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시소멘 해먹자.”
“지금”
아케치의 반문에 렌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질문거리가 늘어났는지 아케치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뭐, 구태여 아케치의 입으로 직접 듣지 않아도 무슨 내용일지는 렌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대나무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너무 비좁지 않냐, 대충 그런 ‘현실적’인 지적이겠지. 두 사람(과 모르가나)이 사는 2LDK는 살기에 불편할 정도로 좁다고는 할 수 없어도 나가시소멘을 할 만한 긴 대나무를 들여 오기에는 아무래도 좁았다. 그렇다고 바깥으로 나간다 해도 마땅히 먹을 만한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런 의문은 타당했다. 그러나 현대 문명의 발달은 이전까지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일도 가능하게 만들어 주지 않던가. 인간이 기계의 힘으로 하늘을 날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는 시대에 대나무가 없다거나, 집이 비좁다는 이유로는 나가시소멘을 못 먹게 방해할 수 없었다. 렌은 식탁 밑에 숨겨 두었던 현대 문물을 의기양양하게 꺼내 보였다.
“짜잔.”
워터파크에서 볼 법한 나선형 미끄럼틀을 약 50cm쯤으로 축소하고 대나무 같은 디테일을 더한 연녹색 기계였다. 미끄럼틀의 끝은 수영장 같은 형태로 되어 있고, 미끄럼틀을 받치는 기둥에는 물을 빨아들여 순환시키는 펌프가 달려 있었다. 아케치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는 물었다.
“뭔가 했더니……. 나가시소멘 기계”
“리사이클 숍에서 샀어.”
“별걸 다 산다.”
아케치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입을 한 번 닫았던 그가 몇 번이고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결국 인내심이 전부 바닥난 듯 도로 입을 열었다.
“애초에 굳이 이런 것까지 사서 흘려가며 먹을 필요가 어디 있어 맛은 다 똑같은데 괜히 귀찮기만 하지.”
“재미있잖아.”
렌은 턱을 치켜들며 씩 웃었다. 아케치는 때로 재미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구석이 있다. 재미가 중요하지 않다면 주방 오픈형 식당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 줄 이유는 어디에 있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재료나 조리방법을 설명할 이유는 또 어디에 있겠는가. 바보 같은 짓을 해서 즐거워질 수 있다면 때로는 바보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쨌든,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일도 아니니까. 아케치는 썩 납득하지 못한 듯한 표정이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네 마음대로 해.”
물이 끓는 동안 렌은 양파를 얇게 채썰어 찬물에 담갔다. 매운 기를 빼고 레몬즙을 뿌려 두었다가 소면과 함께 쯔유에 찍어 먹을 예정이다. 나가시소멘은 맛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탄수화물만 과하게 섭취하게 된다. 요리에 취미를 붙이기 전까지는 영양 편중 따위에 깊게 신경 써 본 적이 없었던 렌도 한 번 관심을 두기 시작한 이후로는 밸런스를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샐러드 같은 것을 곁들이로 내어도 괜찮겠지만, 아무래도 반찬이 많아지면 가볍게 즐기며 먹는다는 본 목적에서 멀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같은 이유로 단백질도 생략이다. 저녁에 뭐라도 고기를 메인으로 먹으면 대충 균형이 맞지 않을까. 요리 계획을 적당하게 세우는 동안 물이 팔팔 끓기 시작했다. 렌은 주방에서 고개를 내밀어 물었다.
“소면 얼마나 먹을래”
“……적당히.”
“이 몸은 많이 먹고 싶어”
볕이 잘 드는 창가에서 실컷 일광욕을 즐기던 모르가나가 큰 소리로 야옹거렸다. 아케치의 ‘적당히’는 그렇다 쳐도, 모르가나의 ‘많이’는 생각보다 가늠하기 까다롭다. 고양이 치고는 제법 많이 먹는 편이지만, 그래도 몸집이 작은 고양이인지라 사람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양이기 때문이다. 뭐, 소면은 누가 먹더라도 과식하는 경향이 있으니 10인분짜리 한 봉지를 전부 삶아도 해치우는 데 문제는 없겠지. 남으면 내가 먹으면 되고. 렌은 그렇게 생각하며 소면 한 봉지를 냄비에 털어 넣었다. 이런 생각을 반복하는 사이에 서서히 살이 찌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상태였다.
