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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딴건 내가 써야돼 6.5

    6.5어느날 퇴근을 하고 돌아오는 오피스텔의 문 앞에는 낯선 사람이 서 있었다. 여름이라 해가 길어서인지 오피스텔의 복도에는 아직 뜨거운 저녁의 태양빛이 길게 늘어지고 있어서 레이겐은 제 집 앞에서 오피스텔 명패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옆얼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어림잡아 키가 자신보다 반 뼘 정도 작은 남자아이는 고등학생 쯤으로 보였다. 소년은 품이 넉넉한 하얀 여름 와이셔츠를 입고 아래는 단단히 조이는 여름 하복 바지를 입은 채, 한 손에는 크로스백을 들고서 서 있었다. 처음에는 오피스텔 문 앞에 전단지를 붙이는 아르바이트 생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시덥잖은 일을 하기에는 그 애의 얼굴이 너무나도 선하고 단정했다.

    여름의 붉고 빨간 태양빛이 그 애의 창백한 얼굴에 비춰져서, 그 애의 피부는 처음부터 주황색으로 물든 것 처럼 보였다. 레이겐이 제 집을 향해 걷기 시작하자, 그 애의 고개가 돌아가면서 새까만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다. 먹처럼 검은 머리카락을 보고서는 레이겐은 자신도 모르게 제가 아는 아이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모브"

    많이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세 살 무렵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부드러운 뺨과, 단정하게 잘린 새까만 머리카락. 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다. 시게오는 자신을 알아본 레이겐을 향해 단정한 입매가 벌리고서는 한마디를 내뱉는다.

    "스승님."

    "...너, 진짜 많이 컸구나."

    그 말에 단정한 소년의 얼굴이 부드럽게 미소로 흐트러졌다. 한여름 노을 빛 때문에 흡사 홍조가 띈 것 처럼 그 애는 웃고 있었다. 그 애가 웃는 모습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릿하게 느껴져서 레이겐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시게오는 얼빠진 채 자신을 바라보는 레이겐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옛날 볼이 부드럽고 통통한 모습이 남아있는 얼굴 그대로, 선하게 웃으며 레이겐을 가까이에서 바라본다. 레이겐은 문득 어릴 때처럼 품에 그 애가 안겨들 줄 알고 제가 팔을 살짝 벌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황급하게 살짝 벌어진 팔을 뒤로 숨기고서는 말했다.

    "그나저나 도쿄까지는 왠일이냐. 우리집은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

    그렇게 물으며 시게오를 살펴보는데 하얗고 깨끗한 목덜미로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이 들러붙어 있었다. 그 애는 자신이 언제 올지 몰라서 더운 바깥에 계속 서 있었던 것 같았다. 황급하게 제 집 현관문을 열고서는 그 애를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레이겐은 제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을 한참 두리번 거리는 시게오를 선풍기 앞에 앉힌 뒤,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힌 녹차가 가득 든 유리병과 유리잔 두 개를 가져왔다. 차가운 녹차를 따라서 주는데, 오피스텔을 두리번거리며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던 시게오가 레이겐을 보며 말했다.

    "도시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작은 집에서 사나요"

    "아냐, 메구로 같은 곳에 가면 주택도 많이 있어. 나는 근처에 있는 회사 때문에 여기에 사는거고."

    그렇군요. 시게오는 얌전히 레이겐이 내미는 녹차잔을 받아마셨다. 하긴 시게오는 신당이 붙어있는 고저택에서만 살아왔을 뿐 아니라, 신사 일 때문에 이렇게 건물이 빼곡하게 있는 대도시를 오기는 커녕 그 동네를 제대로 벗어나 본 적도 없을 터였다. 꿀꺽, 꿀꺽, 녹차잔을 마시는 소년의 목울대가 움직이는 것을 한참 보던 레이겐은 그 애가 잔을 내려놓자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그나저나 여기에 어떻게 온거냐."

    그 말에 시게오가 작게 제 고개를 기울이고서는 말했다.

    "스승님께서 오지 않으셔서요."

