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Search
    Sign in to register your favorite tags
    Sign Up, Sign In

    helios_dull

    @helios_dull

    ☆quiet follow Send AirSkeb request Yell with Emoji 💖 👍 🎉 😍
    POIPOI 77

    helios_dull

    ☆quiet follow

    🍺🎧 [キスフェイ] 마중을 와주세요

    페이스른 웹앤솔에 냈던 원고 백업

    패트롤도 트레이닝도 끝난 늦은 밤, 디노는 노바와 만나야 한다며 자리를 비웠고 주니어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모처럼 느긋하게 혼자만의 음주를 즐기던 키스는 막 문을 열고 들어오는 페이스에게 손을 들어 짧은 인사를 건넸다. 다녀왔어, 하고 대답한 페이스는 곧바로 방에 들어갈 거라는 그의 예상과는 달리 주방으로 향한다. 어차피 제 용건만 마치면 방으로 들어갈 테니 키스는 섣불리 참견하는 대신 다시 손에 들린 맥주로 시선을 돌린다.



    “키스.”
    “엉”



    오늘따라 페이스가 유독 제 예상과는 다르게 행동한다. 제 이름이 불리는 소리에 소파에 늘어지듯 앉아 맥주를 홀짝이던 키스의 고개가 뒤를 향했다. 기껏 불러놓고는 손에 들린 컵을 홀짝이던 페이스가 느긋하게 걸어온다. 키스가 기대고 있는 소파 등받이에 느슨하게 팔을 걸친 페이스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불렀으면 말을 하지 그러냐.”
    “무슨 말을 해도 괜찮을 자신이 있나 봐”
    “헹, 얼마나 대단한 용건이길래”
    “돈, 언제 갚을래”



    코웃음을 치던 키스가 조용히 손에 들고 있던 맥주캔을 내려놓고 소파에서 엉덩이를 뗀다. ……말미를 좀 주십시오. 주섬주섬 무릎을 꿇고 도게자 하려 드는 모습에 페이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그런 이상한 짓은 시작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만두지 않을래 키스도 진짜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기에 순순히 몸을 일으키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진짜로 독촉하려는 게 아니라 제안할 게 있어서.”
    “제안”
    “좀 귀찮은 일 대신 돈은 어느 정도 제해줄 테니까.”



    페이스의 설명은 이랬다. 밸런타인데이 이후로 여자 친구들을 정리하려고 했으나 순순히 이별해주기는커녕 다들 이전보다 과격해졌다. 오히려 다가오는 여자들은 더 늘어나기만 해서 복잡해진 관계가 여러모로 골칫거리. 그렇다고 아예 발걸음을 끊었다가는 발렌타인 당시 타워에 몰려들어 페이스를 내놓으라고 외쳤던 사태가 반복될 가능성이 큰 데다가 필연적으로 그의 스트레스 해소 창구가 막히게 되니 난처하기 짝이 없다.
    다만 이전에 디노랑 같이 클럽에 갔더니 확실히 말을 걸어오는 빈도수가 줄어, 주기적으로 그를 도와줄 동행이 필요해진 상황이다.



    “그러니까 당분간 마중 좀 와줄래”
    “디노한테 해달라고 하지 그래 아니면 네 친구, 빌리라던가.”
    “보통 사람이 다가가기 힘들게 생긴 쪽은 키스잖아”
    “너 나한테 유독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흐응, 글쎄 그렇지만 엄연히 빚을 진 쪽은 키스니까 어쩔 수 없지 디노는 나한테 빚 같은 거 진 적 없고, 빌리는 매수당할지도 몰라서.”



    끄응, 하고 머리를 벅벅 긁는 키스의 어깨를 쿡쿡 찌른 페이스가 재촉한다.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어깨를 찌른 손가락을 응시하던 키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알았다고. 저번에 거기지 응, 키스가 술 먹고 주정 부렸던 곳. 잘생긴 얼굴로 영 귀엽지 않은 소리만 한다며 혀를 차는 키스에게서 손을 뗀 페이스가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럼 잘 자, 키스.”
    “아아.”




