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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써야만하는...어쩌구...
    다음 조각글입니다.

    3며칠동안 카게야마 명패가 달린 고저택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카게야마 가문의 고저택 일부분은 서양식으로 개조되었지만 대부분은 전통 방식 그대로였다. 사람이 자주 거주하는 방은 전기선이 연결되어 있지만 그외의 다른 방들은 안 그랬다. 학교는 매일 아침 7시에 나서야지만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빠듯하게 도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아침잠이 많은 레이겐에게는 약간 버거운 일이었다. 새벽 6시가 되면 기모노와 하카마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세살배기 아이가 자신을 깨우러 온다. 레이겐 형, 일어나세요. 아직 아이라 혀짧고 불분명한 발음을 들으며 눈을 뜨면 선하고 둥근 눈이 제 머리 위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그 애는 고작 세살 밖에 되지 않는데도 항상 일찍 일어나서 신사의 사당에 깨끗한 물을 떠놓고 주변에서 색실공을 가지고 놀았다. 그 애의 부모 되는 사람들은 이 집에 머물지 않는 듯 했는데, 엄마 아빠가 없냐는 말에 시게오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리츠가 많이 아파요. 아마 리츠라는 시게오의 동생 때문에 잠깐 여기에 맡겨 둔게 아닌가, 하고 레이겐은 추측할 따름이다.

    학교는 전교생이 100명도 채 되지 않는 공립 고등학교로, 편차치가 낮은 건 아니지만 레이겐이 다니던 고교에 비하면 한참 못미치는 수준이다. 도시에서 갑자기 전학 온 소년으로 단번에 이목이 쏠렸으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레이겐이 카게야마 저택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소문이 교내에 쫙 퍼지지자 동급생들은 내심 그를 기피했다. 소문이 다 퍼지는데에는 이틀도 채 걸리지 않았다.

    레이겐 군, 거기 진짜 요괴 나온다면서.

    활발해 보이는 남자애가 그에게 그렇게 물었지만 레이겐은 이 집에 머무른지 며칠 되지 않았거니와, 애초에 그런 미신따위는 전혀 믿지 않음으로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럼 넌 카게야마 사람들이랑 친척이야 그런 질문에도 고개를 저어보이자 시시하네, 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아마 추측건데 카게야마 가문이 모시고 있는 신당은 이 지역에서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어딜 가든 부담스러운 시선이 따라왔다. 레이겐은 아예 쉬는 시간 마다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그럼 외부와 분리된 듯 살짝 붕 뜬 기분이 든다. 차라리 그게 나았다. 에어컨도 없는 시골 고교의 선풍기가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동안, 국어 선생님이 하이쿠를 읊었다. 레이겐은 그것을 턱 괴고 들으면서 교과서와 함께 펼친 참고서의 문제를 풀었다.

    어느새 여름방학은 일주일 정도 남았다. 오래된 마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 되는데, 그럴 때 마다 마루를 닦던 부인이 레이겐에게 살갑게 인사를 해 주었다. 가끔은 부인의 남편되는 사람도 같이 서서 청소를 할 때도 있었다. 이 집에서 살림과 청소, 육아를 도맡은 영감과 부인의 성은 반쇼라고 했다. 며칠밖에 되지 않았지만 신사에 외부인들이 가끔 드나들 때 마다 그녀는 손님에게 방을 내어주었고 시게오와 손님이 뭐라뭐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기는 했는데 레이겐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대입 시험 대비로 바빠서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저녁을 먹고 늦게까지 공부를 하다보면 꼭 시게오가 다다미 문틈 사이로 그를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반쇼 부인에게 몇번이고 공부 방해하면 안된다는 주의를 받아서인지 그렇게 서 있는 듯 했다. 말랑하고 창백한 볼살에도 호기심 어린 눈빛은 사라지지 않아서 그럴 때 마다 레이겐은 시게오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그러면 그 애는 레이겐이 주는 노트 종이에 무언가를 그리거나, 쓰거나, 아니면 색실공을 만지작거리거나, 레이겐의 무릎에 앉아서 그가 무엇을 하는지 빤히 바라보았다. 레이겐은 동생이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지만,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면 시게오와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시게오의 새까만 머리카락은 무척 부드러웠고 향긋한 우유 냄새가 났다. 분유를 먹지 않는 아이인데도 그랬다. 아이가 저 때문에 이따금씩 크게 웃음을 터트릴 때 마다 바람이 불지 않는 곳인데도 새까만 머리카락이 푸른 빛이 돌면서 작게 너울거리곤 했다. 그것이 신기해 손바닥으로 머리카락을 몇번 문지를 때 마다 주변의 모든것이 가볍게 붕 떠오르는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시게오를 무릎에 앉혀놓고 공부를 하고 있으면 아이의 따뜻한 체온 때문에 절로 졸립다. 덕분에 안그래도 낯선 환경에서 공부하기 어려운데 자꾸 진도는 더디게 나가는 중이다.