    약속하셨잖아요. 돌아오기로. 하지만 돌아오시지 않으셨죠. 그래서 직접 와 보기로 했어요. 도쿄라는 곳이 얼마나 좋은지 궁금하기도 했고. 시게오는 그렇게 덧붙였다. 나가노 현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기찻값이 얼마인지. 게다가 갑자기 이렇게 나타나서는 오지 않아서 왔다는 말은, 그야 말로 초능력자라서 할 수 있는 말이다. 레이겐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살짝 벌렸다. 뒷통수를 쎄게 후려맞은 기분이었다. 그러고보면 그 때, 카게야마 가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그 애는 종종 자신을 찾아 저택에서 상점가 까지 멋대로 오고는 했으니까 좀 더 자란 지금은 현에서 현으로 순간이동이라던가 날아서 오는 것도 가능할 지도 몰랐다. 순간이동을 하고 무거운 물건을 띄우는 초능력자라니. 가슴이 뛰는 것을 억지로 억누른 레이겐은 한숨을 푹 쉬고서는 말했다.

    "일단 네 집에 전화를 좀 해야겠다."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말하며 핸드폰을 펴는데 기가 막히게도 레이겐의 모친 되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레이겐은 전화를 받기 전에 물었다. 이것도 초능력의 일부니. 시게오는 순순하게 고개를 저었다. 레이겐은 노을이 지는 반평 밖에 되지 않는 비좁은 발코니 문을 열고 나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를 열자 말자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조금 쉰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전자음과 함께 울렸다. 여보세요, 시게오 도련님 혹시 거기에 있니 그 말을 들으며 레이겐은 안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냈다. 그는 대답과 함께 그것을 입에 물었다.

    "네, 지금 여기에 있어요."

    시게오의 가족들에게 전해주세요. 전화번호가 저에게는 없네요. 레이겐은 그렇게 덧붙이며 불 붙인 담배를 길게 머금고서는 내뿜었다. 하교 시간이 한참 지나고도 돌아오지 않는 그 애가 걱정되서 경찰에 신고도 하고 그 동네가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레이겐은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그 애는 초능력자잖아요, 물론 아이라서 걱정하시는 것도 이해하지만 지금 저희 집에 무사히 잘 있어요. 제가 잘 타일러서 며칠 뒤에 돌려보낼테니까."

    전화를 끊고 담배를 다 태운 뒤 방으로 들어가자, 시게오가 무릎을 꿇은 채 단정히 앉아 레이겐을 쳐다보고 있었다. 담배 피우는 모습을 그 애에게 보여진 것이 문득 부끄러워, 레이겐은 작게 손부채질을 했다. 냄새를 뺄 작정이었지만 독한 연기는 쉽게 빠지지 않는다.

    뉘엿뉘엿 지는 노을을 받은 그 애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본다. 젖살이 많이 빠졌는데도 여전히 어릴 때와 똑같은 얼굴이 있다. 머리스타일이 비슷해서 그런가 사춘기가 지나고 나면 보통 완전히 인상이라는 게 달라지던데. 레이겐은 그렇게 생각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작은 침묵이 일었다. 결국 주황빛 노을이 보라색으로 바뀌고 어둠이 내려 앉을 때 쯤 입을 먼저 연 것은 레이겐이었다.

    "일단 밖에서 라멘이라도 먹으면서 이야기 할까"

    시게오는 레이겐이 이끄는대로 순순히 따라왔다.

    레이겐이 사는 오피스텔 밖으로 나오자, 해가 거의 다 저물어서 하늘에는 붉은색이 엎지른 물감마냥 흐리게 남아있었다. 보라색과, 검은색이 서쪽을 향해 늘어지는 하늘을 보며 그들은 미지근하게 식은 도시의 거리를 걸었다. 스쳐 지나가는 길거리의 학생들이 입은 교복은 확실히 시게오가 입은 여름 하복보다 세련됐다. 주렁주렁 악세사리가 많이 달린 핸드폰을 쥐고서는 통화를 하던 학생들이 횡단보도를 함께 지나며 깔깔 웃었다. 레이겐은 그것을 보다 문득 시게오에게 고개를 기울여 물었다. "모브, 휴대폰 있어" 시게오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두고 온 거야 시게오는 그 말에 한번 더 고개를 저었다. 휴대폰이 없다는 뜻이군. 레이겐은 시게오가 살던 본가의 신사 분위기를 떠올리고서는 그가 휴대폰이 없는 이유를 납득했다.