    ***




    두 사람의 합의는 간단했다. 많아도 일주일에 두 번 이하, 페이스는 너무 늦지 않게 적당한 시간에 나올 것, 클럽까지는 들어오지 않기로. 적당히 얻어 마시려고 했는데 아깝네, 하고 키스가 웃었지만 그의 얼굴이 클럽 안의 사람들에게 익숙해졌다가는 당초 목적을 이룰 수가 없을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패트롤이나 트레이닝 때처럼 설렁설렁할 것이라는 페이스의 예상과는 다르게 키스는 제법 약속 시각을 잘 맞췄다. 애프터를 가자느니 좀 더 있다 가라느니 붙잡는 여자들을 클럽 입구까지만 견디면 클럽 옆에서 문지기와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고 있던 키스가 오늘도 인기가 좋다며 히죽 웃어 보이는 것이다.



    “역시 키스가 적격이었어.”
    “뭐가”
    “다들 도망가잖아. 키스는 무서운 상사라고 생각해서.”
    “실상은 내가 놀아나고 있는 것 같지만.”
    “아하, 친절해서 고마워”



    나란히 걸음을 맞추어 가던 페이스가 상체를 틀어 키스의 얼굴을 바라보곤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하여간 되바라져서는 한 마디도 안 지지. 키스는 나를 이기고 싶어 키스의 투덜거림에 페이스가 일부러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 온다. 9살 어린 루키 이겨서 뭐 하게 글쎄, 브래드한테 자랑이라도 할까. 팔꿈치로 명치를 치려는 것을 막아낸 키스가 키득댄다.



    “너 말이야, 너무 읽기 쉽다고.”
    “잘 읽는 주제에 자주 당하네.”
    “일일이 진심으로 덤비기에는 너무 늙어 버려서.”
    “아하, 그럼 키스가 진심으로 덤비는 건 언젠데”



    그저 가볍게 묻는 말투지만 빤히 바라보는 시선은 절대 가볍지만은 않다.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키스가 손을 들어 페이스의 머리 위로 얹었다. 복슬복슬한 감촉이 손 가득히 감겨오는 터라 저도 모르게 쓰다듬을 뻔한 것을 참고는 힘을 주어 꾹 누르자 인상을 찡그린 얼굴이 올려다본다.



    “아파.”
    “저런.”



    손에 주었던 힘을 빼고 살살 쓰다듬자 잔뜩 구겨졌던 인상이 펴진다. 귀엽기는. 피식 웃은 키스가 아쉽게 손을 떼고는 앞서 걸어가자 페이스가 뒤따라 걸음을 맞춰온다. 그를 곁눈질하던 키스는 문득, 저와 걸을 때마다 페이스의 손에 휴대폰이 들려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궁금해지는 것이다. 페이스 또한 클럽에서 나오는 그를 볼 때마다 피우던 담배를 꺼버리는 키스를 알고 있는지.





    ***



    [브래드한테 붙잡혀서 조금 늦을 것 같다]



    기분 좋게 디제잉을 끝낸 페이스가 30분쯤 전에 왔던 연락을 확인하고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조금 늦기는, 그 성격을 내가 아는데. 오늘은 안 와도 돼. 알아서 갈게. 페이스의 답장을 바로 확인하지 못 하는 걸 보니 역시나 아직도 브래드에게 붙잡혀 있는 모양이다.



    “오늘도 동행 있어”
    “페이스 군,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돼”
    “미안, 오늘은 혼자지만 얼른 돌아가지 않으면 찾으러 올 것 같아서.”



    평소와 같이 붙잡는 이들에게 슬며시 고개를 저은 페이스가 휴대폰을 흔들어 보였다. 페이스 군, 하는 아쉬운 목소리를 뒤로하고 클럽 밖을 나온 페이스는 요즘 늘 그랬듯이 문을 지키고 있는 직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형씨 아직 안 왔는데. 벌써 가는 거야 오늘은 상사한테 붙잡혔대. 불쌍하지 저런. 페이스의 농담에 웃음을 터트린 남자가 어깨를 툭툭 쳤다.



