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Search
    You can send more Emoji when you create an account.
    Sign Up, Sign In

    helios_dull

    @helios_dull

    ☆quiet follow Send AirSkeb request Yell with Emoji 💖 👍 🎉 😍
    POIPOI 77

    helios_dull

    ☆quiet follow

    🍺🎧 [キスフェイ] 죽음의 끝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시간은 끝난 지 오래. 페이스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누구에게도 첫 번째가 된 적이 없었다.
    부모님에게는 자랑스럽고 완벽한 장남 브래드가 있었고, 브래드는 페이스가 세계를 바라보는 창이었지만 브래드에게 페이스는 어떠한 설명도 해명도 필요 없이 내칠 수 있는 존재였다. 오스카는 말할 것도 없었다.
    빌리와도 서로 선을 절대 넘지 않는 표면적인 친구 관계, 수많은 여자친구를 사귀었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그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했고 누구도 페이스를 유일한 사랑으로 여기지 않았다. 형을 쫓은 게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결국 브래드를 따라 된 히어로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슈퍼 히어로 제이부터 제 멘토들한테까지 페이스는 브래드 빔스의 동생이었다.

    브래드에게 내쳐졌던 그 날 이후, 페이스는 누구의 선도 넘지 않았다. 선을 넘어간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선도 넘도록 허락해야 한다는 이야기. 의식하고 넘지 않으려 했다. 페이스는 또다시 예고 없는, 이유 모를 거부를 겪고 싶지 않았다. 그는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선을 잘 알아야만 했다.
    아직 어린 데다가 눈치가 없는 편인 오치비쨩은 몰라도 키스와 그는 서로가 동지임을 알아차렸다. 빌리와 비슷한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그러나 선은 넘지 않은 관계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키스는 자신을 짜증 나게 만들기 위해 페이스의 역린을 건드리며 그 선을 성큼 넘어버렸다. 그렇다면 나도 갚아주겠어. 못 이기는 척 오치비쨩을 따라서 로스트가든으로 향한 건 엄연히 키스가 그어놓은 선을 무시하는 행위였지만 시작은 키스가 먼저였으니까, 하고 그는 저를 배신감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키스의 시선을 무시했다.

    가볍게만 생각했다. 선을 넘었다고 그 또한 선을 넘는 것으로 복수하다니 페이스 자신답지 않았다. 여지껏 선을 넘으려는 사람들을 다 쳐냈다는 것을 바로 떠올려냈어야 했다. 깨달았을 땐 이미 늦어버린 후였다.

    자기 일에는 다소 둔하게 굴었지만 페이스는 키스의 선을 알고 있었다. 그는 정이 많다 못해 헤픈 남자였지만, 그중에서도 키스가 특별히 더 사랑하는 것들은 따로 있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브래드와 디노, 제이, 릴리 교관, 그어놓은 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키스를 향해 직진돌파를 했던 오치비쨩. 그들이 키스의 우선순위였다.
    오치비쨩과 함께 키스를 찾으러 갔고, 그와 함께 로스트가든에 잠입했던, 키스의 첫 루키. 타인보다는 가깝겠지만 페이스는 제 위치가 어중간함을 알고 있었다. 모른 척 선 안으로 들어가 버리기엔 오랜 시간 쌓여온 습관과 불안이 막았다.

    키스는 페이스의 장례식에서 울어주고 슬퍼하겠지. 그러나 결국 극복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했다. 디노 같은 특별 취급 같은 거 받을 리 만무했고.

    그래서 페이스는 제 감정을 내보이는 대신 입을 다물고 오히려 제 선을 더 굵게 그었다. 다정한 그가 제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기를. 그래서 지금 받고 있는 애정이나마 유지되기를 소망했다. 그런 날이 지속되던 어느 날, 어마어마한 공격이 밀어닥쳤다.

    능력을 써도 써도 적은 끊임없이 밀고 들어오는 상황, 끝나지 않는 대치에 지친 몸은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을 공격을 허용했다. 그 공격은 별것 아니었으나 장소가 문제였다. 앗, 할 틈도 없이 페이스의 몸은 지극히도 높은 곳에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아, 끝이겠다.

    그의 서브스턴스로는 도저히 상황을 바꿀 수 없었다. 디노의 빠른 움직임으로도 그를 구하는 건 불가능하다. 키스도 능력을 너무 많이 써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정이 많은 키스는 울어주겠지. 울게 해서 미안해, 하고 닿지도 않을 사과를 하면서도 내심 그가 조금 오래 괴로워해 주기를 소원하며 입술을 깨문 순간, 잠깐이나마 떨어지는 속도가 줄었나 했더니 이내 강한 힘이 그를 끌어안아 왔다. 질끈 감았던 눈을 뜬 페이스는 제 몸을 끌어안은 이를 보고도 죽음 직전에 보는 환상인가, 의심했지만 이 선명한 감각이 환상일 리는 없었다.