“이 몸도 소면 잡는 거 하고 싶었는데…….”
모르가나가 귀를 축 늘어트리며 중얼거렸다. 앞발을 기계에 넣었다가는 빠진 털이 물에 떠다니게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챈 탓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고양이 털쯤은 매일 일상적으로 먹고 있으니 털투성이 국수를 먹게 된들 별 문제는 없다고 렌은 생각했지만, 모르가나는 그렇게 넘길 수 없는 듯했다. 때때로 이런 상황이 찾아올 때면 마루키가 떠오르곤 한다. 그 세계에서 모르가나는 이런 일로 시무룩해질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르가나는 앞으로도 계속 모두와 같은 경험을 공유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현실을 택했다.
“상관없잖아 그냥 해. 네 털 먹는 거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아케치가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방금 전에 마루키 생각이 떠올라서 그런지 그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아케치는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현실을 택했다. 그가 비교적 멀쩡하게 살아 있으며, 심지어 자신과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깝다고 렌은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도 죽은 거나 다름없을지도 모르지.’
언젠가 아케치는 그렇게 자조했다.
아케치가 행한 모든 죄는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만큼 반사회적인 일을 저질렀다는 의미가 아니라(물론 반사회적 범죄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가 죄를 범했다는 사실조차도 사회가 인정해 주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세계 내비가 사라지고 모든 힘을 잃은 지금은 그 어떤 물증도 남아 있지 않은 탓이었다. 아무런 증거가 없으니 자백조차도 효력이 없었다. 사회가 범죄자를 처벌하는 이유를 사람들은 다양한 관점으로 설명하지만, 결국 어떤 이유건 ‘인간’이기에 처벌받는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맥락을 공유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인간이 아니라면 처벌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자연재해를 벌할 수는 없다. 인간 아닌 동물을 벌할 수는 없다. 사고를 벌할 수 없고, 질병을 벌할 수 없다. 아케치는 인간인 채로 인간이 아닌 상태가 되어 버렸다. 살아있기 때문에 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아케치는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이 몸의 털이 들어가면 너희들은 재미없잖아”
“입에서 털을 빼내는 재미라든가.”
“싫다고, 그런 거”
“힘내서 헤어볼 만들어 볼게.”
“되겠냐고”
되는 대로 적당히 대답하자 모르가나가 테이블 위에 꼬리를 탁탁 내리쳤다. 그것만으로도 가느다란 털이 공기 중에 둥실둥실 흩날렸다. 이미 물 위로도 검은 털 몇 가닥이 동동 떠 있는 상태였다. 렌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됐으니까 불기 전에 먹기나 하자.”
전원을 올리자 곧 펌프가 물을 빨아올려 미끄럼틀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렌은 소면을 적당량 집어 미끄럼틀에 내려놓았다. 생각보다 물살이 빨라 온 사방으로 물이 튀었다. 내내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던 아케치도, 자기 때문에 재미가 없어질까봐 걱정하던 모르가나도 어느 순간부터 흥이 올라 시끌벅적하게 면을 건져내기 시작했다. 고양이 털이 한가득 붙은 소면은, 그럼에도 아주 맛있었다.
“아케치.”
“왜.”
“생일 축하해.”
아케치의 소면이 쯔유 속으로 도로 다이빙했다. 저건 엄청나게 짜겠군. 렌은 그렇게 생각하며 면을 후룩 삼켰다. 역시 레몬즙을 뿌린 양파가 정답이었나 보다. 달콤 짭짤한 쯔유의 맛이 물리기 시작할 때쯤 새콤하고 아삭아삭한 양파를 함께 먹으면 입이 개운해지며 면을 그야말로 무한정 흡입할 수 있었다. 덕분에 조금 많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소면 10인분도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모르가나가 축축하게 젖은 앞발을 할짝거리며 말했다.
“오 오늘 아케치 생일이었나 흐흥~ 이 몸도 축하해 주지 선물은 없지만”
“필요 없어. 입맛 떨어지는 소리 하지 좀 마.”
인상을 찡그리며 소면을 삼킨 아케치가 투덜거렸다. 그의 언짢아 보이는 표정의 이유가 너무 짠 소면 때문인지, 아니면 렌이 방금 한 말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쪽이라도 그다지 상관은 없지 않을까. 이런 생일도 있는 법 아니겠는가.
렌은 입 안에 남은 고양이 털을 끄집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