    “아무리 봐도 그 사람 너한테 관심 있다고, 페이스.”
    “아핫, 갑자기”
    “갑자기가 아니라니까 이런 건 원래 3자가 더 잘 보는 법이야. 못 믿겠으면 테스트라도 해보던가. 널 위해서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



    말없이 입가를 끌어올리는 페이스의 얼굴에 무언가를 짐작한 남자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여간 너도 무서운 남자야, 페이스. 아하, 칭찬 고마워 가볍게 답한 페이스가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럼 난 이만, 아아, 또 보자고. 고개를 끄덕이는 직원을 뒤로하고 타워로 걸음을 옮긴 페이스는 평소보다 적막한 골목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관심이 있어 보이니 테스트라도 해보라고. 지금 이 상황 자체가 페이스의 테스트였다.

    그래, 사실 다 핑계다. 귀찮기는 하지만 어차피 클럽을 나오기까지만 설렁설렁 밀어내면 타워까지 쫓아오는 여자는 거의 없었으니 키스가 클럽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자유를 제약당해야 하는 페이스와 타워 밖으로 나와야 하는 키스 둘 다 귀찮기만 한 일이다. 득보다 실이 큰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스가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돈 이야기를 꺼내며 키스를 이끈 것은 전부 원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페이스는 키스의 일상이 되고 싶었다.


    억지를 부려서라도 키스의 시간을 독차지하고 싶었다. 키스와 일 이야기가 아닌 별것 아닌 일상 이야기를 하고, 지나가던 중에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 가벼운 식사를 하는 것도 즐거웠다. 키스의 눈에 자신이 담길 때마다 설레는 바람에 괜히 간질거리는 손끝을 말아 쥐곤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보낸 시간을 데이트라고는 부를 수는 없었다. 손끝 하나 닿지 않은 적 없는 담백한 나날들이었다. 호감은 일방적이었고, 티 낼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페이스가 해왔던 수많은 데이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단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이 일상은 언젠가 끝이 날 수밖에 없다. 애초에 대가를 지불한 호의라는 것은 그렇다. 그렇지만 페이스가 그것을 요구하지 않았더라면 키스는 절대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러브 앤 피스 성인인 디노라면 몰라도 키스는 페이스에게 이유 없는 호의를 베풀 이유가 없었다. 페이스는 매력적이었고 사람들의 호의를 쉽게 샀지만, 키스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넘어올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키스는 페이스를 꽤나 챙겨주지만 멘토와 루키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페이스가 원하는 유일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걸 만큼의 용기는 있어야만 했다. 이렇게 교활한 수작을 부리고 그것만으로도 행복해 어쩔 줄 모르는 겁쟁이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지.

    자조적인 생각을 이어가는 사이 페이스는 문득 제 뺨 위로 물이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정말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다. 신경질적으로 뺨을 닦아낸 페이스의 옷 위로 물방울이 툭툭 떨어진다. 그 물방울만은 점점 퍼져나가 페이스의 어깨와 그가 선 바닥을 적시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소나기였다.



    “하…….”



    이 와중에도 키스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꽤 중증이라고 생각한 페이스의 걸음이 빨라졌다.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그렇지 않아도 어둑어둑한 밤거리를 더 침침하게 만들고 있었다. 클럽을 나온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사색에 빠져 느릿했던 걸음 탓에 아직 타워까지는 거리가 있었다. 가지가지 한다고 생각하며 페이스가 뛰기 시작했다. 감기라도 걸렸다가는 제 정 많은 멘토는 자책하고 말 터였다. 그가 자신에 대해 걱정해주는 건 기꺼웠지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인적은 드물었고 그가 뛰는 걸 보는 사람마다 알아서 피해 주니 타인에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달리던 페이스의 몸이 문득 타의에 의해 멈추어 선다. 손가락 하나 닿지 않고 남성인 그를 공중에 띄울 수 있는 사람은 페이스가 아는 이들 중에서는 단 한 명뿐이었다. 페이스가 더 움직이지 않을 것을 확인했는지 다시 발이 땅에 닿았다. 앞머리를 타고 흐르는 비를 훔쳐낸 페이스가 제 눈앞에 있는 사람을 미심쩍게 쳐다보았다.