    “-키스 미쳤어 능력 쓸 수 있어”
    “너 내 품에 끌어당기느라 탈탈 털었어, 무리.”
    “지금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죽겠지. 그럼 어떻게 하냐.”



    다 포기하겠다는 얼굴을 한 너를 본 순간 몸이 먼저 움직였는데. 소용없음을 알면서도 저가 먼저 떨어지기 위해 페이스를 제 위로 안은 키스가 페이스의 눈가를 닦고는 속삭였다. -아직 너한테.


    말을 끝내지 못한 채로 두 사람의 추락이 끝났다.









    “이야,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완치하면 네놈은 내가 죽여주도록 하지. 죽는 걸 원하는 것 같으니까.”
    “너희 루키가 겨우 살린 목숨을 없앨 셈이냐”



    페이스가 떨어진 걸 본 키스가 그를 제 품으로 끌어안기 위해 아주 약간 그의 추락을 늦춰 단 몇 초를 벌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몇 초 동안 능력을 써 급하게 오스카가 데려온 윌이 두 사람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식물을 불러내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그대로 아스팔트 위에 떨어져 즉사했을 것이다.
    충격을 완벽하게 흡수해주지 못했던 까닭에 뼈가 잔뜩 부러지고 서브스턴스의 치유력으로도 한동안 요양해야 할 만큼 중상을 입은 탓에 두 사람 다 병동행이었다. 아직 침대 밖을 벗어날 수도 없지만 겨우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해진 상황에서야 브래드와 별 의미 없는 잡담을 하던 키스가 페이스는 어때, 하고 물었다.



    “네가 꽉 끌어안고 충격을 대신 해준 덕에 너보단 덜 다쳤고, 혼자 걸을 수도 있는 상태다. …널 보러 오기 싫어서인지 못 움직이겠다고 하고 있지만.”



    생명의 은인이건만, 그를 구하다 이렇게 다쳤건만 찾아오지도 않는 모습은 괘씸히 여겨도 모자랐다. 그러나 브래드가 페이스를 강제로 끌고 오지 못했던 건 깨어나서 키스의 상태부터 물었던 페이스가 보인 이상 반응 때문이었다. 안도와 기쁨은 잠시, 경악과 죄악감이 가득한 얼굴을 했던 페이스는 오늘까지도 키스를 보지 않겠다며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디노나 주니어가 달래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가 있는 듯했기에 키스에게서 무언가 반응을 끌어내려 했지만 키스는 애매하게 그러냐, 하고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잠시 침묵하던 키스가 다시 브래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걔, 내가 깨어난 건 알고 있어”
    “디노가 자주 찾아가고 있으니까 알겠지.”
    “그럼 내가 아직 회복이 덜 되어서 하루의 대부분은 잔다고 해.”
    “무슨 꿍꿍이지”



    브래드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대신 키스는 의뭉스럽게 웃다가 약 기운이 몰려온다며 눈을 감을 뿐이었다. 몸이 멀쩡했다면 한 대 후려쳤을 텐데, 실제로도 키스는 아직 안정이 필요한 상태였으므로 브래드는 아쉬운 마음을 내리눌렀다.


    문은 아무 소리 없이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들어오는 발걸음도 나긋나긋,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조용한 병실 안으로 들어선 인영은 방 가운데에 있는 침대로 다가섰다. 아직 몸 군데군데에 붕대를 감은 채 자고 있는 키스를 바라보던 페이스가 조심스럽게 그의 옆에 앉았다. 붕대 위라도 만질까 말까, 머뭇거리던 손이 차마 닿지 못하고 멀어진다.



    “키스, 자”
    “…….”
    “왜 그렇게 미련한 짓을 했어 윌이랑 오스카가 아니었으면 키스까지 정말 죽었을 텐데.”
    “…….”
    “마지막에 하려던 말은, 대체 뭐였어”