    "레이겐 형, 이건 뭐예요"

    "2차 함수 방정식."

    "그게 뭐예요"

    "x축이랑 y축을 기준으로 그래프를 그릴 때 필요한 거."

    대충 아무렇게나 있는대로 대답해주면 이해하지도 못하는 답에 대해 납득한건지 아이는 멍한 표정을 짓는데 그게 꽤 귀엽다고 생각한다. 시게오는 엄지를 빨다가 레이겐의 가슴팍에 고개를 묻었다. 재미없어요. 그래 재미 없는 게 맞아. 그러다 9시가 넘어가면 아이는 품에서 잠이 든다. 매번 다다미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반쇼 부인이 미안하다는 듯 눈썹을 늘어뜨리며 레이겐에게 사과했다.

    "미안해라, 레이겐 군. 시게오 도련님이 많이 귀찮게 구시지"

    "아뇨. 괜찮아요. 동생 생긴 것 같아서 좋아요."

    반쇼 부인이 시게오를 안아들면서 레이겐에게 미안한 듯 고개를 숙인다. 그럼 그 때 부터 레이겐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서는 바다 건너 서양에서 부른 노래를 흥얼거리며 문제집을 풀거나, 이따금씩은 숨겨둔 만화책을 읽었다. 그러다보면 잘 시간이 되고 하루가 끝난다.

    분명 그런 패턴일 터였다.





    "레이겐 군, 어머니랑 아버지 오셨어."

    반쇼 부인이 다다미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레이겐은 방금 막 학교를 다녀오던 참이었다. 돌담과 나무 대문 밖에 주차된 차가 많으니 오늘은 카게야마 가문에 손님이 많이 왔구나 생각했지만 반쇼 부인은 정말 바빠보였다. 항상 혼자서 저택에서 일을 했었는데 오늘은 그녀를 돕는 다른 사용인들이 많았다. 그동안 신사 치고는 보이지 않던 무녀도 간간히 보였다. 겉 모습만 신사인게 아니고, 진짜 신사 역할을 하긴 했구나 레이겐은 내심 그렇게 생각했다. 열린 다다미 문 밖으로 맛있는 냄새가 났다. 고기 같은걸 굽는 듯 했다. 반쇼 씨, 빨리 와서 도와줘요 그 말에 부인은 알겠다고 크게 대답을 하고는 이내 사라졌다.

    셋 밖에 없던 저택에 언제 이렇게 손님이 많이 왔는지 인기척으로 부산스러웠다. 시게오는 비슷한 새까만 기모노를 입은 어른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무표정하던 어린애와 레이겐의 시선이 마주치자, 아이는 반가운 듯 현관으로 가는 레이겐을 따라 종종 하카마 바짓자락을 끌며 걸어왔다. 시게오 도련님, 이야기는 마저 듣고 가셔야지요. 그 말이 시게오의 뒤를 쫒아왔으나 아이는 모른 척 무시하는 것 같았다.

    현관에는 레이겐의 모친과 부친이 서 있었다. 봄에 이사하기 전 본 것이 마지막이니, 몇 달 만에 보는 얼굴들이다.