    “키스”
    “여, 페이스.”
    “여기서 뭐하고 있어”



    의아함 가득한 물음에 키스는 잠시 입을 닫고 페이스를 응시했다. 비를 흠뻑 맞아 얼굴에 달라붙은 검은 머리카락, 속눈썹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 흐린 도시를 배경으로 빛나는 오롯이 존재감을 발하는 마젠타색 눈동자는 바닥을 향한다.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이 이미 젖은 셔츠를 다시금 적신다. 혀를 찬 키스가 손을 들어 페이스의 얼굴 위를 가렸다.



    “마중 나오기로 했잖아.”
    “안 나와도 된다니까. 우산은”
    “없어.”



    갑자기 쏟아지는 걸 어쩌냐. 다시 가지러 가기엔 시간도 없었고. 하고 머리를 대충 터는 키스의 모습에 페이스가 입가를 가리고 침묵한다. 어이, 페이스 미심쩍은 물음에도 손에 가려진 입에서는 제대로 된 대답 대신 작은 풋, 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풋 인상을 구기는 키스를 앞에 둔 페이스는 이내 아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게 뭐야. 둘 다 젖었잖아. 키스 지금 완전 털 북슬북슬한 개 같은 거 알아”
    “너도 그렇게 좋은 꼴은 아니거든.”



    그래도 그렇지, 하고 잔뜩 웃은 페이스가 머리를 완전히 적시고 흘러내리는 빗물에 인상을 찌푸린다. 뛰어야겠는데, 키스 뛸 수 있어 너보다 내가 더 빨라. 다행이네, 아직 관절은 괜찮은 것 같아서. 농담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동시에 타워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





    “두 사람 다 무슨 꼴이야, 이게”
    “디노, 수건 좀.”
    “그러잖아도 잭 녀석한테 혼났어.”



    몰래 들어오려고 했으나 마침 복도를 지나가던 잭이랑 딱 마주친 바람에 두 사람은 잔소리를 잔뜩 듣고 온 참이다. 에쵸, 하고 키스가 우스꽝스러운 기침을 뱉고 나서야 감기 걸리지 않도록 몸 관리를 잘하라는 말과 함께 해방된 둘은 소파에 앉아 있던 디노의 놀란 외침에 멋쩍게 웃었다. 급하게 날아온 수건을 잡아챈 키스가 먼저 하나를 페이스 머리 위에 올리고는 먼저 씻으라며 등을 떠민다. 키스 감기 걸리는 거 아니야 관절 걱정에 감기 걱정에 내 건강에 제법 관심이 많구나, 너. 키스의 피식거림에 나중에 골골거리지나 말라며 톡 쏜 페이스가 욕실 문을 닫고 들어갔다.

    하여간 귀엽다니까, 닫힌 문까지도 빤히 바라보던 키스는 잔뜩 젖은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는 수건으로 물기를 훔쳐냈다. 주니어는 아직도 트레이닝 중이야 응, 다음 타임이 마리온이라 좀 더 있다가 오겠대. 평이하게 대답하며 TV를 보는 디노에게로 다가간 키스가 소파 위에 걸터앉았다. 있잖아, 디노. 왜



    “브래드한테 맞으면 많이 아플까”
    “페이스랑 웨스트는 내가 책임지고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입원해도 좋아.”
    “너 진짜 나쁜 자식이야. 알아”
    “괜찮아, 러브 앤 피스야. 결국은 평화로워질 거라고 생각해.”