    자주 가던 단골 라멘집에 가기 전에 먼저 전자기기 상가에 들러 그에게 싸구려 휴대폰을 사 주었다. 가장 저렴한 기기에 가장 저렴한 선불 폰 가격을 지급하면서 그는 자신을 아는 카게야마의 본가 어르신들이 살아있다면 그들에게 이 청구서를 보내리라 생각했다. 개통된 휴대폰를 시게오의 손에 들려주자 소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레이겐을 바라보았다.

    "설마 휴대폰 쓰는 법 까지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그건 아니지만..."

    스승님 번호는 모르는데요. 시게오는 폴더폰을 펴서는 레이겐에게 반듯하게 내밀었다. 방금 사서 새것인지라 흠집 하나 없는 화면이 반짝거렸다. 레이겐은 잠자코 있다가 휴대폰을 받아들고서는 제 번호를 찍어준 뒤 그에게 돌려주었다. 시게오의 하얀 얼굴이 살짝 붉어지더니 이내 그대로 꾸벅 숙여졌다. 감사합니다. 그 애의 인사를 들은 레이겐이 귀찮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서는 말했다.

    "나중에 나가노 현으로 돌아가면 좀 더 제대로 된 걸로 사달라고 해. 어차피 본당 사람들은 돈도 많은데 주말에 미나미 상점가에 가서, 응."

    아직 망하진 않았겠지. 그 말에 시게오는 고개를 든 뒤 잠깐 웃고 말았다.





    한여름의 시부야에서는 모든 것들이 밤 늦게 오랫동안, 화려하게 반짝거린다. 시간이 좀 늦어지자 호스티스 바에서 호객행위를 하러 나온 사람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짓하며 마구잡이로 말을 걸었다. 거기 형님 시간 있어요 늘 보던 광경이라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큰 길이 바로 앞인데도 골목마다 사회의 찌꺼기들이 스멀스멀 악취와 함께 기어나오는 모습은 막 시골에서 상경한 고등학생에는 너무 자극적인 풍경이다. 레이겐은 제 곁에서 걷는 시게오의 어깨를 잡고서는 길 바깥쪽으로 세운 뒤 자신이 골목 안쪽으로 서서 걸었다. 왜 그러세요 그렇게 묻는 대답에 레이겐은 길 바닥에 쓰레기가 있어서, 라는 말로 대충 얼버무렸다. 물론 시부야의 시내 한가운뎃길은 사람들이 피고 버린 담배 꽁초와, 누군가가 과음한 뒤 토한 것, 그리고 가게의 쓰잘때기 없는 전단지 따위들로 꽤 엉망진창이었음으로 시게오는 납득한 눈치였다.

    다행히 늦은 시간인데도 단골 라멘집은 아직 영업중이다. 레이겐은 노렌을 들추고 들어가며 주인장에게 된장라면에 차슈 추가한 것을 두 그릇 주문했다. 익숙하게 자리에 앉는데, 시게오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어색한 듯 라멘집 테이블에 앉았다.

    "네가 벌써 몇살이지 17살인가."

    "네, 맞아요."

    "그럼 고등학교 3학년인가... 한참 바쁠 텐데 어떻게 왔어."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상의 드리고 싶은게 있어서요."

    저 대학에 가고 싶어요. 기왕이면 도쿄에 있는 곳으로. 시게오의 말에 레이겐은 제 입술을 검지와 중지로 문지르며 잠깐 고민했다. 입시 상담이라면 확실히 시게오가 살던 시골은 입시 정보가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선생들도 그런 쪽으로는 퍽 노련하지 못했음으로, 이런 충동적인 가출도 납득 가는 점이 있다. 게다가 카게야마의 친척들이 그런 쪽으로 잘 알 것 같지도 않고. 하지만 그 애는. 레이겐은 그 애를 바라보며 의아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넌 초능력자잖아." 시게오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그 애는 단정한 눈매를 잠깐 깜빡이다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 애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의 부류였다.

    "초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어서요."

    그게 뭔데 레이겐은 어이 없다는 듯 너털 웃음을 터트렸으나, 이내 시게오의 진지한 표정을 발견하고서는 멋쩍게 자세를 반듯하게 고쳐 앉았다. 각오까지 느껴지는 기묘한 분위기에, 레이겐은 제 손가락으로 탁자를 느리게 탁, 탁 두드렸다.