    "오랜만이네, 아라타카. 누나랑은 잘 지냈어"

    레이겐의 모친이 웃으며 반겨주었지만 레이겐은 말 없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말았다. 현관에 서 있는데 뒤에 젊은 부부가 들어왔다. 레이겐의 바짓자락을 잡고 서 있던 시게오가 반갑게 말했다. 엄마. 시게오가 매일 일본 전통 복장옷을 입고 있어서 몰랐는데, 그들은 편안한 현대 옷을 입고 있었다. 시게오의 엄마되는 사람이 아이를 능숙하게 안아올리고서는 레이겐의 부모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이미 서로 아는 사이인 것 처럼 보였다. 그들은 함께 큰 방 옆에 있는 대청 마루로 향했다. 탁 트인 대청 마루에는 아까 낮에 본 중년 남성을 포함한 손님들이 커다란 나무 탁자에 줄지어 앉아있었다. 어림잡아서 한 스무 명 되어 보이는 중년 남자들과 여자들은 양복, 혹은 기모노를 입고 있었는데 그들의 시선이 단박에 레이겐에게 쏠렸다. 레이겐의 친척도 거기에 있었다. 자신을 볼 때마다 으름장을 놓던 늙은 친척 몇명을 보자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작게 얼굴을 찌푸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시게오의 어머니가 시게오를 안은 채 가장 끝 상석 옆에 앉았고, 상석은 비어있었다. 레이겐과 레이겐의 가족들은 객이었음으로 상석에서 가장 먼 곳에 안내받아 다다미 위에 무릎 꿇고 앉게 되었다. 그런데 여긴 왜 오게 된거예요. 저기 당숙님은 왜 계시고요. 레이겐은 어머니에게 작게 고개를 숙여 물었고 어머니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반쇼 부인이 다른 부인들과 함께 바쁘게 저녁 상을 날랐다. 레이겐은 어른들 틈에 끼여서 무릎을 꿇고서는 불편하게 밥을 먹었다. 어른들 끼리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오갔다. 대부분은 신사의 처우에 대한 이야기와 시게오 도련님이라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군가가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신사에서 혼례를 치르자는 의견과, 약식으로 치르자는 의견으로 반반 갈렸다. 어차피 본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음으로 레이겐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다 말고 아까 버스에서 외우다 만 영어 예제문을 생각하면서 생각없이 밥알을 씹고 된장국을 삼켰다. 그러던 중 레이겐의 옆에 앉은 한 남자가 소년에게 물었다.

    "얘야, 왜 네가 왜 여기에 왔는지 알고 있니"

    기모노를 입은 지긋한 인상은 시게오의 단정한 이미지와 닮아있었다. 시게오의 부모 되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볼 법한 보통의 평범한 삼십대 부부였지만 카게야마 가문 사람들의 얼굴이 대부분 그랬다. 레이겐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이 저택에 오면서 신사를 봤지 우리 신사는 살아있는 신을 모시고 있단다."

    그 말에 레이겐은 입안에 든 밥을 계속해서 오물거리며 곱씹었다. 그거랑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 그는 버릇없게 툭 튀어나오려는 말을 밥과 함께 삼켰다.

    "그게 시게오 도련님이란다. 대단하지 않니"

    "그래서 저렇게 멋대로 전통복이 입혀진 채 부모와 떨어져서 지내는 거예요"

    결국 참지 못하고 버릇없이 말이 툭 튀어나갔다. 시게오는 처음 본 자신에게 스스럼없이 안겨들 만큼 사람의 품을 그리워했다. 부모라는 사람이 제정신이 박혀있으면 치렁치렁한 소매에 바짓단이 긴 옷을 입힐리가 없을 터였다. 레이겐의 작은 분노가 가소로운건지, 아니면 이해한다는건지, 남자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작게 웃었다. 다행히 남자는 레이겐에게 별 꾸지람 없이 은은한 미소를 띄기만 했다. 그런 미소가 되려 불편해, 레이겐은 입에 든 음식을 얼른 삼키고 제 방으로 돌아왔다.

    왜인지 모르게 치밀어오르는 화를 꾹 누르며 단어장을 훑고 있는데 다다미 문이 열리더니 레이겐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들어왔다. 레이겐의 부친은방을 한번 둘러보고서는 좋은 방이네, 라고 중얼거렸다. 구석에 처박아둔 이삿짐을 본 어머니가 아직 이삿짐을 다 풀지도 않았다며 잔소리를 했고, 레이겐은 작게 입을 비죽 내밀었다.

    "두분 오셨을 때 풀려고 했어요. 그나저나 진짜 왜 저희는 여기에 이사온 거예요"

    "카게야마 가와 정략결혼 때문에."

