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 키스,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고 하면 무얼 할래

장난스럽게 웃은 페이스가 물었을 때 제대로 답해줄 걸 그랬다. 하루종일 널 놔주지 않고 너의 목소리, 너의 표정, 너의 웃음, 너의 손짓 하나하나까지 망막에 고막에 피부에 새길 것을.
그랬더라면 더 버틸 수 있었을까. 키스는 확신할 수 없었다.

키스에게 죽음은 그리 멀지 않았다. 어릴 때는 아버지에게 맞아 죽거나, 굶어 죽거나, 약쟁이와 시비가 붙어 죽거나, 어쨌든 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 삶을 탈출하기 위해 선택한 길 또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일이었다. 어제 담배 한 대를 빌리고는 조만간 갚겠다며 웃어 보이던 동료, 가끔 지나칠 때면 꾸벅, 목례하던 직원, 하물며 디노 또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죽었다고 생각하며 살지 않았나.
그러나 죽음은 겪어도 겪어도, 익숙해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생명에는 무게를 달 수 없다고 하지만 그저 얼굴만 알고 지낸 사람과 오래도록 친하게 지내온 사람의 죽음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페이스의 죽음을 눈으로 확인해놓고, 그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그의 눈으로 목격했으면서 키스는 그의 죽음을 부정하고 싶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낯설기 짝이 없었다. 차라리 그 자신의 죽음은 고통스럽고 무시하고 싶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페이스는, 왜 그의 애인은 아직 너무 어렸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도 너무나도 많았다. 하고 싶다는 것도 다 하지 못했고, 내년 생일에는 꼭 키스가 줄을 서서, 앙셸의 한정판 쇼콜라를 사다 달라고 눈을 휘며 웃었다. 그러나 그 생일이 있는 계절이 오기도 전에.

죽음을 확인한 순간부터 키스의 감각이 고장 났다. 그나마 타워로 옮길 여유는 있어서 다행이었을까. 전투 중이었다면 분명 키스도 멀쩡하진 못했을 것이다. 키스는 저와 페이스 주변의 그 어느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누가 우는지, 누가 소리를 지르는지, 누가 왔는지. 저에게 닿아오는 손도. 키스가 인지할 수 있던 건 오직 그가 붙잡고 있던, 아직 따뜻한 손의 감촉뿐이었다. 누군가가 그를 페이스에게서 떼어내려 할 때는 저항했지만 그게 누구인지도 몰랐다. 페이스를 그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게 도대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키스는 그 뒤로도 그저 멍하니 있었다. 저가 지금 무너지면 다른 사람이 더 힘들 것이라는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자신을 챙길 마음 따위도 들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앉아 시간을 죽일 뿐이었다. 그 무엇도,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페이스가 본다면 좋아할 것 같냐고. 제 멱살을 잡았던 이가 그렇게 외쳤던 것 같다.

똑딱, 똑딱, 똑딱.

페이스가 없는 세계에도 시간은 흐른다.
슬퍼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들도 결국 이겨낼 것이다. 그리고 살아가게 되겠지. 페이스 빔스가 없는 세계를.

페이스가 즐겨 찾던 초콜릿 가게는 페이스가 아닌 다른 손님에게 초콜릿을 팔 것이고, 페이스가 다니던 클럽은 그보다 실력과 외모는 떨어지더라도 어쨌든, 다른 DJ를 찾을 것이다.
이 세상은 사람 하나 죽는다고 멸망하지 않는다. 지구는 오늘도 그랬듯 내일도, 모레도, 1년 후에도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키스 맥스의 세상은 파괴되고 말았다.
그의 시계는 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페이스.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이름을 속삭인 키스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세상이 멸망했다.