    뻔히 자고 있는 걸 알면서도 페이스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질문을 던졌다. 키스보다 먼저 깨어난 이후로, 페이스는 계속 추락하기 직전의 순간에 머물러있었다. 당시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키스랑 죽을 수밖에 없다고,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 그렇게 죽음을 목전 앞에 둔 채로 페이스는 체념하면서도 동시에 아주 약간이나마 만족감과 아쉬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환멸감을 느꼈다. 혼자 죽지는 않겠다는, 그리고 상대는 키스라는 것에 대한 안도, 키스의 감정이 제 생각보다 더 깊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로 흘려보낸 시간에 대한 아쉬움.
    지극히 이기적이고 누구한테도 드러내 보일 수 없는 음습하기 짝이 없는 감정은 당사자인 키스에게조차도 꺼낼 수 없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키스가 너무 보고 싶어서, 키스가 저를 감싸고 뛰어내린 이유가 궁금해서, 키스가 하려던 말은 페이스가 기대하고 바라왔던 말과 같은 맥락인지 알고 싶어서, 그는 잠든 시간을 틈타 숨어들어왔다.
    키스가 제 이기적인 모습을 알면 어떤 눈으로 볼지 무서워 그가 깨어있지 않기를 바랐지만, 또 깨어있는 그가 보고 싶었다. 정말로 살아있는지, 얼마나 다쳤는지 직접 보고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입으로 말해줬으면 했다.



    “이미 말했잖아, 네 얼굴 본 순간 그냥 몸이 먼저 뛰어내렸다고.”
    “…역시 안 잤지”
    “네가 올 걸 알았으니까.”



    아직 몸을 움직이기가 힘겨운지 끙, 소리를 내면서도 팔을 뻗어 페이스의 손을 잡은 키스가 혀를 찼다. 왜 이렇게 차갑냐. 추워 아니. 키스의 물음에 살며시 고개를 저은 페이스가 키스와 담담하게 눈을 맞췄다. 얼굴 멀쩡하네, 다행이다. 농담 섞인 말투에도 웃지 않던, 정확히는 웃지 못한 페이스가 잡힌 쪽이 아닌 반대쪽 손을 들어 키스의 메마른 입술을 더듬었다가 그의 뺨을 쓸어내렸다.



    “키스, 대답 못 들었어. 마지막 말 뭐였어”
    “정말 못 들었어”
    “못 들었어.”
    “진짜”
    “키스.”
    “…듣지 않았어도 예상하고 있지 않아 너는 머리가 좋으니까.”



    웃음기 쏙 빠진 부름에 키스가 슬며시 물었지만 페이스는 그저 입을 다물었다.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한 탐색의 시간이 잠깐 스쳐 지나가고, 졌다는 듯 키스가 웃었다.



    “아직 너한테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했는데.”
    “…….”



    페이스가 입을 달싹였지만 나오는 소리는 없었다. 그러니까 살아있을 때 하고 말할래. 제 뺨을 만지던 페이스의 손을 끌어당겨 그 손바닥에 입을 맞춘 키스는, 손을 놔주지 않은 채 입술을 움직였다.



    “…너는”
    “내가 그 순간에 혼자 죽지 않아서, 같이 죽을 상대가 키스여서 기뻤다고 해도 괜찮아”
    “오히려 다른 새끼였으면 기분 나빴겠지.”



    이리 와, 작게 속삭이며 페이스를 잡아당기는 키스의 힘은 평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약했지만 그는 어떠한 저항도 없이 키스의 옆에 누웠다. 쿵, 쿵, 들리는 심장 소리에 페이스가 눈을 감았다. 무리해서 오긴 했지만 페이스도 엄연한 환자, 긴장이 풀리자 몸에서 힘이 쭉 빠져 도저히 자신의 병실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이거 꿈은 아니지”
    “꿈이면 일어나자마자 찾아오면 되지.”



    다정하게 속삭이는 말에 페이스는 더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의식 속으로 가라앉았다. 옆에 사람이 있어서일까, 평소보다 깊은 잠에 든 페이스는 키스의 연락을 받고 새벽에 찾아왔던 디노에 의해 제 침대로 돌아갔고, 깨어난 후에는 지난 대화가 현실이었는지 정말 꿈이었는지 구분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결국 하얀 발은 침대 옆에 놓인 슬리퍼를 신었다. 제 병실을 나선 페이스는 천천히 키스의 병실 문을 열었다. 저에게로 고개를 돌린 키스가 아침 햇살 속에서 웃었다.

    약속을 지켰네, 착하다.

    달콤하기 짝이 없는 말이 현실이었다. 굵게 그어두었던 선은 너무나도 눈이 부신 햇살과 진심 가득한 키스의 웃음에 의해 지워졌다.

    페이스는 병실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더이상 그의 앞을 막는 선은 없었다.
    Tap to full screen .Repost is prohibited
    ☺😭💘😭☺😭💘😭☺😭❤❤❤❤❤❤❤❤❤❤😭😭😭😭👏👏😂😂😂💞💞💞💞💗💗👍👍😂😂☺☺👏👏👍😍😭❤💗💗❤❤❤❤❤❤❤❤❤❤
    Let's send reactions!
    Replies from the creator

    recommended wo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