    레이겐의 부친이 담담하게 말해서 레이겐은 순간 자기가 이야기를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누나가요 그 말에 부친이 한숨을 깊게 쉬었다.

    "네가 해야돼."

    "왜요"

    "우리도 원래 시키고 싶지 않았어.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주가 내린다잖아."

    레이겐은 그 말에 콧웃음 치며 웃었다.

    "아버지는 그런거 안 믿으시는 줄 알았는데. 지금 겨우 그딴 미신 때문에 대입을 반 년 남기고 제가 여기 산골짜기에서 살아야 한다고요"

    봄부터 지금까지 꾹 눌러왔던 짜증이 폭발했다. 솔직히 아버지의 전근 때문에 머물 곳이 없었으니 어쩔수 옮겨야 한다는 것 까지는 이해했다. 하지만 전근이 아니라 무슨 이상한 정략결혼 때문에 온거라니. 머리가 어떻게 된거 아니야 레이겐은 주먹을 꾹 쥐다가 이내 제 방 밖으로 뛰어나가버렸다. 아라타카 아라타카 얘, 아라타카, 잠깐만 뒤에서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레이겐은 그것을 무시하고서는 운동화를 신고 토리이 밖으로 뛰어갔다. 밖에서 담배를 피던 반쇼 영감이 레이겐을 보고서는 아는 채 했다. 레이겐 군, 지금 시간이 늦었는데 어디로 가 레이겐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은 채 입을 앙 다물고서는 나무 대문 밖을 나갔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누나랑 전에 살던 도시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돈은 없지만 어떻게든 구걸이라도 해서든 아니면 기차에 몰래 타서든 돌아갈 생각이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은 무척 어두컴컴하고 벌레 우는 소리로 가득했다. 초여름이라지만 해가 지니 조금 쌀쌀했다. 레이겐은 누가 따라올 새라 계속해서 뛰었다. 얼마나 뛰었는지 모르겠지만, 제 뒤에서 자신을 쫒아오던 어머니의 부름이 들리지 않는걸 보니 따돌린게 확실한 듯 싶었다. 숨이 가슴 끝까지 차올랐다. 버스를 타고 어디로 가야되더라. 사실 이 동네 버스 노선은 다 외우지 못했다. 한참 버스 정류장 앞에서 고민하던 레이겐은 제일 먼저 도착한 아무 버스나 타기로 마음 먹었다. 공교롭게도 레이겐이 매일 등교할 때 타고다니던 버스가 와서 섰다. 사실 버스 노선이 몇개 없어서 거의 반반 확률이긴 했다만은.

    한참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린 버스는 깜깜하게 해가 진 상가앞에 레이겐을 내려다 주고서는 떠나갔다. 레이겐은 버스 정류장 앞에 쭈그려 앉고서는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용돈이 든 동전지갑과, 맨날 듣던 MP3와 줄 이어폰 밖에 없었다. 이걸로 누나가 있는 도시까지 어떻게 가. 레이겐은 그대로 정류장 벤치에 주저 앉아서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어룽거리는 상점가의 등을 보면서 아침까지 어디서 밤을 샐지 궁리를 하는데, 버스 정류장 앞에 작은 소형차 한대가 미끄러지듯 와서 섰다. 유리창이 내려가자 낯익은 얼굴들이 있었다.

    "레이겐 군."

    시게오의 어머니가 운전대를 잡은 채 웃으며 레이겐에게 손짓했다.

    "아까 우리 인사 했죠 본가 현관에서요."

    "아, 안녕하세요."

    뒷 자석에는 시게오가 유아용 카시트에 앉아있었다. 차 대고 올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줄래요 레이겐 군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그래요. 그녀는 그렇게 물었고 당장 집을 가출했어도 별 뾰족한 수가 없었던 지라, 레이겐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점가에 차를 댄 카게야마 여사는 시게오를 안은 채 찻집에 들어섰다. 첫날 학교를 땡땡이 치고 갔던 찻집이다. 이른 점심시간과 다르게, 저녁 시간이 되자 나이든 손님이 몇몇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는 곳인지라 자신도 모르게, 아, 소리를 내자, 그녀가 짧게 후후, 소리를 내며 웃었다.

    ​"여기 와 본적 있어요"

    "네, 저번에 한 번..."