    반쯤 진심 담긴 원망에 하하하고 웃은 디노가 키스를 툭 친다. 장난기가 가득한 채로 반짝이는 눈에 원망을 뱉었던 키스조차도 마음이 누그러진다. 하여간 러브앤 피스 성인 같으니라고. 한숨 같은 혼잣말에 디노가 낄낄댔다.



    “근데 어떻게 알았는데”
    “티가 안 날 거라고 생각했어 오늘도 내내 시계 힐긋거렸으면서.”
    “브래드 녀석도 알았겠지”
    “응. 키스 힘내”



    화이팅, 하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는 모습에 또 한 번 한숨을 내쉰 키스가 욕실을 바라본다. 분명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페이스는 자신의 약한 부분을 숨기려 들었고 순진한 편인 주니어는 요령에 넘어가는 편이었지만 키스는 그 요령마저도 반쯤은 벗겨낼 수 있다. 요령 뒤에 숨은 얼굴은 솔직하고 직설적이라 그를 도발해 벗겨내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다. 요즘의 페이스는 유독 더 말랑말랑하게 굴었기에 건들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오늘의 페이스는 아니었지만.

    잔뜩 젖어서는 형형하게 빛나는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그는 페이스가 제발 물러서 달라고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안아달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마 그 자리에서 페이스가 그렇게 웃어대지만 않았더라면 두 사람은 타워에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페이스의 마음에 변화를 가져온 게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키스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린다. 들어가, 키스. 급하게 나왔는지 평소라면 완벽하게 말라 있을 머리가 젖어있다. 아직 씻지 않은 그를 위해 서둘렀을 것이 분명했다. 이런 녀석을 어떻게 귀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머리 똑바로 말려.”



    축축한 머리를 슬쩍 누른 키스가 페이스를 스쳐 지나갔다. 시선이 뒤따라오는 것이 느껴졌지만 돌아보지 않자 이내 아쉽게 떨어진다. 욕실 문을 닫은 키스가 남은 속옷까지 벗어버리고는 샤워 콕을 돌렸다. 페이스가 잠들어 자신의 동요를 숨겨버리기 전에 찔러봐야만 했으니 꽤 급했다.


    방에 들어가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샤워를 끝낸 키스를 맞이한 것은 홀로 소파에 앉아있던 페이스였다. 디노는 먼저 방에 들어갔어. 주변을 둘러보는 키스의 행동에 디노의 행방을 알린 페이스가 제 옆을 톡톡 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리 와, 키스. 내가 개냐 ……. 너 아까 생각하고 있지 투덜거리면서도 페이스가 앉아있던 소파에 기대듯 앉은 키스의 뒤로 드라이기를 들고 돌아온 페이스가 선다.



    “오오, 웬일로 이런 서비스를”
    “날 데리러 오다가 맞은 거니까.”



    물론 나는 오지 말라고 했고 키스는 우산도 없이 왔지만. 꼭 한마디를 더 해서 내 감동을 빼앗는다니까. 작은 투덜거림은 이내 작동하기 시작한 드라이기의 소음에 묻힌다. 섬세한 손끝이 키스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혹여 뜨거워하거나 불편스러워할 것을 우려했는지 적당한 미풍이 키스의 머리를 흔들었다. 스르륵 눈을 감은 키스의 귓가로 달콤한 미성이 파고든다.



    “오늘도 그렇고 그동안 수고 많았어, 키스.”
    “…너무 갑작스러운데”
    “그렇지만 귀찮았잖아. 키스가 여태껏 해준 거로도 충분해.”
    “페이스.”



    굳이 모양을 낼 것도 아니고 긴 머리도 아닌 터라 키스의 머리를 말리는 건 그렇게 오랜 시간을 소요하지 않았다. 전원이 꺼진 드라이기를 내려둔 페이스가 가벼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제 더는 데리러 오지 않아도 괜찮아. 돈도 갚지 않아도 되고.”
    “너 말이야. 대화할 땐 얼굴을 마주하라고.”