    말 없는 두 사람 사이로 따뜻한 라멘이 두 그릇 나왔다. 레이겐은 시게오를 살펴 보다가 옆에 꽂혀있는 나무젓가락을 뽑아서 그 애에게 내밀었다. 일단 먹고 말하자. 그러고 레이겐은 멋대로 젓가락을 하나 더 뜯어서 라멘을 후루룩 먹기 시작했다. 그가 하는 모습을 관찰한 시게오는 레이겐이 하듯 젓가락을 반으로 가른 뒤 라멘을 마찬가지로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라멘을 반 쯤 비운 시게오가 생각을 정리한 듯 그에게 말했다.

    "초능력으로는 대학에 입학 할 수 없고, 제가 배우고 싶은 일을 배울 수도 없어요."

    "그건 확실히 그렇네."

    그럼 넌 무엇을 배우고 싶어서 대학을 가고 싶어하는거야 레이겐이 그렇게 묻자 시게오는 작게 고민하듯 눈을 깜빡이다 말했다.

    "사람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서요."

    "그럼 심리학 쪽인가."

    "꼭 그런게 아니여도 좋아요. 보통 사람들은 다들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최근에 알게 되었거든요, 다들 어릴 때 기모노를 입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시게오는 젓가락을 놓고서는 레이겐을 똑바로 응시했다. 이제야 알았다니, 너 눈치 최악이잖아. 그렇게 농담으로 말하고 싶어도 그 애가 강요 받았던 집안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런 농담도 나오지 않는다. 확실히 이런 것이라면 레이겐은 더이상 시게오를 설득하기 어렵다. 당장 자신만 해도 집안에서 강요하는 그런 것들이 지독하게 지겨워서, 뛰쳐나와 도망치기 위해 도쿄로 가버린 게 아닌가. 그리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는것도.







    14년 전 나가노 현에는 유래 없는 폭설이 내렸다. 미나미 상점가로 가는 버스도, 여기를 떠날 수 있는 기차도 모두 운행이 중단되었다. 이래서 레이겐 군, 도쿄까지 갈 수 있으려나. 걱정하는 반쇼 부인을 두고 레이겐은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영감과 시게오의 아버지와 함께 저택에 쌓인 눈을 치웠다. 낡은 고저택의 기와는 눈이 너무 많이 오면 무너지기 쉽다. 한참 기와위의 눈을 치우고 나니 뿌연 구름 너머로 백로 한마리가 유유자적하게 날아간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눈더미에 레이겐은 바지가 다 젖기 전에 저택 안으로 먼저 들어와버렸다.

    실내에는 찻 주전자 끓는 소리가 가득하다. 코가 발갛게 언, 거의 다 자란 소년을 본 시게오의 어머니가 미안한 듯 웃었다. 리츠의 병세가 나아지고 난 가을 쯤 뒤로부터 그들은 카게야마의 본가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레이겐은 시게오의 모친을 빤히 보다가 물었다.

    "모브는 아직도 화가 안풀렸어요"

    사실 그 애의 화가 풀리지 않은건 바깥에 끝도 없이 내리는 폭설로 알 수 있다. 자연적으로 이렇게 많은 폭설이 내리기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애의 초능력은 정말 대단하기 그지 없어서, 때때로 기상이변과 별 다를 바가 없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했으니까.

    눈이 일주일 째 내리는 날, 카게야마의 나이 많은 어르신이 본당을 찾아와 시게오를 타이르기도 하고 혼을 내기도 했다만은 이번만큼은 그 애의 고집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레이겐은 시게오가 왜 화를 내는지 알고 있다. 레이겐은 올해 18살이 되었고, 대학 진학 시험을 치러 곧 떠나기 때문이다. 맹한 얼굴로 이별을 순순히 받아들일 줄 알았던 시게오는 어린애답게 떼를 쓰고 있다.

    발이 묶이면 떠나지 못한다, 단순한 어린애의 발생이지만 똑똑했다. 따뜻한 녹차를 마시며 레이겐은 시게오가 있는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모브."