    "여기는 오래전 부터 알던 가게인데, 뭐든 다 맛있지만 특히 안미츠가 맛있어요. 오늘 제가 사줄게요."

    그녀는 테이블에 앉아서 안미츠 두개를 주문했다. 테이블은 여전히 끈적했다. 오랜만에 보는 엄마가 좋은지 시게오는 활발하게 카게야마 여사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레이겐 형이랑 엄마랑 같이 나오니까 좋아요. 그 말에 카게야마 여사의 눈썹이 살짝 슬픈 듯 모였다. 이내 작은 그릇에 팥과 떡, 과일 말린것과 아이스크림을 얹은 디저트가 나왔다. 아이스크림과 팥을 같이 떠서 먹자 더위가 살짝 가시는 듯 했다. 시게오가 얌전히 앙고가 든 떡을 오물거리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떡이 떡을 먹는 모습 같아서 레이겐은 저도 모르게 시게오의 뺨을 손가락으로 찌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이사와서 많이 힘들죠"

    "아뇨, 뭐..."

    레이겐은 반 쯤 녹은 아이스크림을 스푼으로 휘적거렸다. 팥이랑 녹은 아이스크림이 섞여서 엉망이 된 것을 떠서 입에 넣자 시원한 감촉보다는 크림이 텁텁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안미츠는 맛있었다. 시게오의 뺨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닦아준 모친이 물었다.

    "결혼 이야기도 들었어요"

    "...네. 뭔지는 모르겠지만 정략결혼이라고 하던데."

    "역시 갑자기 우리 시게랑 결혼 해 달라고 하면 이상하겠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가볍게 웃었다. 레이겐은 살짝 경악한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시게오랑요 레이겐은 아이스크림을 크게 떠먹는 세살배기 꼬마를 가리켰다. 그녀는 잠깐 주변을 돌아보더니 레이겐에게 고개를 숙여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실 우리 시게는 초능력자거든요."

    "초능력자요"

    "네. 초능력자요."

    태어날 때 부터 가지고 있는 초능력인데, 그걸 여기에선 신의 힘이니 뭐니 그렇게 여기고 있나봐요. 그녀는 시게오의 뺨을 살짝 간질여주고서는 말을 이었다. 도시 생활을 하다가 결혼한 뒤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는 초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버렸다고. 가끔 카게야마 가문에서 그런 사람이 태어나곤 한대요. 저희는 분가여서 전혀 몰랐지만... 애 아빠 본가 어르신들이 불러대니까 결국 이렇게 여기까지 와서 살게 된 거고. 그것 때문에 리츠도 아픈가봐요. 레이겐은 여자가 사기를 치기에는 자기에게 얻을 것도 없거니와 영 짚히는 곳이 없는 것도 아니여서 숟가락을 입에 문 채 말했다.

    ​"초능력인진 모르겠는데 머리카락이 가끔 곤두서는건 봤어요."

    "물건을 띄우기도 하고, 저는 영감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제령도 곧잘 한다고 전해들었거든요. 말도 통하지 않는 아기일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웃거나 울 때 마다 물건을 마구 띄우거나 흔들어댔거든요. 지금은 굉장히 능숙하게 컨트롤 하고 있는거지만... 여기에 온 뒤로 시게가 통 잘 웃지 않아서 걱정이었거든요. 그래도 레이겐 군이랑 함께 있는 시게오는 즐거워 보여서 마음이 놓여요."

    "그거랑 결혼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저는 원래 카게야마 가문이 아니니까 잘 모르지만..."

    그녀는 한숨을 쉬고서는 말했다. 이런 걸 신이 인간의 몸을 빌어서 태어났다고 하나봐요. 인간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속세의 연이 부족한 아이는 주변의 연을 끌어당겨 생명을 연명하고 있었다. 연이 부족한 인간은 점점 속세와 얽힌 매듭이 약해져서 가벼워지고, 결국 하늘로 돌아가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죽는다는 뜻이다. 설명을 듣고 난 레이겐은 복잡한 표정으로 제 얼굴을 일그러뜨렸고,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시게오를 안아든 채 말했다.

    "솔직히 믿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서 리츠가 아픈가봐요. 병원에서도 통 원인을 모르겠다고 하니, 이런 방법 밖엔 이제 없는거죠."

