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여름 휴가였다. 본래라면 같은 섹터 소속인 그레이와 빌리가 오프를 맞추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아닌 척 배려해준 동료들 덕분에 2박 3일이라는 시간이 주어진 두 사람은 모처럼 여름이기도 하니 바캉스를 계획했다. 짧고도 긴 시간, 모처럼이니 둘만의 시간을 잔뜩 즐기자며 서로를 마주 보고 웃던 두 사람은 이내 난관에 봉착했다.
“그레이는 특별히 하고 싶은 거 있어”
“난 빌리 군이 좋은 거….”
“여기는 해산물을 중심으로 요리해준대 또 여기는 바비큐가 평이 좋네. 그레이는 어느 쪽이 더 좋으려나”
“빌리 군은 스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바비큐 쪽이 더 좋지”
“아아 정말~ 그레이”
정보 수집은 나한테 맡겨, 하고 눈을 찡끗한 빌리는 그의 말대로 이것저것 많은 정보를 수집해왔다. 그레이는 뭐가 좋아 나는 빌리 군이 좋은 쪽. 그건 오이라가 원하는 답이 아닌데 그렇지만 정말로… 빌리 군이 좋다면 좋아……. 반복되는 상황에 빌리가 볼을 부풀렸다. 문제는 그런 것까지도 그레이에게는 그저 귀여워 보였다는 것이다.
“그럼 그레이는, 내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바캉스에 가기 곤란해졌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그건… 빌리군이 바쁘다면 어쩔 수 없지만.”
“…….”
“빌리 군……”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 없이 부들부들 떠는 통에 그레이가 걱정스럽게 손을 뻗었다. 화, 화났어… 그 손이 닿기 전, 빌리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혹시 눈물이 고여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과는 달리 눈에는 눈물 한 점 없었지만, 입술을 댓 발 나와 있는 상태였다. 작은 입술이 오물오물하는 게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잠시 거기에 한눈을 파느라, 그레이는 빌리의 말을 조금 후에 이해하고 말았다.
“정말~ 그레이는 바보야”
잔뜩 화난 얼굴을 한 빌리는 그대로 펼쳐두었던 노트북을 탁, 닫아버리고는 방을 나가버렸다. 빌리 군… 그레이가 급하게 이름을 불렀지만 탁, 하고 문이 닫힌 후였다.
***
“디제이, 그레이가 화났을까…….”
“조용히 있고 싶은 내 옆에서 그런 티엠아이 자꾸 꺼내면 화나는 건 내 쪽일 거 같은데.”
“디제이는 화나도 괜찮아… 뭐 어때….”
“정말 화날 거 같아, 빌리.”
호기롭게 뛰쳐나가 놓고는 본인에게는 운 나쁘게도 복도를 지나가던 페이스를 보자마자 납치하듯 팔짱을 끼고는 공용 휴게실로 끌고 온 참이었다. 그의 무시 같은 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술 냄새는 안 나는데 꼭 취한 키스 같네. 하고 투덜거리던 페이스가 문득 빌리를 밀쳐냈다. 엣 너무해, 디제이 우리의 우정 이렇게 얄팍했어 아핫, 얄팍한 우정은 됐으니까, 빌리.
“저쪽으로 가버려. 널 찾으러 온 사람이 있는데.”
“응”
페이스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저 멀리서 차마 다가오지는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보고 있는 그레이와 눈이 마주치고 만다. 눈을 깜빡거릴 뿐 차마 그에게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으면 어느새 등을 밀어버리는 느낌이 났다.
“…나중에 연락할게, 디제이.”
하지 마… 하고 한숨 쉬는 페이스를 뒤로한 빌리가 급하게 걸음을 움직였다. 그레이도 결심이 선 듯 빌리에게로 걸어오는 모습에 페이스도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저 바보 커플에 엮이고 싶은 마음 따위 없었다.
***
[@private_eye_bw 오늘 날씨는 완전 맑음☆ 조금 덥지만 바비큐와 바다, 완전 청춘이라는 느낌☆]
“아하, 잘 풀었나 보네.”
“뭐 봐, 페이스”
반짝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먹음직스러운 바비큐가 보인다. 띠롱, 새롭게 업데이트된 에리챤을 확인한 페이스가 중얼거리자 뒤에 있던 이가 슬쩍 허리를 끌어안아 자신의 품 안으로 잡아당겼다. 아, 에리챤을 잠깐. 하고 휴대폰을 내려둔 페이스는 저를 끌어 안아오는 손에 몸을 맡겼다. 빌리처럼, 페이스도 끝내주는 휴가를 즐길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