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페이스 빔스는 형만 있으면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의 형 브래드는 상냥하고, 멋지고, 자상하고, 완벽했다. 페이스가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브래드에게 찾아가면 뭐든 대답을 찾아줬고 슬프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브래드를 찾아가면 늘 상냥하게 위로해줬다.
어린 페이스에게 브래드는 세상과 페이스를 연결해주는 통로였고, 모든 문제의 해답이었다.
동시에 브래드는, 페이스에게 첫 외로움을 알려준 사람이기도 했다.
브래드가 수업을 받는 동안, 아카데미로 떠난 동안 차곡차곡 쌓이던 외로움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브래드에게 외면받은 날이었다.
브래드 빔스의 동생 페이스 빔스, 그 말이 자랑스럽기만 했던 나날들은 더이상 없었다. 브래드의 뒤를 쫓으며 이것이 옳은 길인지, 브래드의 뜻은 어떤 건지 수십 수백 번을 고민하면서도 페이스는 답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외로움을 가득 안고 보낸 세월이 한가득이었는데…….
“페이스.”
“뭐야, 이 술 냄새.”
“아하하, 키스랑 브래드랑 술 내기를 해버려서…. 둘 다 가버렸어.”
부름을 받고 온 술집, 유일하게 멀쩡한 디노가 손을 흔들며 부르자 세 사람에게 다가간 페이스가 미묘한 표정으로 그들을 내려봤다. 잔뜩 취해서 이미 상 위에 엎드린 키스는 평소와 그렇게 다를 바 없으니 패스, 술병을 옆에 잔뜩 쌓아두고도 멀쩡한 얼굴로 피자를 먹고 있는 디노도 패스, 문제는 붉어진 얼굴을 하고는 페이스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브래드였다.
“……왜 그런 눈으로 봐”
“페이스.”
“네네, 페이스 빔스입니다.”
“페이스…….”
몇 번이고 페이스의 이름을 중얼거리던 브래드가 갑작스럽게 끌어당겼다. 뭣, 하며 놀란 눈을 한 페이스는 삽시간에 제 허리를 끌어안은 브래드를 자각하고는 얼굴을 붉혔다.
“무슨 짓이야, 브래드”
“페이스, 나를 너무 외롭게 하지 마라.”
“…무슨 소리야.”
브래드의 말에 붉어졌던 페이스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투덜거리면서도 가만히 브래드 품에 안겨있던 페이스가 브래드의 팔을 힘주어 풀어냈다. 내가 언제 외롭게 했어 외롭게 한 건 언제나……. 이를 악문 페이스가 그대로 뒤를 돌아 가게를 나가버렸다.
“앗, 페이스”
“내가 나가보겠다, 디노.”
“괜찮겠어”
이미 제법 취해있는데…… 걱정스러운 디노를 안심하듯 미소 지은 브래드가 급한 발걸음으로 페이스를 따라 가게를 나섰다.
“페이스”
“…….”
다급한 부름에 성큼성큼 걸어가던 페이스의 걸음이 멈췄지만 뒤돌아보지는 않는다. 멀리서도 보일 만큼 힘을 주고 있는 손이 걱정스러워 다가간 브래드가 페이스의 등을 가만히 끌어안았다.
“-미안해, 페이스. 그저 투정이었다.”
“…내가 없으면 브래드는 외로워 그럴 리가 없잖아.”
안겨 있던 몸을 휙 돌린 페이스가 브래드를 노려본다. 키스와 디노, 오스카와 아키라, 윌, 제이, 브래드의 주변에는 언제나 페이스를 대신할 만한 사람들이 있었다. 거기에다가 브래드가 세상에서 가장 큰 존재였던 페이스와는 달리 브래드는 페이스 말고도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이 많지 않았던가.
그런 브래드가 외롭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기만당한 기분에 가만히 입술만 깨물고 있는 페이스의 입을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른 브래드가 의중을 알 수 없는 얼굴로 페이스를 쳐다보았다.
“페이스. 네가 그렇게 외로운 얼굴을 하는 게 안쓰럽고 한편으로는 기쁘다고 하면…… 어떨 것 같니.”
“…왜 기쁜데”
“네 외로움이 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거니까.”
내가 너를 늘 그리워하는 것처럼. 말랑한 입술에서 손가락을 떨어트린 브래드가 고개를 숙였다. 외로움이 너 때문이라면, 나는 평생 외로워도 괜찮아. 속삭인 브래드가 페이스의 입술 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것만으로도 진한 양주의 냄새가 전달되기엔 충분했다.
이건 다 취해서야. 페이스가 브래드의 목을 휘감았다. 그렇다면 오늘 밤 외롭지 않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브래드 뿐이겠네. 아아. 가로등에 비친 그림자가 다시 한번 겹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