    들어가도 돼 그 말에 문 너머로 작게, 네 라고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있다. 레이겐은 다다미 문을 열고 들어서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이야 밖에 눈이 잔뜩 왔네. 리츠랑 셋이서 눈사람 만들면 딱이겠다. 그치"

    그 말에 시게오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애는 무릎을 웅크려 방 한구석에 앉은 채 레이겐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귀기 까지 느껴지는 위압감에도 레이겐은 서스럼없이 시게오의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시게오의 통통하고 부드러운 뺨은 하얗게 질려 경직되어있다. 레이겐은 아직 덜 녹은 제 차가운 손으로 그 애의 새까만 머리카락을 찬찬히 쓰다듬었다. 윤기 흐르는 새까만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 처럼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거친 소년의 손바닥 사이로 차분하게 미끄러졌다.

    "밖에 나갈래"

    "싫어요."

    "그럼 계속 이렇게 있을거야"

    시게오는 더 눈에 띄게 제 몸을 웅크렸다. 결국 한숨을 쉰 레이겐은 제 품을 살짝 벌려보였다. 이리 와, 모브. 그 말에도 시게오는 고개를 저으며 차가운 다다미 바닥에 가만히 제 몸을 웅크린 채 앉아있었다. 레이겐은 제 팔을 벌린 채 계속해서 시게오를 기다렸고, 결국 10분 뒤에 어린 시게오가 레이겐의 품으로 미적미적 기어들어왔다. 오랫동안 차가운 방에서 성을 내고 있던 탓인지 작은 아이 몸 답지 않게 서늘했다. 그것을 꼭 안아주며 레이겐은 작게 시게오의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안 가면 안 돼요"

    안 그래도 사람의 왕래가 드물어서 조용한 고저택과 신사에는 조용히 눈 오는 소리밖에 도통 들리지 않는 사이로 아이의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귓가에 박혀들었다. 확실히 처음 만났을 때 보다는 말이 많이 늘고 발음도 명확해진 꼬마다. 레이겐은 웃으며 그 애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시험 보려고 12년이나 준비했는데"

    "시험을 왜 봐요"

    "나 도쿄로 대학 가야돼."

    도쿄라는 말에 아이의 눈이 땡그래지더니 이내 살짝 붉어졌다.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시게오가 작은 손가락으로 레이겐의 두터운 겨울옷 소매를 꽉 붙잡고서는 물었다.

    "그럼 갔다가 언제 와요 내일 와요"

    "아니."

    "그럼 모레 와요"

    "...나도 몰라."

    "그냥 안 가면 안 돼요 "

    스승님은 제 부인이잖아요. 결국 시게오는 레이겐의 품에서 울음을 터트렸고, 그와 동시에 바깥에서 사박사박 내리던 눈이 거꾸로 하늘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살짝 열린 문 틈으로 역행하는 눈보라를 바라보던 레이겐은 시게오를 꼭 안아주고서는 찬찬히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눈이 거꾸로 내려서 뉴스에 나오면 어떡하지. 레이겐은 그렇게 생각하며 시게오의 새까만 머리카락에 제 코를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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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MO그딴건 내가써야돼 6
    6토독, 토독, 새벽부터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장지문 너머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레이겐은 부스스 깨서 이부자리에서 몸을 누이며 뒤척였다. 제 머리맡에 놓인 아날로그 시계가 오전 6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비가 와서인지 해가 뜰 시간인데도 거뭇거뭇 날이 어두웠다. 그는 하품을 길게 하고서는 문득 깨달았다. 매일 새벽마다 귀찮게 깨우러 오던 시게오가 오늘은 없다. 갑자기 잠이 확 달아나는 기분에 그는 이부자리를 개고서는 다다미 문을 열었다.

    "모브"

    카게야마의 신사가 있는 고저택은 늘 조용했지만, 오늘은 특히나 더 조용했다. 절간에 온 것 처럼 비 내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는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세안을 하고서는 시게오가 쓰는 방 문을 열었다. 그 애의 이부자리는 곱게 개켜진 채였다. 부엌으로 가자 명주천으로 만든 덮개를 씌운 소반이 있었다. 그걸 열자 정성스럽게 만든 오니기리와 함께 쪽지가 두 개 놓여있었다. 이틀동안 사이타마 현에 입원해 있는 리츠 도련님을 뵈러 시게오 도련님이랑 다녀올거예요. 냉장고에 된장국이랑 옥수수 삶아뒀으니까 나중에 드세요. 레이겐은 다른 쪽지를 넘겨서 보았다. 반쇼 부인이 쓴 것 보다 약간 더 두툼한 종이에는 삐뚤삐뚤한 히라가나로 적힌 짧은 문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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