    ​"근데 왜 하필 저예요"

    "그건 저보다는 집안 어르신들이 더 잘 알텐데, 무슨 약조 같은 거라고 하나봐요. 레이겐 군, 친척중에서 제일 나이가 어리죠"

    "네..."

    "그래서 아마 불려온 것 같네요. 정말 미안하지만 아이 두 명 살린다는 셈 치고 결혼 해 줄 수 없을까요. 물론 너무 싫다면 억지로 강요 할 순 없겠지만..."

    "그거 무슨 법적으로 기록에 남는 거 아니예요..."

    레이겐은 남은 안미츠를 싹싹 긁어서 입안에 넣고서는 전부 꿀꺽 삼켰다. 단 걸 너무 많이 먹어서 입안이 텁텁했다. 문득 그는 나이에 맞지 않은 복장을 입은 그 애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한참 엄마 품에서 어리광 부릴 나이의 아이가 매일 불편한 전통복을 입은 채 새벽마다 신사에 맑은 물을 뜨고, 제령을 하고, 손님들과 이야기를 하고, 아이답지 않게 잘 웃지도 못한다. 게다가 혼약하지 않으면 빨리 죽어버린다고 하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그는 입에 물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고서는 말했다.

    "알았어요, 까짓거 할게요."

    말씀 하신대로 애 살린다 치고... 그는 결국 한숨을 쉬었다. 시게오의 모친은 몇번이고 레이겐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며 고개를 꾸벅 숙여보였다. 제 엄마가 고개를 숙이는 이유를 몰라 시게오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들은 차를 타고서는 카게야마의 저택으로 다시 돌아왔다. 레이겐은 뒷자석에서 자신에게 재잘거리며 말을 거는 시게오의 뺨을 쿡 찌르며 생각했다. 너도 나도 참 불쌍하고 기구하구나. 레이겐은 시게오에게 물었다.

    ​"너 결혼이라는거 알아"

    "결혼"

    "그래."

    잠깐 생각하던 시게오가 레이겐의 무릎에 앉은 채 말했다. 에쿠보가 가르쳐 줬는데, 계속 같이 있는거래요. 그말도 틀린 말은 아니여서 레이겐은 시게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새까맣고 부드러운 아이의 머리카락이 제 손아귀에서 차르르 미끄러졌다. 넌 나랑 같이 있는게 좋아 네. 좋아요. 시게오는 담담하게 중얼거리고서는 레이겐의 와이셔츠에 제 고개를 묻고서는 작게 부빗거렸다. 작고 귀여운 고양이를 끌어안은 기분이 들어 레이겐은 약간 마음이 착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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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yeobmob

    MEMO그딴건 내가써야돼 6
    6토독, 토독, 새벽부터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장지문 너머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레이겐은 부스스 깨서 이부자리에서 몸을 누이며 뒤척였다. 제 머리맡에 놓인 아날로그 시계가 오전 6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비가 와서인지 해가 뜰 시간인데도 거뭇거뭇 날이 어두웠다. 그는 하품을 길게 하고서는 문득 깨달았다. 매일 새벽마다 귀찮게 깨우러 오던 시게오가 오늘은 없다. 갑자기 잠이 확 달아나는 기분에 그는 이부자리를 개고서는 다다미 문을 열었다.

    "모브"

    카게야마의 신사가 있는 고저택은 늘 조용했지만, 오늘은 특히나 더 조용했다. 절간에 온 것 처럼 비 내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는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세안을 하고서는 시게오가 쓰는 방 문을 열었다. 그 애의 이부자리는 곱게 개켜진 채였다. 부엌으로 가자 명주천으로 만든 덮개를 씌운 소반이 있었다. 그걸 열자 정성스럽게 만든 오니기리와 함께 쪽지가 두 개 놓여있었다. 이틀동안 사이타마 현에 입원해 있는 리츠 도련님을 뵈러 시게오 도련님이랑 다녀올거예요. 냉장고에 된장국이랑 옥수수 삶아뒀으니까 나중에 드세요. 레이겐은 다른 쪽지를 넘겨서 보았다. 반쇼 부인이 쓴 것 보다 약간 더 두툼한 종이에는 삐뚤삐뚤한 히라가나로 적힌 짧은 문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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