    낮아진 목소리에 페이스의 눈이 동그래지는 순간 그의 몸이 허공에 떠오른다. 뭐, 뭐야 목소리를 높여봤자 반항할 수는 없었다. 소파 뒤쪽에 있던 몸이 소파 위로 털썩 앉혀진 후에야 그는 제게 바짝 다가온 키스를 인지했다. 어둑하게 가라앉은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페이스는 제 마음대로 시선을 돌리지 못하고 몸을 굳혔다.



    “회피하는 버릇, 요즘은 꽤나 고쳐졌나 했더니 아직 완전히는 못 고쳤나 보네.”
    “키스가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는데.”
    “왜 갑자기 그만두게 하려는 건데”
    “…그게 문제였어 몇 번 해보니까 이제 떨쳐낼 요령도 알겠고, 키스랑 시간 맞추는 것도 불편하고,”
    “핑계 대지 말고.”



    무릎 위에 놓였던 손목이 아프도록 틀어 잡혔다. 읏, 저절로 인상을 찡그리자 아주 약간, 가해지던 힘이 약해졌다. 그러나 그에 신경 쓸 정신 따위는 없었다.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것도, 도망가려고 이리저리 해보는 것도 귀엽긴 해. 다만 나는 인내심이 짧은 덜된 인간이라서 말이지. 더 도망가려고 드는 건 못 견뎌서.”



    그렇지만 네가 확신이 안 선다면 멘토로서 조금은 도와주도록 하지. 갑자기 성격 나쁜 웃음을 짓는 키스의 꿍꿍이를 채 파악하기 전에 입술이 닿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에 페이스의 눈이 크게 뜨였다. 교활하게 입을 파고든 혀와 상냥하게 뺨을 쓸어내리는 손가락이 공존하고 있는 상황은 아무리 페이스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는 몸에 익은 대로 입을 더 벌리고 혀를 섞다가 문득 이 상황을 인지한다.

    퍽, 소리가 나게 밀쳐진 키스가 제 엄지로 입가를 훔치는 꼴을 기다리지 못하고 새빨개진 얼굴이 된 페이스가 눈을 부릅떴다. 미쳤어, 키스 뭐 하는 짓이야 너 소리 지르면 들린다. 방 안에 디노 있다며 키스야말로 그걸 알면서 지금, 시근덕대면서도 키스의 말에 따라 목소리를 낮춘 페이스의 표정이 뾰족하기 짝이 없다. 잔뜩 경계하는 모습에도 키스는 웃기만 해서 더 페이스를 화나게 했다.



    “지금 무슨 짓이야”
    “판 깔아주는 짓.”
    “농담하지 말고, 키스.”
    “똑똑한 너라면 알아들었을 텐데, 페이스.”



    페이스가 멈칫하는 사이에 키스는 페이스의 손을 끌어당긴다. 이미 다 알려줬으니까 답만 내놓으면 되는데 뭐가 그렇게 무서워 …놀리는 거라면 그만둬. 진짜 짜증 나니까. 놀리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할 건데



    “그건…….”



    페이스가 입을 달싹거린다. 마주 잡은 손에 땀이 배이는 것이 느껴진다. 그것이 키스의 것인지 페이스의 것인지, 혹은 두 사람 모두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속눈썹 긴 눈이 긴장을 머금고 빠르게 깜빡거렸다. 몇 번이고 망설이던 입술에서 작은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것 봐, 용기 있잖아. 너. 작게 키득거린 키스가 맞잡지 않은 손으로 페이스의 얼굴을 잡아 들어 올린다.


    직전과는 다르게 페이스는 반항 대신 얌전히 눈을 감고 제 숨과 키스의 숨이 섞이는 순간을 만끽했다.
    Tap to full screen .Repost is prohibited
    💯💯👍👍💞💞👏👏💕💕😍😻☺💗💞💒💴💴
    Let's send reactions!
    Replies from the creator

    recommended wo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