황색으로 너울거리던 노을이 조금씩 보라색과 검푸른 색이 뒤섞인 어둠으로 바뀌어갔다. 결혼이라는 걸 하면 이런 기분인가 싶었다. 역시 여자 있는 거 아니냐. 그렇게 말했던 동기를 생각하며 레이겐은 자신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모의고사를 채점하자 늦게 잘 시간이 되었다.

    레이겐은 간단하게 세안 하는 동안 시게오는 레이겐의 방 아래에 제가 잘 이부자리를 폈다. 다른 방을 내 주고 싶어도 그렇게 큰 집이 아니여서 어쩔 수 없었다. 양치까지 끝내고 눕자 식은 카레 냄새가 났다. 레이겐은 그것을 맡으며 제 침대 아래에 누운 시게오에게 가만히 말했다.

    "오늘 카레 맛잇었어."

    "좋아하지 않으실까봐 걱정했어요."

    시게오는 그렇게 말하며 레이겐을 올려다보았다. 불 꺼진 좁은 방 안에서는 늦여름 벌레 우는 소리와 도심 특유의 차 지나가는 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왔다. 불이 다 꺼진 방인데도 유독 그 애의 피부는 창백했고 눈은 예쁜 빛을 띄며 저를 응시한다. "좋아해." 레이겐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오래 혼자 살다 보면 아무거나 다 잘 먹거든."

    열린 베란다 창문 틈으로 더위 가신 바람이 살짝 불었다. 그 때문인지 표정변화가 없는 그 애의 새까만 머리카락이 가볍게 너울거렸다. 어둠과 함께 일렁거리는 그것을 보고 있자니 천천히 잠이 쏟아졌다. 레이겐은 제 눈을 느리게 깜빡, 깜빡거리며 작게 말했다. "이렇게 해 먹는 건 처음이야." "저도요." "좀 귀찮긴 해도 재밌네..." 볕에 뽀송하게 말린 이불을 잘 덮자 달콤한 수마가 몰려왔다. 식은 카레 냄새가 오랫동안 코 끝을 떠돌았지만 불쾌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 데워 먹으면 맛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리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드는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가물거리는 귓가에 소년의 단정한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렸다. 저도 좋아해요. 그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어려워서 레이겐은 응, 작게 대꾸하고서는 그대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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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ODLE그딴건 내가 써야돼 8
    1731
    -
    너무 망상가득한데 앞 이야기 대충 요약하면

    정략결혼 사이인 몹레
    나중에 자란 17살 모브가 레이겐 집 멋대로 찾아와서
    도쿄 인근 대학가기 위해 레이겐집에서 학교다니고 개인과외 받는 이야기입니다;
    8저 멀리 동쪽에서 짭짤한 소금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길게 불었다.

    여름이 한참 농익어가기 시작하면서 뜨겁게 달군 모래사장에 발가락을 묻자, 바삭하게 마른 하얀 모래의 따끔따끔한 표면과는 다르게 검은 습기가 있는 아래는 시원했다. 카게야마 시게오는 파라솔 아래에 발을 묻은 채 사람들이 북적북적거리는 해수욕장을 바라보았다.

    도쿄 근교에 위치한 가마쿠라 해변에는 피서를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저 멀리 푸른 지평선 너머로 짠 바닷물 절반 만큼이나 사람들이 잔뜩 제 몸을 맡기고서는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시게오에게는 일반복이 없었기 때문에, 파라솔 아래에 앉아있는 시게오가 입고 있는 티셔츠는 레이겐 아라타카의 것이다. 키는 반뼘 정도 밖에 차이나지 않는데, 레이겐의 옷은 의외로 시게오에게 헐렁했다. 시게오는 제가 입은 티셔츠와 품이 넉넉한 반바지 카고바지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저번에 외출 했을 때 옷을 사주겠다고 했으면서 그렇게 돌아온 뒤로 아직 레이겐은 시게오에게 옷을 사주지 못했다. 그래서 교복과 속옷 외의 옷은 모두 레이겐에게 신세를 지고 있었다. 시게오는 눈을 감고서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불어닥치는 습한 바람에서는 소금 냄새와 함께 사람들의 살내음, 그리고, 제 몸에 걸쳐진 옷에서 레이겐 아라타카의 근사한 향기가 났다. 새끼 손가락 끝에 매달린 붉은 실이 작게, 아주 작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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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yeobmob

    MEMO그딴건 내가써야돼 6
    6토독, 토독, 새벽부터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장지문 너머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레이겐은 부스스 깨서 이부자리에서 몸을 누이며 뒤척였다. 제 머리맡에 놓인 아날로그 시계가 오전 6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비가 와서인지 해가 뜰 시간인데도 거뭇거뭇 날이 어두웠다. 그는 하품을 길게 하고서는 문득 깨달았다. 매일 새벽마다 귀찮게 깨우러 오던 시게오가 오늘은 없다. 갑자기 잠이 확 달아나는 기분에 그는 이부자리를 개고서는 다다미 문을 열었다.

    "모브"

    카게야마의 신사가 있는 고저택은 늘 조용했지만, 오늘은 특히나 더 조용했다. 절간에 온 것 처럼 비 내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는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세안을 하고서는 시게오가 쓰는 방 문을 열었다. 그 애의 이부자리는 곱게 개켜진 채였다. 부엌으로 가자 명주천으로 만든 덮개를 씌운 소반이 있었다. 그걸 열자 정성스럽게 만든 오니기리와 함께 쪽지가 두 개 놓여있었다. 이틀동안 사이타마 현에 입원해 있는 리츠 도련님을 뵈러 시게오 도련님이랑 다녀올거예요. 냉장고에 된장국이랑 옥수수 삶아뒀으니까 나중에 드세요. 레이겐은 다른 쪽지를 넘겨서 보았다. 반쇼 부인이 쓴 것 보다 약간 더 두툼한 종이에는 삐뚤삐뚤한 히라가나로 적힌 짧은 문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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